필립 로스 《울분》

금지와 자유가, 통제와 자율이 구역질 속에서도 공존하였던...

by 우주에부는바람

“... 나는 그 일이 싫었다. 역겨워서 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것이 내가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 기쁜 마음으로 배운 것이었다.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것.” (p.17)


어쩌면 바로 그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것’ 이라는, 마커스 메스너가 ‘기쁜 마음으로 배운’ 신념이 그의 짧은 생의 원인인지도 모른다. 여기에 덧붙여 유대인이며 정육점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과잉된 보호 또한 만만치 않게 그를 죽음을 향하여 밀어붙인 하나의 이유일 수도 있다. 그는 착한 아들이었고 성실한 학생이었으나 어떤 면에서는 꽤나 고지식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맞물리면서 그의 삶은 끝이 났다.


“... 그리고 죽어서도-지금 나는 죽은 상태이고, 죽은 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캠퍼스를 지배하던 관습을 재구성해보고, 그 관습을 피하려던 괴로운 노력, 결국 열아홉의 나이에 죽는 것으로 끝이 나게 되는 일련의 불운한 사건을 낳게 된 과정을 개괄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pp.63~64)


마커스는 자신의 죽음을 향한 우려로 정상적이지 않은 아버지를 피하여 먼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신을 파멸로 이끌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소설은 그 파멸 이후, 그러니까 한국전쟁에 참전하고 그곳에서 전사한 이후, 그렇게 죽음 이후의 마커스, 그러니까 내가 개괄하는 일종의 사후 자서전쯤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런 것이 바로 필립 로스 식이다. (옮긴이의 말을 이용하자면 ‘필립 로스 식’이 뭐냐고 묻지 말라, ‘그냥 읽어보라고 대답할 밖에.’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으니...)


“... 올리비아는 그렇게 대꾸하더니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웃음으로 나를 사로잡았다.예기치 않은 매력으로 가득한 삶에 대한 사랑이 흘러넘치는 웃음이었다. 그 웃음소리를 들었다면 올리비아의 모든 것이 그 웃음 속에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은 흉터 속에 있었지만.” (pp.146~147)


그 짧은 삶의 깊숙한 곳에 있는 또 하나의 인물은 올리비아이다. 그가 대학에서 만난 여자, 유대인인 자신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지금도 살고 있는 아름다운 여대생 올리비아가 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많은 완고함들 (그러나 그로 인하여 자유를 향하여 환하게 열려 있던) 중 어느 한 부분을 무너뜨렸던 올리비아가 있다. 하지만 어느 날 올리비아는 떠난다. 그의 허물어진 부분이 보다 나은 무언가로 채워지기도 전에 올리비아가 떠난 것이다.


“... 한쪽에는 코드웰, 다른 쪽에는 플러서, 한쪽에는 어머니, 다른 쪽에는 아버지, 한쪽에는 장난스럽고 어여쁜 올리비아, 다른 쪽에는 신경쇠약에 걸린 올리비아, 그 틈바구니에서 나는 어리석게도 좆까, 씨발 소리를 내뱉으며 악착같이 나를 방어하고 있었다. (p.205)


올리비아가 떠난 자리에서 그는 나름의 방식으로 버텨보려고 하지만 어느 날 대학 기숙사에서 ‘팬티 습격 사건’이라고 불리우는 사건이 일어난다. 아직 세계대전의 후유증이 남아 있고 여전히 한국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있던 나라, 통제와 자율이 혹은 금지와 자유가 혼란스럽게 공존하고 있던 나라의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대학에서 벌어진 남학생들의 여학생 기숙사 습격 사건은 결국 그를 몰아붙인다.


“... 그것으로 정육점집 아들은 끝이었다. 그는 스무 살 생일을 석 달 남기고 죽었다. 마커스 메스너(1932~1952)는 그의 대학 동기 가운데 불운하게도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유일한 학생이었다.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에 휴전 협정 조인으로 끝이 났다. 채플을 견디고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있었다면 마커스는 그로부터 열한 달 뒤 와인스버그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을 것이다...” (p.238~239)


그리고 이미 소설의 서두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그리고 1952년 3월 31일, 한반도 중부의 어느 참호에서 그는 중공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거기서 끝이 났지만 실은 소설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는 죽은 다음 자신의 길지 않았던 삶을 복기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 마커스 메스너와 함께 1950년대의 미국이 있다.



필립 로스 Phllip Roth / 정영목 역 / 울분 (INDIGNATION) / 문학동네 / 245쪽 / 201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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