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컬슨 베이커 《구두끈은, 왜?》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는 일상의 어떤 지점, 그렇게 일상의 미시사...

by 우주에부는바람

“... 이런 맑은 날이면, 출입구 위를 장식한 거대한 대리석과 유리가 햇빛을 만나 로비에 햇빛 에스컬레이터를 만든다. 이 덧없는 햇빛 에스컬레이터는 진짜 에스컬레이터보다 조금 더 가파르다. 둘이 중간 지점에서 교차하면, 햇빛은 에스컬레이터 옆면의 무광 금속판에 가늘게 번지고 검은색 고무 손잡이에 빛의 금을 그어놓는다. 손잡이가 트랙을 따라 돌며 조금씩 흔들리자 빛도 함께 흔들린다. 마치 LP판이 물결치며 돌아갈 때 가장자리의 검은 광택이 반들거리는 것처럼.” (p.9)


책은 오래전 하이텔에서 연을 맺은 팽박사님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팽박사님은 조금 수줍은 경제학자이자 지금은 소설가이기도 한 분이다. 책은 꽤나 특이하다. 이런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나 싶게 유니크한데, 그러니까 팽박사님 덕분이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일이 이렇게 고역인 적도 없었는데, 그러니까 팽박사님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소설은 점심 시간 직전에 구두끈이 끊어졌다, 라는 유일한 사건을 제외한다면 거의 완벽하게 묘사와 설명으로 되어 있다. 예를 들자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책의 도입부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그 부분 뒤에는 다시 아래와 같은 주석이 달려 있는 정도이다.


“1) 나는 돌아가는 물체 가장자리에 시종 빛이 실리는 모양이 좋다. 프로펠러나 탁상용 선풍기 같은 것도 돌아가는 전체 모습은 칙칙하지만 반들거리는 부분은 계속 남는다. 휘어진 날이 돌면서 순간적으로 빛을 받아 옆 날에 넘겨주는 것이다.” (p.9)


예전에 소설을 공부하는 후배와 묘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영화와 같은 경우 등장인물이 까페에 들어가면 우리는 까페의 여러 정경을 한꺼번에 보게 된다. 하지만 소설은 생래적으로 그럴 수가 없는데, 그래서 우리는 까페에 출입하는 문, 까페에 앉아 있는 손님 그리고 종업원, 까페의 인테리어에 소용된 여러 소품에 대해 묘사할 수밖에 없다, 라는 이야기였다.


“... 우유에 대한 생각이라면 어릴 적의 십여 가지에 견줄 만한 것이 어른이 되어서는 하나뿐인 셈이다. 우유뿐 아니라 내게 의미 있는 주제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미시역사에서 비교하고 분석하고 유사한 리듬 패턴을 감지해내는 데는 재료가 필요하다. 그 재료를 얻는 데 언제까지 이처럼 어릴 적 첫 느낌에만 매달려야 할까? ...” (p.78)


하지만 소설은 이 정도의 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소설 《구두끈은, 왜?》는 까페에 들어서는 순간 그 출입문의 작동 방식을 세세히 밝히는 수준이고, 거기에 액자가 하나 걸려 있다면 그 액자의 제작 기법을 소상히 알리는 수준이고, 종업원이 안경을 쓰고 있다면 안경의 역사나 안경과 관련된 자신의 전생애에 걸친 모든 사건과 사고를 끄집어내는 수준이다. 이 소설에서 허투루 넘기는 일상의 소품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때 돌아온 이미지는 끊어진 구두끈이었다. 7분 전 사무실에서 수선하기 직전의 상태. 그때 든 의문은, 2년이나 신은 구두의 구두끈이 어떻게 해서 겨우 28시간 정도 간격으로 양쪽이 모두 끊어졌느냐 하는 거였다...” (p.146)


그런 면에서 소설은 일종의 일상의 미시사라고 할 수도 있겠다. 구두끈이 끊어졌다는 사실 하나, 거기에서 생긴 약간의 의문, 그러니까 어째서 구두끈은 양쪽이 동시에가 아니라 한쪽 그리고 또 한쪽 순서대로 끊어지게 되었나 하는 호기심에서 비롯된 이 주인공의 일상, 그러니까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사무실에서 나서고 구두끈을 사고 점심거리를 사 벤치에서 먹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다는 일상의 어느 한 순간을 너무나도 치밀하게 기록하고 있다.


“... 그날 우연은 내게 오전 내내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구두끈을 끊어먹고, 티나와 수다를 떨고, 여러 명이 쓰는 화장실에서 성공적으로 소변을 보고, 핫도그와 우유를 곁들인 쿠키를 먹도록 허락했다. 그리고 이제 쇼핑봉투를 무릎에 놓고 초록색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쬐는 것을 허락했다. 그걸 가지고, 철학적으로 뭘 할 수 있지? ... ‘궁금할 때가 많았다.’ 나는 이 표현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아우렐리우스가 내 삶의 얼마 안 되는 날것의 재료들로 철학을 행하라고 압박하는 것 같아, 나 자신에게 물었다. 펭귄 고전문고의 수익성에 대해 정확히 얼마나 자주 궁금해 했었지? ...” (p.194)


그 사이사이 철학자가 등장하고 과학자가 등장하며 철학서가 등장하고 과학논문이 등장하는 식이다. 현재의 일상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과거에서 다시 현재로 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오면 여전히 그 자리인데, 나는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 혹은 그 근처를 맴돌고 있다. 공연히 이야기하는 것 같았던 일들은 다시 최초의 의문으로 수렴되고, 확장되었던 시간들도 지금 여기 나의 공간으로 다시 회귀한다.


“50) 지금은 분명 구두끈이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하리라고 생각한다. 아우렐리우스와 구두끈에 대해 생각한 그날 정오의 일을 쓰기 위해, 나는 한 달이라는 혹독한 준비 기간을 보냈다. 그 한 달 동안 아우렐리우스의 정조(情操)는 아흔 번 정도밖에 생각나지 않았지만, 구두끈 매기와 구두끈의 마모에 대한 생각은 삼백스물다섯 번이나 떠올랐다. 이 둘에 대해서는 완전히 질려서 아마 다시는 파고들 일이 없을 것 같다...” (p.206)



니컬슨 베이커 / 문영혜 역 / 구두끈은, 왜? (The Mezzanine : A Novel) / 강 / 213쪽 / 2007 (1986,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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