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와 바니아와 게이르, 라는 세 개의 위성과 관계를 맺으며 빙글빙글..
《나의 투쟁》 전편을 통해 소설 속 칼 오베의 시간은 오락가락 한다. 소설을 쓰는 지금이었다가 노르웨이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어린 시절이었다가 다시 스웨덴의 지금으로 돌아온다. 아이 셋을 데리고 동네 산책을 하다가 다시 그 아이들의 엄마인 린다를 만나는 시간으로 가기도 하고, 거기서 또 그 이전의 여자 친구와 만나는 시점으로 건너뛰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오락가락 하면서도 종국에는 앞으로 나아간다.
“따지고 보면 어둠이란 것은 빛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다. 부재에는 무게감이 없다...” (p.16)
지극히 사적인 개인의 역사인 책을 읽는 동안에도 소란스럽기 그지없는 타락한 정권으로부터 눈 돌리기가 쉽지 않다. 저 멀리 스웨덴 혹은 노르웨이에서의 칼 오베의 시간이 어쨌든 앞으로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시간도 결국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겠지 위무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가 또 뒤로 물러서는 것 같고 그러다가 또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시간의 속성이겠지 위무한다. 온전히 뒤로 물러나기만 하는 시간은 없는 것이겠지, 믿고 싶어 한다.
『글을 써, 칼 오베!
그의 말은 목구멍을 찌르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왜?
아이들은 삶이다. 그 삶에서 등을 돌릴 수 있는 사람은 도대체 몇이나 있을까?
여기에 비하면 글을 쓰는 것은 죽음이 아닌가. 문자들. 그것은 교회 묘지에 서 있는 비석에 불과하다.』 (pp.158~159)
린다가 임신을 하고 출산을 앞둔 시점에서 《나의 투쟁》 둘째 권이 끝났다. 그리고 《나의 투쟁》 세 번째 권의 시작 즈음에서 드디어 칼 오베와 린다는 그들의 첫째 딸 바니아의 출산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출산 장면은 장장 삼십 여 페이지에 걸쳐 진행되는데, 읽는 동안 손바닥에 땀이 찰 정도이다. 칼 오베는 글을 쓰지 못하면 죽을 것처럼 굴지만 동시에 자신의 딸이 태어나는 장면을 그리고 그 딸로 인해 갖게 되는 이런저런 감정에게 만큼은 종종 굴복하고 만다.
“우리는 바로 여기서 예술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숲을 거닐며 이런 생각을 했다고 치자. 내가 숲에서 얻은 의미는 따지고 보면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던가. 숲의 의미는 내 속에 있던 것이다. 숲에서 의미를 찾는다고 했을 때, 그 의미는 눈으로 한 번 봐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숲과 관련된 우리의 행위를 거쳐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무는 베어야 하고, 집은 지어 올려야 하고, 모닥불은 피워야 하고, 짐승은 사냥해야 한다. 이런 행위들은 내가 만족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행위에 의존하지 않고는 내 삶을 영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눈앞에 보이는 숲은 의미를 지내게 된다. 너무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 더는 보기 싫을 정도로.” (p.243)
그런데 아내인 린다 그리고 아이들만큼이나 소설에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하나 있다. 노르웨이에 있을 때부터의 친구이고 마침 스웨덴에 거주하고 있어, 칼 오베가 스웨덴에 정착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이후에도 끊임없이 만나는 게이르가 바로 그 인물이다. 칼 오베와 마찬가지로 글을 쓰지만 칼 오베보다 주목을 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칼 오베는 게이르와 시덥잖은 농담에서부터 문학 전반에 걸친 이야기까지 주고 받는다. 이들의 수다는 끝이 없는데, 이번 《나의 투쟁》 세 번째 권에서는 장장 오십여 페이지에 걸쳐 (출산 장면은 고작 삼십여 페이지였는데) 대화를 이어가기도 한다.
“너와 대화를 나누는 건 악마에게 심리 치료를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 (p.310)
린다와 바니아와 게이르... 어쩌면 칼 오베라는 행성의 위성과도 같은 이들이 이번 《나의 투쟁》 세 번째 권을 뱅뱅 돌고 있다. 달이 차고 기울 듯 누군가가 등장하면서 다른 누군가가 잠시 자리를 비우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지는 법은 없다. 그리고 칼 오베는 지치지도 않고 이들과의 대화를, 이들의 행동을, 이들의 심리를, 이들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적어낸다.
“... 지어낸 이야기를 쓰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단 말인가. 진실은 현실 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 그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픽션을 쓴다는 생각, 등장인물을 만들어내고 그들을 둘러싼 이야기를 지어낸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구토가 날 것 같았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른다...” (p.352)
소설의 후반부에 접어들어 소설가 칼 오베는 자신의 창작방법론에 대해 (에두르지도 않고) 몇 차례 밝힌다. 소설 속의 시간에서 칼 오베는 아직 《나의 투쟁》을 집필하기 전이지만 그는 이미 자신이 《나의 투쟁》과 같은 창작 스타일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일을 생각만 해도 구토가 난다고, 그렇게 지어낸 이야기는 가치가 없는 것이 되리라고 토로한다.
“지난 몇 년간, 문학에 대한 내 믿음은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나면, 그건 항상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픽션이라는 장르에 속박되어버린 건 아닐까. 지난 몇 년 동안 픽션은 인플레이션처럼 불어났다. 어디로 눈을 돌리든 픽션밖에 눈에 띄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것은 재앙이다. 나는 픽션의 핵심이 진실이냐 거짓이냐를 떠나, 수도 없이 범람하는 온갖 종류의 픽션과 현실 사이의 거리가 거의 같을 정도로 일정하다는 사실 때문에 온몸이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이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무기력해지고, 의식 속에서 부서져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아 고통스럽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픽션 속에서 일률적으로 재창조되고 있다. 우리가 독특하고 특별하다고 여기는 것들은 이미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지금은 아주 다른 모습의 세상 속에서 살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시대다. 나는 그런 유의 픽션을 쓰고 싶지 않다. 글을 써보려 마음을 다잡고 앉아도 이건 내가 지어낸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한 문장 간격으로 나를 덮쳐 괴롭힌다. 그렇게 쓴 글은 아무런 가치도 찾아볼 수 없다.” (p.437)
그리고 칼 오베는 이렇게 버젓이 《나의 투쟁》을 썼다. 그는 아니 나는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그 관계에 예속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며, 그 관계에 진저리를 치고, 순간순간 탈주를 꿈꾸지만 또 순간순간 포기하고 만다. 그러나 그는 아니 나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러한 예속과 탈주와 포기로 점철된 관계를 멈추지 않고 기록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기록이 점점 그가 아니 칼 오베, 내가 되어 간다.
“20대의 나는 지금의 내 속에 얼마나 남아 있는가... 도시의 하늘에서 빛을 발하는 별을 바라보며, 나는 지금의 내게선 20대의 내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나라는 느낌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침이 되면 눈을 뜨고, 저녁이 되면 눈을 감는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20대에 공황 상태에 이를 정도로 내 가슴을 떨리게 했던 그 무엇은 지금 내 속에서 찾아볼 수 없다. 타인을 향했던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집중력도 사라지고 없다. 내가 나 자신에게 삼어주었던 과대망상도 줄어들었다. 그다지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줄어든 건 사실이다... 내가 스무 살 때는, 10년 전의 세월 속에 자리한 열 살 때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20대에는 어린 시절이 멀지 않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나는 바로 그 기억과 느낌을 바탕으로 20대의 세상을 받아들이고 이해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pp.431~432)
이렇게 해서 지난 1월의 첫 번째 권에 이어 9월에 출간된 두 번째 권과 세 번째 권을 모두 읽었다. 노르웨이에서 《나의 투쟁》은 이미 여섯 권으로 완간된 상태이고 (2009년에서 2011년에 걸쳐),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 세 권이 더 출간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출간 패턴을 따라준다면 내년 초쯤 세 권이 연달아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때까지 칼 오베의 이후 이야기가 궁금해서 어떡하지 싶다, 별 게 없는 줄을 알면서도, 그러니까 우리들 지금 여기의 삶처럼...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Karl Ove Knausgård / 손화수 역 / 나의 투쟁 3 (Min Kamp 3, My Struggle 3) / 한길사 / 447쪽 / 2016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