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상을 파괴하지 않고도 주변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의 소산인 것일
올해 1월 《나의 투쟁》 첫 번째 권을 읽고 두 번째 권이 나오기를 내내 기다렸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 권과 세 번째 권이 한꺼번에 출간되었다. 모두 여섯 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이제 세 권이 더 남았다. 이제 막 두 번째 권을 읽고 세 번째 권을 내처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애써 참고 있다. 아직 잠자리에 들 때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고, 지금 얄팍하나마 리뷰를 적어 놓고 세 번째 권으로 넘어가도 늦지 않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은 내 것이 아니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그 삶을 내 것으로 만들어보려 무진 애를 써보았다. 그것은 바로 내가 해온 투쟁이다. 하지만 나는 성공하지 못했다. 먼 곳을 바라보는 동경은 눈앞의 일상에 구멍을 내기 일쑤였으니까.” (p.111)
2008년 2월 27일 밤 11시 43분, 첫 번째 권에서 작가는 자신이 글을 쓰고 있는 날짜와 시간을 책의 초반부에 적고 있었다. (이때 《나의 투쟁》의 집필이 시작된 것은 아닐 테지만, 얼마 되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그리고 2008년 7월 29일, 두 번째 권의 첫 문장에서 작가는 《나의 투쟁》 1권의 집필이 끝났음을 알린다. (미루어 짐작하기에) 오 개월 여의 시간 만에 첫 번째 권을 끝냈다는 사실은 그저 놀랍다.
“... 인간성을 의식과 무의식, 이성과 비이성적인 면으로 양분하는 것은 현대로 들어오면서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발상이다. 의식과 무의식, 이성과 비이성 사이에는 언뜻 명확한 구분선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나는 다른 하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하나를 설명하기 위해선 다른 하나를 심층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p.156)
《나의 투쟁》 두 번째 권의 초반부는 한참동안 2008년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 머문다. 세 아이를 데리고 아내인 린다와 함께 하는 여행의 기록으로 시작해서 일상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계속되는 투덜거림으로 가득하다. 일상의 일들로 인하여 자신이 글을 쓸 시간도 공간도 제대로 갖게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털어놓지만 동시에 자신이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다시 설명하기도 한다. 현재 《나의 투쟁》을 쓰고 있는 나는 그렇게 일상과 투쟁하고 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우린 그저 한 번 만나서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다. 처음부터 뭔가 바라고 그녀를 만났던 건 아니잖은가.
나는 그녀에게 집을 구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는 사람 중에 임대를 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물어보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뚱뚱하기까지 했다.“ (p.289)
그러다 훌쩍 현재의 아내인 린다와 (그러니까 현재 시점에서 세 아이의 엄마인...) 재회를 하던 즈음으로 돌아간다. 나는 사실 첫 번째 만남에서 린다에 대한 구애가 완전히 실패했다는 전력을 지니고 있고, 재회를 하던 즈음에는 노르웨이에서의 첫 번째 결혼을 유야무야 해놓은 상태로 스웨덴에 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다시 만난 린다에게 그리고 긴다는 나에게 속절없이 빠져든다. 새롭게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린다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린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p.446)
그렇게 《나의 투쟁》 두 번째 권의 중심에는 린다가 있다. 책의 초입에서 세 아이의 엄마인 린다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첫째 아이의 출산 직전이다. 현재와 과거와 전과거가 뒤섞여 있지만 어디에서든 린다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노르웨이 남자와 스웨덴 여자가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 만났고, 아는 사람들을 공유하다가 친구들을 공유하고 이제는 부양해야 할 세 아이를 공유하게 되기까지가 지극히 사적으로 기술되고 있다.
“자신만의 일상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의 삶을 고스란히 이해하지 못한다. 남의 일이라면 아무리 큰일이라도 자신의 작은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고 그 틀 안에서 이해하려 한다. 평생 몇 번밖에 마주하지 못할 큰일들을 직접 겪게 되면 그들의 작은 일상은 무너져버린다. 그렇다. 사람들은 세상의 크고 좋은 일만 경험하며 살 수는 없다. 그렇게 된다면 일상이 파괴되니까.” (p.425)
이처럼 사적인 기록에 가까운 소설이, 이처럼 묘한 집중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이 영 의아하다. 이 소설이 제공하는 매력을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가 쉽지 않다. 글을 쓰고 있는 현재를 포함해서 시공간의 나열도 난삽하고, 일상에 대한 기술에서 훌쩍 인문학적인 사념으로 건너뛰기 일쑤인, 문학적인 토로에서 어느 순간 일상에 대한 투덜거림으로 넘어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소설인데, 그럼에도 빠져든다.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Karl Ove Knausgård / 손화수 역 / 나의 투쟁 2 (Min Kamp 1, My Struggle 2) / 한길사 / 447쪽 / 2016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