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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19. 2024

위화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제목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투정부릴 수도 있지만 글이 재미있고 문장이...

  오래 전 우연히 『허삼관 매혈기』를 읽었다. 일본의 사소설이나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이라고 이름 붙은 소설들을 읽던 무렵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저 구닥다리 느낌이 강한 소설 제목에 손이 가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날 어떤 연유인지 모르겠으나 집에 굴러다니던 책을 그냥 집어 들었고, 그 길로 소설의 마지막까지 멈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또 그만이었다. 당시의 중국은 그저 낙후한 대국으로 여겨졌을 뿐이다. 


  “... 역사적 격차는 유럽인이라면 400년에 걸쳐 겪었을 파란만장한 변화를 중국인은 불과 40년만에 겪도록 했고, 현실 속 격차는 동시대의 중국인이 서로 다른 시대를 살게끔 분열시켰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우리는 현실과 역사라는 이중의 거대한 격차 속에 살고 있다. 우리는 모두 환자라고 할 수 있고, 모두 건강하다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두 극단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과 과거를 비교해도 그러하고, 오늘과 오늘을 비교해도 역시 그러하다.” (p.13)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 중국은 그때와는 너무 다른 나라가 되었다. 중국은 이제 시장 경제로 도배되어 있는 거대한 사회주의 저택과 같다. 길 건너편의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고도성장이라는 말이 대한민국 고유의 브랜드라고 여겼지만 중국 앞에서는 명함 내밀기도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그 성장의 외양은 비슷하기 그지없으니, 바로 그 격변하는 중국을 소설가의 시선으로, 그 저택의 내실에서 바라본 그간의 광경이 궁금하였다.


  “... 장편소설을 쓰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일 년 혹은 심지어 몇 년에 걸쳐서도 완성하지 못할 수도 있고, 창작하는 도중 작중인물의 생활이나 감정의 변화에 따라 작가 자신의 감정과 생활도 변할 수 있다. 그래서 창작 과정에서 원래의 구상은 갑자기 버려지기도 하고 다른 새로운 구상이 출현하기도 한다. 장편소설을 쓰는 일은 마치 생활처럼 뜻하지 않은 것과 정해지지 않은 것들로 가득하다. 나는 생활이 좋지, 일이 좋지는 않다. 그래서 장편소설을 쓰는 것을 더 좋아한다.” (p.60)


  하지만 책의 많은 부분은 책의 제목에서 짐작되는 바와는 다른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자신이 이제 막 문학을 하기 시작하던 시절에 대한 내용(마침 이때는 이제 막 문화혁명 시기를 지난 뒤여서, 그 여파로 짐작되는 에피소드들이 등장한다)과 자신의 창작론(서사의 내용에 따라 형식을 달리해야 하고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이 이 부분 어딘가에서 등장하는데, 작가의 다른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에 대한 내용들과 일반적인 문학에 대한 자신 생각이 책의 중반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는 로브르트 판데르힐스트 작품의 객관성을 좋아하고, 『중국인의 집』을 앞으로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속의 장면들은 중국인의 생존 여건을 진실하게 표현했다. 나는 한 장면을 기억한다. 눈빛이 결연한 머리 조각상이 있고 그 뒤 탁자에 자명종이 네 개 놓여 있었다. 나는 이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환기시키고 싶다. 중국이 30년 동안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큰 변화를 겪었다지만 아직도 많은 중국인의 생활은 그저 자명종 한 개에서 자명종 네 개로 진보했을 뿐이라고.” (pp.134~135)


  물론 중간중간 중국의 현실에 대한 작가의 탁월한 안목이 돋보이는 장면들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명종 한 개에서 자명종 네 개로 진보했을 뿐이라고’ 중국을 판단하는 대목이 그렇다. 거대한 저택에 살게 되었지만 그곳에 머무는 모든 사람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고 있지 않은 현실을 작가가 모를 리 없다. 좋아진 혹은 좋아졌다는 믿음을 강요하는 세상의 한 켠에서는 열악해진 생존 조건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루 앤이 내게 미국에서 1년에 2만 종이 넘는 책이 출판된다고 말해줬다. 10여 년 전에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미국은 매년 12만 종의 책을 출판했고, 중국은 10만 종을 출판했다. 그뒤 몇 년 동안 중국의 출판 종수는 빠른 속도로 미국을 앞질러, 올해는 30만 종 이상에 이르렀다.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은 출판 종수가 자동적으로 감소했고, 현재 출판 종수는 1년에 2만 종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의 출판 종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중국이라는 절제 없는 발전이 누군가가 했던 말을 생각나게 했다. 자신의 무지를 알면 완전한 무지가 아니다. 완전한 무지는 자신의 무지를 모르는 무지다.” (p.209)


  작가의 중국에 대한 현실 인식 약간(이라고는 해도 무시할 수 없는)과 문학 선생님 역할 많이, 그리고 이 작가의 짧은 여행기들(이 부분에서 작가의 유머가 폭발한다) 약간으로 채워져 있다. 제목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투정부릴 수도 있지만 글이 재미있고 문장이 수더분하여서 읽기에 나쁘지 않다. 물론 은근히 자국에 대한 쉴드치기를 멈추지 않는 태도가 거슬리기는 하지만... 



위화 余華 / 이욱연 역 /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 작가 위화가 보고 겪은 격변의 중국 (我們生活在巨大的差距里)  / 문학동네 / 255쪽 / 2016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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