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네 개의 계절처럼 자신의 생을 살아내려는 의지...
종일토록 봄을 찾아 다녔건만 봄을 만나지 못하고
짚신이 다 닳도록 고갯마루 구름만 밟고 다녔네.
돌아와 웃으며 매화 가지를 집어 향기를 맡으니
봄은 아미 가지 끝에서 무르익어 있더라.
중국 남송 때 나대경이 지은 수필집 《학림옥로》에 실려 있다는, 무명의 비구니가 지었다는 시이다. 작가는 들어가는 말에서 이 시를 인용하고 있다. 1911년 생으로 이미 91년을 살아낸 다음,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하고 100일이 지난 다음이지만 작가는 글을 쓰고 그 것을 책으로 묶어 낼 생각을 하고, 그래서 들어가는 말을 쓰고 있으며, 거기에서 위의 시를 인용하고 있다.
“... 올해 내 나이가 아흔 하고도 하나가 되었다. 나이로만 보면 충분히 많은 나이지만, 아직 귀가 제 능력을 발휘하고 있고, 눈도 절반 쯤은 쓸만하다. 머리 역시 ‘어수룩한 게 더 힘들’ 정도로 잘 돌아간다. 그러니 글을 쓰는 것도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p.122)
평생동안 학자로 살아내면서 가벼운 산문류와 무거운 논문류의 책을 써냈고, 아흔이 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지만 거기에서도 그는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부러운 일이긴 한데 어림짐작하기도 어렵다. 아흔을 넘은 나이의 노학자가 생의 말기에 접어들어, 그것도 편치 않은 몸이 되었을 때 그에게 들어서는 글감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그 와중에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글을 쓰는 시간이 내게는 70여 년 전 어린 소년으로 되돌아가 귀엽기도 하고, 또 별로 귀엽지 않기도 했던 3년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소중한 기회였다.” (p.60)
그는 자신의 생의 초기에 눈독을 들인다. 국민당과 공산당이 치열하게 다투던 시기, 소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그 이후의 시기를 끄집어내어 그는 기록한다.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 학교의 정경, 자신이 만난 선생님들에 대해 꼼꼼하다. (그는 자신이 처음 배운 글자인 , 투구라는 뜻을 가진 회盔 자를 기억하고 있다) 대략 팔십여 년 전의 기억일텐데, 작가는 선생님의 이름을 적어내고 그 선생님의 별명을 떠올린다.
“... 나는 천성적으로 신중하고 꼼꼼한 성격이라 앞에 나서서 일할 때에는 내 개인적인 이익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이것이 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난 나 자신을 원칙을 지킬 줄 아는 아주 평범한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p.190)
그 시기 전체 그리고 어느 시점을 통하여 이후 칠십 년 혹은 팔십 년 동안의 자신의 모든 것이 비롯되었음을 작가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 모든 것을 마감해야 하는 때에 접어들었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인생의 봄이 시작되는 시기를 떠올려 봄으로써 이제 모든 계절을 거쳐 마무리가 이루어지는 지금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네 개의 계절이 모두 중요한 것처럼 인생의 모든 시기가 그렇겠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일 것이니...
『그렇다면 말년에 어떻게 절개를 지켜야 할까?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말년의 절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전국책》에 보면 “백 리를 가는 사람은 구십 리가 반이 된다”고 했다. 무슨 일이든 끝맺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송나라 때 대정치가인 한기도 <재북문구일연제조>라는 시에서 “가을 꽃밭이 한산해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추운 날 늦은 꽃향기를 맡아보게”라고 했다. 이밖에 ‘개관론정’이라는 말도 있다. 그 뜻인즉슨,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나이와 관계없이 언제든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죽어서 관뚜껑을 덮은 후에라야 그에 대해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p.290)
책의 제목에서 스스로 ‘잡기’라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책에 실린 글들이 우왕좌왕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국사라고 칭송을 받을 정도인 아흔이 넘은 노학자이니, 때때로 글에 드러난 겸손조차 허영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럼에도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 자신의 기억을 자신의 펜을 한쪽으로 치워 놓으려 하지 않는, 그래서 온전한 네 개의 계절처럼 자신의 생을 살아내려는 의지 앞에서는 무람해진다.
지셴린 / 허유영 역 / 병상잡기 (病床雜記) : 인생의 끝에서 시작을 돌아보다 / 뮤진트리 / 338쪽 / 2010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