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한발씩 늦는다니까'라고 말해도 걸어야만 하는 길, 의 궤적...
영화 <걸어도 걸어도>에는 십여 년 전 죽은 준페이를 기리기 위해 모인 이 가족의 1박 2일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다큐멘터리로 시작한 이력을 지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는 꾸밈이 없다, 아니 꾸밈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이 워낙 자연스러워서, 죽은 아들 죽은 형의 기일이라는 극단적인 날에 모인 가족의 이틀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에 런닝 타임 내내 주눅 들어 있을 필요가 없다. 그저 불쑥불쑥 숨 막히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을 감내하면 된다.
영화의 결정적인 장면에는 키키 키린이 연기한 이들 가족의 어머니 쿄헤이가 존재한다. 그녀는 시종일관 음식을 하고 그것들을 자신의 새끼들에게 먹이느라 분주하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며 이들을 거둬 먹인다. 엄마가 해야 할 가장 근원적인 일에 그녀는 여전히 헌신적이다. 십여년 전 죽은 준페이가 구해냈고, 이제 성장하여 직장인이 된 요시오의 방문에 헌사를 보내는 것도 쿄헤이의 몫이다. 하지만 료타가 이제 그만 요시오를 부르지 말자고 하는 장면에서 쿄헤이는 돌변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증오할 상대가 없는만큼 괴로움은 더한 거야. 그러니 그 아이한테 일 년에 한 번쯤 고통을 준다고 해서 벌 받지 않아. 그러니까 내년 내후년에도 오게 만들 거야.”
쿄헤이의 이런 이중적인 태도는 이외에도 몇 차례나 영화에 등장한다. 료타가 데려온 그의 아내와 전남편 소생의 아이에게 친절을 베풀지만 배타적인 태도 (외손주들의 호칭과 달리 한다거나 아들의 파자마는 준비하면서 이 아이의 파자마는 준비하지 않거나 친손주를 갖고 싶다는 의중을 표현하는 식으로...) 또한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순간들마다 키키 키린의 연기는 뛰어나다.
평생 권위적이었을 동네 의원의 의사 선생님이었던 남편을 대하는 현재의 쿄헤이의 이런저런 대응 방식도 너무 자연스러워서 흥미롭다. 이제는 뒷방 노인이 된 남편을 몇 걸음 뒤에서 따라가는 것 같지만, 이제 그를 향한 뒷담화도 서슴지 않는다. 모른 척 하였던 남편의 외도를 여전히 잊지 않고 있음을 은연 중에 드러내는, 요코하마 블루 라이트(아, 이 노래는 또 얼마만에 들어보는 것인지...) 라는 노래가 나오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저 노랑나비는 말이지, 겨울이 되어도 죽지 않은 하얀 나비가 이듬해 노란 나비가 되어 나타난 거래.”
하지만 역시 그날 밤 갑작스레 아들의 제단이 있는 방안으로 들어온 노란 나비를 향하여 죽은 아들의 혼이라며 손을 휘휘 젓는 쿄헤이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라고 해야 할까. 죽은 아들의 묘소를 오고 가는 길에 들려 준 이야기, 노란 나비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게 엄마 쿄헤이에게서 시작되어 아들 료타를 거쳐 그의 어린 딸에게로 이어지게 되고, 영화 속 이들은 그렇게 계속 걷는다.
영화는 한정된 시간만큼이나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는데, 그럼에도 이들은 계속해서 걷는다. 집에서 바닷가로 나가는 내리막길, 아마도 준페이가 마지막으로 걸었을 그 길을 남은 가족들이 걷고, 집에서 묘소로 향하는 오르막길, 준페이를 향하여 매년 걷고 또 걷게 될 그 길을 남은 가족들이 걷는다. ‘늘 한발씩 늦는다니까’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도 (엄마 쿄헤이는 어떤 스모 선수의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하고 아들 료타는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야 그 이름을 기억해낸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걸어야 할 길이 영화에 있었다.
걸어도 걸어도 (歩いても 歩いても)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 키키 키린, 아베 히로시, 하라다 요시오, 나츠카와 유이, 유 출연 / 114분 / 2009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