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스토리)와 우주(코스모스)가 떠오른 소설가의 영감의 한 순간...
*2018년 9월 18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박상우, 구효서, 윤대녕, 성석제 등의 작가들을 주로 읽던 한 때가 있었다. 그때도 지금도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내 나름의 문장들을 때로는 비밀스럽게 그러나 결국엔 노출하면서 적는 것도 좋아하였고 지금도 좋아한다. 윤대녕과 성석제 그리고 구효서는 최근에도 간혹 읽은 기억이 있지만 박상우의 소설은 《지붕》(2005) 이후 십여 년 만이다. 그때의 리뷰 첫 구절 또한 오랜만이다, 라는 문장과 함께 시작된다.
“... 작가는 소설을 앞세우는 존재, 소설의 뒤편에 서 있는 그림자 같은 존재입니다. 왜 작품이 아니라 작가를 앞에 세우려 하는가, 나는 그것과 타협할 수 없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나는 내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소설을 쓴 게 아닌데, 작품보다 존재를 까발리려 드는 에너지를 견디지 못해 결국 소설을 포기하게 된 겁니다. 소설은 쓰고 싶지만 내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건 싫다는 것, 결국 나를 드러내기 싫어 소설을 쓰려 한 창작의 동기를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한 셈이죠.” (p.51)
그때의 리뷰에는 ‘답보상태인 그들의 글’에 대한 한탄이 등장한다. 나는 소설을 읽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배에게 소설의 문장과 스타일이 어딘지 구식이라고 느껴진다고, 어쩌면 끝까지 읽지 못하는 소설이 될 수도 있겠다고 했다. 십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일군의 동시대 작가군에게 느끼는 한탄이 여전했던 것이다. 여기에 어찌 보면 너무 거대한 소설의 테마 또한 한 자리에서의 일독을 가로막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1. 쿄쿄는 3차원 우주가 아닌 다른 차원에서 온 순수한 에너지 인격체라는 메시지.
2. 3차원 우주에 갇힌 지구인들은 현실과 꿈에 대해 왜곡된 관념을 지니고 있다는 메시지.
3. 인간의 의식은 잠을 자는 동안 깨어 있고, 깨어 있는 동안 꿈 상태를 유지한다는 메시지.
4. 죽음 이후에는 영체로 돌아가 이전 삶의 결과를 반영하여 새로운 인생 프로그램을 설계한다는 메시지.
5. 인간에게 주어진 인생은 프로그램이고 그것은 스토리로 전개되며 무한 스토리코스모스를 이룬다는 메시지.
6. 인간은 실재하는 존재가 아니고 다른 차원의 영체가 만들어낸 퍼스탤리티라는 메시지.
7. 눈에 보이는 3차원 우주의 모든 것은 실재가 아니라 환영이라는 메시지.
8. 지구인들이 사용하는 ‘나’ ‘자아’ ‘영혼’이라는 개념은 3차원적 왜곡일 뿐 실제로는 영체의 일부가 반영된 투사체로서 10퍼센트 정도의 뇌와 10퍼센트 정도의 표면의식을 사용하는 제한적인 존재라는 메시지.
9. 3차원 우주는 이원성을 도구로 사용하여 영적 진화를 도모하는 훈련장이라는 메시지.“ (pp.93~94)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양자역학, 평행우주, 자각몽이라는 세 가지 분야를 이론적 근거로 하여 소설을 작성했다고 말한다. (책의 뒷부분에 실린 참고문헌에는 서른다섯 권의 책이 올라와 있다) 2005년 처음 영감을 받았으나 몇 차례 썼다가 폐기하기를 거듭하였다는 고백도 실려 있다. (이와 함께 1999년 이상문학상 수상 이후 자신의 소설에 대한 ‘동어반복이 역겨워’ 잠수를 탔다는 이야기도 얼핏 등장한다)
“‘바로 보기’와 ‘바로 쓰기’는 잘못 전개된 스토리를 이해하고 해체하는 고해의 단계이고 ‘다시 쓰기’와 ‘다시 보기’는 스토리의 재구성과 재창작을 통해 의식 에너지를 리프로그래밍하는 단계였다...” (p.151)
작가 개인에게 놓인 어려운 고비들을 넘어 소설은 완성되었다. 작가가 되고 싶지만 아직 작가가 되지는 못한 스물아홉의 나 문필우는 어쩌면 소설가 박상우 자신이 어느 정도 반영된 피사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소설에는 소설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 문필수도 등장하는데, 문필우보다는 문필수가 박상우 본인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소설의 말미에는 박상우 본인이 소설 속에 등장하기도 하다. 문필우와 문필수와 박상우, 이들은 소설 속에서 다른 인물이지만 또 그렇게 다르기만 하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우주는 대설(大說)이다. 소설(小說)은 대설우주(大說宇宙)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다. 인간의 한계를 깨치고 대설우주를 반영하기 위한 압축 구도로 ‘소설’이라는 스토리 체계가 자연스럽게 구축된 것이다...” (p.244)
스물아홉의 나 문필우, 써니, 선배인 작가 문필수, ‘3차원 우주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머무는 존재’ 쿄쿄, 시온, 신다경 대리, 여배우 안시연, 여의사 심보라, 딥 퍼플, 나의 형 그리고 다시 써니... 소설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여기에는 3차원인 바로 여기 이 세계의 인물들도 있고, 여기를 있게 만드는 저기 여기 너머의 세계로부터 이 세계로 잠시 넘어온 인물들도 있다. 그리고 이들이 몸담고 있는 출판사와 이들이 최초로 나타나는 달동네에 위치한 초인의 집이, 이들이 만드는 스토리코스모스닷컴이라는 사이트와 내가 소설을 쓰는 격리수용소의 캡슐 룸이 존재한다.
“인생은 최면 상태에서의 스토리텔링이다. 깨어나지 않는 한, 깨어나서 자기 스토리의 재창조자가 되지 않는 한 존재도 인생도 한갓 꿈에 지나지 않는다. 육체, 의식, 감정, 감각 따위를 진짜라고 믿지 말라. 눈에 보이는 세상의 스토리를 실재라고 믿지 말라. 그 모든 것은 3차원적 환영일 뿐이다. 자신을 가두고 있는 고정관념의 쇠창살을 허물고 내면의 감각에 집중하면 헛것으로서의 외부세계가 허물어지고 참다운 창조의 주체가 나타난다. 최면에서 깨어난 인간의 진정한 스토리 창조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p.249)
광대한 세계가 펼쳐지고 있지만 결국 그것은 소설가의 한 순간, 영감이 떠오르던 그 순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작가에게 그 순간은 스토리가 창조되는 순간이고, 인용된 구절로 유추하자면 ‘최면에서 깨어난’ 순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 대한 작가의 몰입이 너무 극심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작가를 둘러싼 외부세계, 그 세계에 대한 어떤 불신이 이처럼 한없이 펼쳐진 채 오므라들지는 못한 내부세계를 만든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그 우려가 소설을 끝까지 읽도록 만들었다.
박상우 / 비밀문장 / 문학과지성사 / 325쪽 / 2016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