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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20. 2024

최은영 《쇼코의 미소》

담백하면서도 살뜰하게 사적으로 다루어도 아플 것은 아프고...

  베트남 전쟁, 인혁당 사건 등이 소설의 주요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요즈음 젊은 작가로서는 보기 드문 경우이다. (아니 젊지 않은 작가들도 마찬가지이다) 세월호 사건과 관련된 소설도 두 편이 실려 있다. 예사롭게 읽을 수 없었다. 이러한 소재들을 다루면서도 독일이며, 폴란드며, 일본이며 이곳저곳을 누빈다. 그곳들을 돌아다니지만 결국 그들은 여기에서 출발했고,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다,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쇼코의 미소」

  중학생 시절 교환 학생으로 와서 소유, 나의 집에 잠시 머물렀던 쇼코, 와의 사이를 작가는 조심히 건너다닌다. 소유와 쇼코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따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설핏 서로의 옷자락을 손가락 끄트머리로 살짝 잡고 있는 것만 같다. “사실 쇼코는 아무 사람도 아니었다. 당장 쇼코를 잃어버린다고 해도 내 일상이 달라질 수는 없었다. 쇼코는 내 고용인도 아니었고, 나와 일상을 공유하는 대학 동기도 아니었고, 가까운 동네 친구도 아니었다. 일상이라는 기계를 돌리는 단순한 톱니바퀴들 속에 쇼코는 끼지 못했다. 진심으로, 쇼코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쇼코에게 내가 어떤 의미이기를 바랐다. 쇼코가 내게 편지를 하지 않을 무렵부터 느꼈던 이상한 공허감. 쇼코에게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정신적인 허영심.” (pp.24~25) 어린 두 여자 아이였고 이제는 자라서 성인이 되어 있는 두 여자, 그리고 두 여자의 할아버지, 전세대 그보다 먼 전전세대의 무언가로부터 지금에 이르는 조금조금한 어떤 삶의 길을 걷는 누군가를 그리고 그리고 그 누군가를 바라보는 또다른 누군가를 바라본 것 같다.


  「씬짜오, 씬짜오」

  씬짜오, 는 아마도 우리말의 안녕, 과 비슷한 베트남 말이리라... 독일, 통일된 후의 동독지역에 잠시 머물렀던 어린 나, 사이가 좋지 않았던 부모와 나를 끌어안아 주었던 베트남 줄신의 응웬 아줌마, 그리고 베트남 전쟁...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pp.89~90) 독일이라는 직접적이지 않은 배경, 그렇지만 어느 순간 훅, 들어와 있는 베트남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 그리고 나...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나의 엄마와 엄마의 먼 친척이었던 순애 언니에 대한 평생에 걸친 기록이 처연하게 실려 있다. 당시의 사람들의 미시사에서 흔하게 발견될 일상들이 고로 배치되어 있으면서,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그때로 건너가고, 죽은 이들은 그저 작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인혁당 사건을 다루는 젊은 작가의 작은 기여도...


  「한지와 영주」

  프랑스 어느 시골 수도원에서 나 영주와 나이로비 출신의 한지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곳에서 봉사하며 지내는 영주의 여러 날들 중으로 불쑥 찾아 들어온 아프리카 청년 한지, 두 사람은 무엇을 주고받은 것일까... 한지는 왜 영주로부터 멀어져간 것일까, 영주는 그런 한지를 왜 붙잡지 못한 것일까...


  「먼 곳에서 온 노래」

  페테르부르크에서의 노래패 선배 미진과의 재회, 그리고 미진과 한 방을 썼던 율랴와의 만남... 노래패라는 단어 자체가 참 오랜만이다. 이것 또한 일종의 후일담이라고 할 수 있을까... “... 이 노래를 선배와 함께 불렀을 때의 마음이라는 것도 이제는 희미하기만 하다. 선배가 떠나고 반년 동안은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안타까운 마음도, 선배에 대한 분노에 가까운 그리움도 옅어졌다. 노래가 끝나고 테이프가 회전하는 소리를 잠시 듣다가 정지 버튼을 눌렀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율라가 나를 보며 애써 웃고 있었다. 노래는 끝났고, 우리에게는 선배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시간이 남아 있었다.” (p.210)


  「미카엘라」

  “딸이 태어난 후로는 그늘진 마음에도 빛이 들었다. 마음속 가장 차가운 구석도 딸애가 발을 디디면 따뜻하게 풀어졌다. 여자가 애써 세워둔 축대며 울타리들, 딸애의 손이 닿기만 했는데도 허물어지고, 그애의 웃음소리가 비가 되어 말라붙은 시내에 물이 흘렀다. 있는 마음 없는 마음을 다 주면서도 그 마음이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까봐 불안하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그저 그 마음 안에서, 따뜻했다... 아이는 저만의 숨으로, 빛으로 여자를 지켰다. 이 세상의 어둠이 그녀에게 속삭이지 못하도록 그녀를 지켜주었다. 아이들은 누구나 저들 부모의 삶을 지키는 천사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누구도 그 천사들을 부모의 품으로부터 가로채갈 수는 없다. 누구도.” (p.241) 교황의 방문에 맞춰 서울에 올라온 엄마는 딸에게로 가지 못한다. 찜질방에서 하루를 보내고 그곳에서 광장으로 향하는 한 할머니와 동행하게 된다. 세월호 유족들이 있는 그곳으로...


  「비밀」

  말자의 딸인 영숙, 영숙의 딸이었던 지민... 세 사람의 행복했던 한때는 이제 없다. 말자의 암은 재발했고, 영숙의 딸 지민은 중국으로 떠났다. 아니 떠난 것이어먄 했다. 말자는 죽어가고 있고, 지민은, 지민은... 



최은영 / 쇼코의 미소 / 문학동네 / 293쪽 / 2016 (2016) 



  ps. 작가의 말에 실린 감사의 마음이 담백하고 살뜰하다. 그래서 옮겨 놓아 본다. “얼마 전 은퇴하신 아빠께 드릴 선물이 이 책밖에 없는 것 같다. 이 책이 엄마에게도 기쁨이 되어 좋다.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생에게도 인사를 전한다. 특이하고 예민한 애였던 나를 맡아 키우느라 고생하셨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나는 그분들게 평생을 써도 다 쓰지 못할 사랑을 받았다. 사랑하는 이모와 이모부께도 감사드린다. 남편에게 고맙다. 살며 힘든 일들도 많았지만 지금처럼 잘 헤쳐나갈 수 있기를. 나의 고양이 레오, 미오, 마리, 포터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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