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중력으로 떠도는 인물이 지구 상의 인물들이 서로를 향하여 움직이도록..
송우영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얼마 전 엄마가 죽었다. 엄마에게는 전남편이 있는데, 그는 우주 비행사, 는 아니고 우주 비행선을 정비하는 정비사였다. 그는 당연히 우주로 날아가 보지는 못했고, 그저 자동차가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서른셋에 목숨을 잃었다. 나의 엄마는 나의 아버지와 재혼을 했고, 나와 누나가 태어났다. 나는 이렇게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삶들까지를 포함하는 나의 모든 삶을 소재로 하여 클럽에서 코미디를 한다.
“... 제가 교통사고로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었는데, 아버지는 내가 잘못해서 사고가 났다고 내 등을 계속 후려쳤어요. 그때는 아버지 힘이 엄청날 때였거든요. 키가 180센티미터가 넘는데 손은 어지간한 피자보다 컸어요. 도미노피자 미디엄 사이즈보다 컸다니까요. 등에 토핑이 묻는 기분이었어요...” (p.35)
나는 죽은 엄마의 유품을 살피다가 보내지 못한 편지를 발견한다. 거기서 ‘이일영’이라는 이름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엄마의 전남편의 아들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소설의 다른 한 축으로 이일영이 등장한다. 이일영의 아버지, 나의 엄마의 전남편의 집안은 대대로 우주선과 관련한 일을 하였고, 우주선 정비사였던 아버지와 그만큼이나 우주에 관심이 있던 삼촌을 두고 있던 이일영은 우주로 날아갔고, 지금은 우주의 미아가 되어있는 상태이다.
“... 사는 건 당연히 의미가 있죠. 백 퍼센트 의미가 있죠. 그런데 말입니다.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야 의미가 생깁니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의미가 없어져요...” (pp.143~144)
소설에는 모두 네 개의 서로 다른 자기 영역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존재한다. 하나는 우주에서 한 모듈에 실린 채 자신의 마지막 말을 녹음하고 있는 (그래비티의 산드라 블록을 떠올린 덕분에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이 부분은 검은 페이지에 흰 글자로 적혀 있는데, 이 또한 훌륭한 선택이다) 이일영의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이일영이 우주로 날아가기 전 함께 하였던 강차연의 그때와 지금에 대한 이야기이다.
“... 저는 말 속에 살 겁니다. 말 중에서도 농담 속에서 살 겁니다... 저는 농담 속에서 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형체는 없는데 계속 농담 속에서 부활하는 겁니다. 죽었는 줄 알았는데 농담에서 또 살아나고, 평생 농담 속에서 사는 겁니다. 형체가 없어도, 숨을 못 쉬어도 그렇게 살면 좋겠어요. 비참한 사람들끼리 하는 농담 속에도 있고, 계속 울음을 터뜨리다가 갑자기 터져나오는 농담들 속에도 있고, 여자와 어떻게 한 번 해보려고 작업하는 남자들의 농담 속에도 있고, 오랜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여자들의 농담들 속에도 있고, 모든 농담 속에 스며 있었으면 좋겠어요...” (p.194)
그리고 나머지 두 개는 코미디 클럽의 무대 위에서 송우영이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농담과 무대 아래에서의 송우영이 엄마가 남긴 편지를 들고 서성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사방으로 펼쳐져 있던 이야기들은 조금씩 서로를 이끄는 힘에 의해 다가선다. 그렇게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을 주고 있는 것이 바로, 무중력의 상태에서 우주를 떠돌고 있는 이일영이어서 흥미롭다.
『소설을 다 쓴 작가에게는 작가의 말을 쓰라는 출판사의 압력이 시작됩니다. 웃기는 일이에요. 왜냐하면 더 쓸 게 없거든요. 완절 탈탈 털어서 내놓았는데 뭘 더 쓰라는 거예요. 주머니를 다 뒤져 놓고는 “지금부터 털어서 나오면 100원에 한 대씩.”이라고 말하던 옛날 불량배들 같잖아요. 작가의 말 없이는 책을 못 낸다고 하니까 작가는 그때부터 몸을 쥐어 짜기 시작해요. 신발 밑창에 숨겨 뒀던 비상금도 꺼내야 하고, 속옷 틈에다 꿰매 두었던 쌈짓돈도 다 털어야 해요. 신기한 건 그렇게 털면 또 나온다는 겁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듯 털어서 작가의 말 안 나오는 작가가 없어요. 마라톤 완주를 막 끝냈는데, 스태프가 와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작가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고요, 10킬로미터 더 달려야 진짜 골인 지점이 나옵니다. 작가의 말을 끝내야 책을 내 드릴 수 있어요.” 뭔 소리야. 처음엔 그런 말 없었잖아. “작가님,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건 작가의 기본이에요.”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작가가 되고 싶진 않으니까 저는 또 하는 수 없이 달립니다.』 (p.234, <작가의 농담> 중)
농담이라고 하니 그러려니 하면서 그만큼 가볍게 읽을 참이었는데,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럴써하게 믿기지는 않으니 그 무게에도 불구하고 저절로 가벼운 이이갸기 되어 버리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물론 김중혁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말발에 간간히 포복절도 할 수 있다. (김중혁은 혹시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꿈꾸었던 건 아닐까..) 어쨌든 이렇게 ‘작가의 말’로도 웃길 수 있는 작가, 그것이 바로 김중혁이다.
김중혁 / 나는 농담이다 / 민음사 / 239쪽 / 2016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