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라는 공간을 파리에 사는 사람들로 채워보고자...
운영하는 블로그에 꽤 많은 메뉴를 만들어 놓았다. 나는 인터뷰어, 라는 메뉴를 하나 더 추가하려고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인터뷰이를 아직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라고 변명해본다. 인터뷰이가 시처럼 다가왔으면 좋겠다. (그런가하면 나는 메모아르, 라는 메뉴를 만들었지만 아직 그 메뉴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그 메뉴에 들어갈 기억들을 떠올리는데, 거기까지만 재미있어 하는 중이다.)
“... 파리는 국제도시이기 때문에 모든 국적의 친구를 사귈 수 있고 움직이지 않아도 여행을 하는 셈이 됩니다. 파리에는 자유롭게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바람이 붑니다.” (p.110) - 포르듀서 라시드 엘 하르미과의 인터뷰 중
책은 여행 에세이로 시작된 난다 출판사의 걸어본다 시리즈 중 파리편이다. 김이듬 (주로) 시인이 파리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터뷰로 채워져 있다. 파리라는 공간을 파리에 사는 사람들로 채워가는 식이다. (각각의 챕터 맨 앞에 인터뷰 장소에 대한 설명이 잠깐 나온다. 파리라는 공간에 대한 설명은 그 정도이다. 그마저도 폰트 크기가 작고 배경색이 들어가 있어 알아보기 힘들다. 노안이 이미 시작된 나이의 사람에게는 피곤한 도시일까, 파리는...)
“대대적인 광고의 지원을 받는 예외적인 몇몇 책들을 제외하고선 보통 책들은 잘 팔리지 않는다. 프랑스 출판업자들은 매년 7만 권이 넘는 새로운 이름의 책들을 출간하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대중에게 가닿기를 실패한다. 예를 들어, 한 시집이 3백 부가 팔렸다면 이것은 좋은 결과이다. 모든 자본주의 국가가 그렇듯이 편집édition은 대규모 회사에 의해 지배된다. 프랑스에는 3천 개가량의 출판사가 있지만 두 회사가 시장의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그리고 책들은 위대한 문화적 전통과 창조와 그것의 질과는 무관하게, 너무나도 자주, 상업적 물건으로 여겨진다.” (p.61) - 시인 프랑시스 콩브와의 인터뷰 중
파리에서 거주하는 스물네 명의 인터뷰이는 유명인이 아니고, 인터뷰어 또한 비전문가여서 모든 인터뷰는 꽤나 소박하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하는 생활인에 가깝고, 어쩌면 이들을 인터뷰하고 있는 시인 또한 이미 계약된 책을 쓰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는 생활인에 가까워 보인다. 생활인과 생활인이 만나니 어떤 인터뷰는 무척 서둘러 이루어지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끊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 그녀는 파리 남자들은 니 거 내 거 너무 따지고 연애중에도 한 번도 특별한 이벤트가 없었으며 돈을 몹시 아낀다고 했다. 생일에도 정원의 채소나 과일을 따서 선물하거나 구두쇠라 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했다...” (p.117) - 레스토랑 주인 비구루 마르크Vigouroux Mark & 김윤선 두 사람과의 인터뷰 중
(책을 읽으며, 파리는 아니고 프랑스의 어느 지방에서 프랑스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는 어린 친구를 떠올렸다. 그녀는 한 달 전 어느 새벽, 그 프랑스 남자(와 그 가족)에 대한 험담을 한바탕 늘어놓은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이 정확히 위의 문장과 닮아 있었다. 프랑스 남자와 살고 있는 한국 여자가 프랑스 남자의 인터뷰 중에 불쑥 끼어들어 뱉은 말인데, 이로써 프랑스 남자에 대한 나의 편견은 한층 곤고해지고 말았다.)
“뼈 악기 // 우울한 음색의 여자는 손가락 마디를 꺾는다. 구 악절의 노래여, 철금 소리 휘바팜 분다. 외롭거나 긴장할 때 몸은 찬 악기와 흡사해, 생상스는 ‘죽음의 무도’에 실로폰을 사용하여 달그락거리는 뼈를 환기시켰다고 한다. 생강 같은 소리, 악기를 감싼 붉은 가죽이 너덜너덜해진다. 완전한 결부는 없다. 긴 터널 빠져나와 햇빛 속으로 달리는 기차 안에서 오그라든 마음, 지팡이에 입맞춤하는 시간, 당신의 뼈로 나의 잔뼈들을 두드릴 시각이 다가온다.” (p.221) - 에필로그 중
사실 책에는 생활인인 인터뷰어로서의 작가만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주로) 시인인 인터뷰어는 인터뷰의 말미에 일종의 (초벌이라고 보여지는) 시를 하나씩 붙여 놓고 있다. 아마도 시인인 저자는 그들과의 인터뷰 채록을 정리하면서, 그것이 이처럼 밋밋하게 마무리되는 것에 미안했고, 그것이 스스로를 어떤 식으로든 압박을 한 것은 아닐까 싶다. 그렇게 복기된 시인의 글들 중 마지막 에필로그의 윗 문장이 좋았다.
김이듬 / 모든 국적의 친구 : 내가 만난 스물네 명의 파리지앵 / 난다 / 226쪽 / 2016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