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빙수 가게와 홍제천변 까페 여름을 오버랩시키며...
*2016년 8월 10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지금 이 글을 까페 여름에 앉아 쓰고 있다. 읽다가 지치거나 쓰다가 지루하면 잠시 까페 앞 의자에 앉아 선배와 담배를 핀다. 까페 여름이 자리잡고 있는 연희동 끝자락과 바다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아니 연희동 끝자락이 홍제천에 닿아 있고, 홍제천은 한강으로 흘러가고, 한강은 서해로 흘러들어갈 것이니 그저 먼 것이라고만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소설 속 마리의 빙수 가게를 읽으며 까페 여름을 떠올렸다.
“여름의 마지막 해수욕 누가 제일 늦게 바다에서 나왔나 / 그 사람이 바다의 뚜껑 닫지 않고 돌아가 / 그때부터 바다의 뚜껑 열린 채 그대로 있네... 지구는 무릎까지 바다에 잠겨 있네, 밀물 달과의 관계 / 바다의 뚜껑 열려 있어” - 하라 마스미의 <바다의 뚜껑> 중
소설의 시작 부분에 소개되는 하라 마스미의 ‘바다의 뚜껑’, 그 노랫말이 인상적이다. (하라 마스미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영화배우이고, 뮤지션이기도 하다.) 과연 짧은 소설 하나쯤 불러낼 수 있는 노랫말이지 싶기도 하다. (나는 일본 밴드 스피츠의 노랫말 중 ‘우주에 부는 바람’이라는 표현을 여태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요시모토 바나나는 이 노랫말을 기원 삼아서 딱 요시모토 바나나스러운 소설 한 편을 만들었다.
“애정 없이 뿌려진 돈 탓에, 이 동네는 이렇게 되고 말았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바깥쪽에서 갑자기 밀려든 돈의 흐름은 동네 사람들이 생각해 낸 귀여운 발상이며 소박하게 간직해 온 소중한 것을 모두 쓸어가 버리고 말았다... 뒤에는 비참함만이 남은 것 같다.” (p.25)
소설의 공간은 마리가 고향에서 문을 연 빙수 가게이다. 마리의 고향은 이제는 쇠락해버린 관광지이고, 마리는 도쿄에서 다니던 학교를 졸업한 이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마리는 졸업 전에 여행한 남쪽의 섬에서 빙수 가게를 발견했고, 고향으로 돌아가 그런 빙수 가게를 차릴 생각을 했고, 그렇게 했다. 두 평 정도의 공간에 자신만의 색을 조금씩 입혔고, 메뉴도 스스로 결정했다. ‘사탕수수 빙수’, ‘감귤 빙수’, ‘패션푸르트 빙수’, ‘단팥 빙수’...
“얼음은 녹아 금방 없어지는 것이라, 나는 늘 아름다운 한때를 팔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p.100)
그리고 어느 날 마리의 엄마 친구의 딸인 하지메가 이곳으로 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남은 가족들이 다투기 시작한 그곳으로부터 하지메의 엄마는 딸을 탈출시키고 싶었다. 어린 시절의 화상 탓에 얼굴과 몸의 반쪽에 흉터가 남아 있지만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하지메와 마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 한 집에서 자고, 마리의 빙수 가게에 함께 나가고, 남는 시간에는 바다로 나가 함께 수영한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간다.
“마리는 자기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너무 몰라. 사람인데, 마치 산 같아. 그리고 내 흉터도 꼭 자연을 보는 눈으로 봐 주었고. 마리는 무슨 일이든 실현하는 당당함을 갖고 있어. 그래도 마리는 자기의 대단함을 그냥 모르고 지냈으면 좋겠어.” (p.117)
‘바다의 뚜껑’이라는 이미 존재하는 제목이 없었다면 ‘마리와 하지메’라는 제목의 소설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빙수 가게는 마리 혼자가 아니라 마리와 하지메의 것으로 진화할 지도 모른다. 나는 까페 여름이 문을 열기 전부터 그곳을 보아왔고, 그곳이 진화했고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심 기쁘게 생각한다. 그렇게 까페 여름에서 시작된 글이 책이 있는 내 방까지 흘러왔다. 폭염 속 초저녁에 잠시 소나기도 내렸다.
요시모토 바나나 / 김난주 역 / 바다의 뚜껑 / 민음사 / 154쪽 / 2016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