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하게 인화된 그래서 오히려 고급스러워져버린 피사체라도 떠올리는 것처
《팩토텀》은 헨리 치나스키의 인생 역정 중 《우체국》에서 일자리를 얻기 전, 《호밀빵 햄 샌드위치》로부터 막 벗어난 젊은 시기를 다루고 있다. 아직 유명해지려면 좀더 시간이 필요하고 그래서 《여자들》에서처럼 많은 여자들이 등장하기 이전이다. 미국 전역을 떠돌며 되는대로 일을 하고,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술을 마시고, 그러다가 일자리에서 쫓겨나거나 제 발로 뛰쳐나오면서 지내는 시기이다.
“나는 어딘가로 떠나기 위한 버스 요금과 도착한 후에 몸을 건사하는 데 들 몇 달러 정도를 마련할 수 있을 만큼만 더 일했다. 나는 곧 하던 일을 그만두고, 미국 지도를 꺼내서 세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뉴욕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p.53)
그렇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치나스키는 글을 쓰고 여기저기에 보낸다. 특이한 것은 치나스키는 굉장히 게으른데, 또 그만큼이나 바쁜 것처럼 보이는데, 언제 글을 쓰는지 잘 모르겠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치나스키는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그의 문학관 같은 것이 책에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어쩌면 그 쓰는 행위는 치나스키에게 술이나 여자 그리고 경마만큼이나 인이 박혀 버린 일이리라...
『... 나는 펜으로 직접 글을 썼다. 나는 글을 아주 빨리 쓸 수 있게 되었다. 그 바람에 글 짓는 속도보다 더 빨리 필기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일주일에 서너 편의 단편을 썼고, 그것들을 편지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애틀랜틱 먼슬리』와 『하퍼스』의 편집자들이 이렇게 이야기하겠지 하고 상상했다. “이거 봐, 이 괴짜가 이번에도 또 한 뭉치 보냈는걸......”』 (pp.84~85)
어떠한 목적 의식이 없는 글쓰기, 유명해지면 좋겠다 그러면 여자들도 생기겠지 돈도 들어올지 몰라, 정도의 생각으로 치나스키는 글을 쓴다. 그것에 대해 뭔가 대단한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근데 또 그게 그렇지만도 않다. 어느 때 치나스키는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글을 쓰고 있다고 넌지시 밝히고는 한다. 치나스키는 한결 같은 듯하지만 또 이율배반적이기도 하다. 도무지 알 수 없는데, 뭐 우리들도 다 그렇지 않은가...
“... 미국에는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늘 존재했다. 이 모든 쓸모 있는 육신들이 늘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거의 모든 사람은 작가이다. 모든 사람이 자기가 치과의사나 자동차 정비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자기가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p.252)
일 하고, 글 쓰고, 여자들을 만나는 헨리 치나스키의 일상은 이번 소설에서도 여전하다. 사랑받지 못하였으므로 제대로 사랑을 주지 못하는 치나스키, 언제든 일이 필요하고 여자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충족되는 순간 다시금 그것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하는 치나스키, (《우체국》의 작품 해설에서 봤나 싶은) 선의도 악의도 없는 그저 치나스키스러운 치나스키로 가득하다.
“... 내게 별다른 야망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야망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도 있어야 한다. 내 말은 일반적으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 남겨지곤 하는 자리보다는 더 좋은 자리가 주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도대체 어떤 빌어먹을 인간이 자명종 소리에 새벽 여섯시 반에 깨어나, 침대에서 뛰쳐나오고, 옷을 입고, 억지로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오줌을 누고, 이를 닦고, 머리를 빗고, 본질적으로 누군가에게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주는 장소로 가기 위해 교통지옥과 싸우고,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 하는 그런 삶을 기꺼이 받아들인단 말인가?” (pp.189~190)
이렇게 해서 치나스키가 등장하는 소설 네 편을 모두 읽었다. 《우체국》, 《호밀빵 햄 샌드위치》, 《여자들》, 《팩토텀》의 순으로 읽었는데, 출간된 순서는 《우체국》(1971), 《팩토텀》(1975), 《여자들》(1978), 《호밀빵 햄 샌드위치》(1982)의 순이다. 헨리 치나스키의 연대기로 보자면 유년기에서 청년기까지를 다룬 《호밀빵 햄 샌드위치》, 청년기의 《팩토텀》, 장년기의 《우체국》, 장년기와 노년기의 《여자들》의 순인데, 어떤 순서로 읽을지는 각자 알아서... 아, 개인적인 재미의 정도로 보자면 《호밀빵 햄 샌드위치》, 《우체국》, 《여자들》, 《팩토텀》의 순이랄까...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반쯤 갔을 때 잔은 하이힐을 벗고 그냥 스타킹만 신은 채로 걸었다. 우리가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몇 대의 차량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작자들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쳐들어 보여주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우리에게는 맥주와 샌드위치를 살 정도의 돈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그걸 사서 먹고 마시고, 조금 말다툼을 하고, 사랑을 하고, 잠이 들었다.” (p.236)
이렇게 네 권의 소설을 읽고 나니 뭔가 큰일 하나를 끝마친 느낌이다. (내게는 아직 읽지 않은 부코스키의 시집 한 권과 산문집 한 권이 남아 있고, 곧 주문하려고 하는 산문집 세 권이 기다리고 있기는 하지만...) 오랜 시간 잊고 있었던 음습하게 껄렁거리던, 세상의 모든 도덕과 윤리로부터 도망치기를 꿈꾸었던 나를 떠올렸다. 빈티지하게 인화된 그래서 오히려 고급스러워져버린 피사체라도 떠올리는 것처럼....
찰스 부코스키 Charles Bukowski / 석기용 역 / 팩토텀 (Factotum) / 문학동네 / 319쪽 / 2007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