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없는 치나스키를 탄생시키는 이 숨가쁜 단문들..
찰스 부코스키의 《호밀빵 햄 샌드위치》는 헨리 치나스키를 다루고 있는 그의 소설들 중에 가장 나중에 발표되었지만 가장 어린 헨리 치나스키가 등장한다. 헨리 치나스키는 《호밀빵 햄 샌드위치》, 방황하는 청년 시기를 다루고 있는 《팩토텀》, 우체국에서의 직장 생활과 그 생활을 마감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는 설정인 《우체국》, 인기 작가가 된 이후의 거침없는 여성 편력을 그리는 《여자들》 순으로 성장해간다. 하지만 소설의 발표는 《우체국》 (1971년), 《팩토텀》 (1975년), 《여자들》 (1978년), 《호밀빵 햄 샌드위치》 (1982년) 의 순서로 이루어졌다.
“... 혁지는 또 내려왔고 나는 생각했다. 이게 분명 마지막일 거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다시 내려왔다. 나는 아버지를 싫어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믿을 수 없을 만큼 형편없는 존재였고, 나는 그저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울 수도 없었다. 너무 아프고, 너무 혼란스러워서 울 수도 없었다. 혁지가 또 한 번 내려왔다. 그때 아버지는 멈췄다. 나는 서서 기다렸다. 아버지가 혁지를 거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욕실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욕실 문을 닫았다. 벽은 아름다웠고, 욕조는 아름다웠고, 세면대와 샤워 커튼도 아름다웠으며, 변기조차 아름다웠다. 아버지는 가버렸다.” (p.94)
독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으로 넘어온 (작가의 실제 삶 또한 그러하다) 치나스키의 일상은 그리 순탄치 않다. 하필이면 다른 아이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만 치나스키에게 꼬이고, 덕분에 치나스키 또한 다른 아이들에게 환영 받지 못한다. 이런 치나스키의 상황을 부모가 이해해주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는 폭력적이고 어머니는 무기력하다. 부코스키는 계속되는 단문들만으로 (한글로 된 그의 문장은 책에서 두 줄을 넘어서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루하루가 고역인 치나스키의 일상을 따라간다.
“불독은 더 가까이 다가갔다. 나는 살육의 장면을 볼 수가 없었다. 나는 고양이를 그렇게 놔두는 데 커다란 수치심을 느꼈다. 고양이가 탈출하려고 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었지만, 아이들이 막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고양이는 불독만 상대하는 게 아니라 인간성 전체를 상대하고 있었다.” (pp.123~124)
가끔씩 친구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덩치가 커졌고 나름 운동도 잘 하지만 여러 가지 치나스키에게는 여러 가지 결격 사유가 있다. 어쩌면 그의 마음 속에 있는 어떤 온정 또한 또래 아이들의 악마성에 빗댄다면 결격 사유일 수 있다. 새끼 고양이를 무시무시한 불독에게 먹잇감으로 던져 놓는 아이들 무리 안에서 치나스키는 불독 앞의 새끼 고양이마냥 자신을 제외한 모든 아이들을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상대하는 것만 같다.
“... 나는 나쁜 애들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이 좋았다. 나는 나쁜 기분이 드는 게 좋았따. 누구든 착한 애가 될 수 있지만, 그건 배짱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저 나쁜 척할 뿐이었다. 진짜 나쁠 때는 그런 척하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 하면 된다. 나는 나쁜 사람이 되는 게 좋았다. 착한 척하는 건 구역질이 났다.” (p.128)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치나스키가 인간의 착한 본성을 발전시키는 쪽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치나스키는 자신을 둘러싼 주변 상황들에 굴복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굴복해간다.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러니까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모든 상황을 그저 흘려보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자리를 구한 다음에도 금세 일을 그만두고 다시 대학에 진학한 이후에도 절대 어떤 지향성을 띠지 않는다.
“어쩌면 직업을 갖지 않고 이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루 여덟 시간 노동은 불가능했다. 비록 모든 이들이 그에 굴복하며 살아가지만. 그리고 전쟁, 모든 이들이 유럽의 전쟁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세계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나의 역사에만 관심이 있을 뿐... 전쟁. 여기서 나는 동정이었다. 여자가 어떤지 알기도 전에 역사를 위해 엉덩이에 총을 맞고 날아가 버린다는 게 상상이 되나? ... 나는 살아갈 수 있다. 술 마시기 대회에서 우승할 수도 있다. 도박을 할 수도 있다. 어쩌면 몇 번 강도질을 할 수도 있다. 별로 바라는 것도 없다. 그냥 가만히 놔달라는 것 말고는.” (p.384)
노동하지만 노동에 굴복하지 않는 이율배반의 캐릭터, 끊임없이 여자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는 찌질한 캐릭터의 일단이 보이기 시작하는 헨리 치나스키의 첫 번째 시절은 이렇게 흘러간다.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노동의 일상 그리고 술과 여자와 도박으로 점철될 치나스키의 이후의 삶을 짐작할 수 있다. 아, 이후에 작가가 되는 그를 엿볼 수 있는 부분도 잠시 등장한다. 그는 도서관에서 여러 문학 작품을 섭렵하였고 아버지 때문에 가지 못한 대통령 방문 행진을 상상하면서 쓴 글로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는다. 그리고 부코스키는 책의 맨 앞부분에서 이 책이 모든 아버지들에게 바쳐진 것임을 밝히고 있다.
찰스 부코스키 Charles Bukowski / 박현주 역 / 호밀빵 햄 샌드위치 (Ham on Rye) / 열린책들 / 2016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