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안 로랭 《빨간 수첩의 여자》

부조리한 상황들이 신기하게도 조금씩 아귀를 맞춰가며 기분 좋은 결말로..

by 우주에부는바람

앙투안 로랭을 설명하는 앞날개의 첫 문장에서 소설가이며 동시에 기자,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이라는 작가의 프로필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골동품 열쇠 수집가라는 직업이 하나 더 따라붙는다. (작가는 골동품 판매상을 하다 사정이 어려워지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골동품 열쇠 수집가이며 소설가인 사람이 쓰는 소설에 왠지 믿음이 갔다. 그리고 소설은 이 믿음에 부합한다.

“어떤 사람이 자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자기에게 온 것이 아닌 편지를 읽는 것과 마찬가지다.” (p.43, 사샤 기트리의 말을 재인용)

소설은 퇴근길의 로르가 자신의 핸드백을 소매치기 당하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소매치기와 실랑이를 하다 머리를 다쳤고 핸드백에 집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있었던 탓에 자신의 바로 집 앞에 있는 호텔에서 (자신의 집과 마주하고 있어, 그녀는 창문으로 자신의 고양이 벨페고르를 볼 수 있을 정도이다)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다음 날 깨어나지 못한다. 머리에 생긴 상처는 그녀를 혼수상태에 빠뜨렸다.

“... 로랑은 고등학생 때,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의 유선 전화기에 대고 파스칼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청소년기라는 예외적인 시기를 정의하는 특징이 있다면 그건 분명 저 미친 듯한 웃음일 것이다. 사람들은 그 시기가 지나면 다시는 그런 식으로 웃지 않는다. 세상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완전히 부조리 그 자체라는 것을 급작스레 깨닫게 되면서 그처럼 발작적인 웃음이 딸꾹질처럼 터져 나와 숨도 못 쉴 지경이 되지만, 20년쯤 지난 다음엔 똑같은 생각이 떠올라도 그저 달관한 듯한 한숨만 내쉴 뿐이다.” (pp.92~93)

그녀가 혼수상태에 빠지는 그 순간 서점 주인 로랑은 공원에서 핸드백을 하나 발견한다. 그는 그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고 혹은 그냥 지나치지 못했고 핸드백을 들고 경찰서에 간다. 하지만 결국 그는 핸드백을 자신의 집까지 가져오고 그 내용물을 확인한다. 핸드백 안의 향수를 뿌려보고, 찌진 세탁소 전표를 확인하고,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친필 사인이 들어 있는 책을 발견한다. 그리고 핸드백의 주인이 작성한 빨간 수첩을 읽는다.

“... 로랑은 이 모든 상황이 더는 지속될 수 없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넘어서는 안 될 안전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경찰이 말했던 시민으로서의 아주 훌륭한 행동에서 시작하여 로르네 집 벽난로 앞에서 불을 쬐는 처지로 넘어감으로써 그는 주거 침입죄를 짓게 되었다. 초보 탐정으로서 진행한 수사는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진행되었고, 따라서 모든 것이 멈추게 되는 순간 - 그 순간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다 - 그는 요 며칠이 그의 인생에서 정말로 존재했는지 자문하게 될 것이었다...” (pp.162~163)

그는 그 핸드백 때문에 여자 친구와 헤어지지만 전처와 함께 살고 있는 딸 클로에의 응원에 힘입어 핸드백의 주인인 여자 로르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그는 이를 위해 세탁소를 뒤지고 파트리크 모디아노를 공원에서 기다린다. 그리고 결국 여자의 이름과 성을 알아내고 그녀의 아파트를 찾아가고 병원에 있는 그녀를 대신해서 그녀의 고양이를 돌본다. 그리고 그녀가 혼수 상태에서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 순간 그녀로부터 사라지기로 한다.

“... 그자는 로르를 알고 있는데, 로르는 그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런데도 볼리외 박사는 기억 상실 가능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 들었다. 그를 본 사람은 나뿐이지. 윌리암은 자신에게 거듭 이렇게 말했다.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모든 설명이 결국엔 완전한 비논리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pp.179~180)

소설에 등장하는 상황들은 꽤 부조리하다. 로르의 친구 윌리엄이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모든 설명이 결국엔 완전한 비논리로 귀결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음을 책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부조리한 상황들이 신기하게도 조금씩 아귀를 맞추어 나가고, 결국에는 기분 좋은 결말로 향하게 되니, 그것이 이 소설의 장점이 되고 있다.



앙투안 로랭 Antoine Laurain / 양영란 역 / 빨간 수첩의 여자 (La Femme au Carnet Rouge) / 열린책들 / 252쪽 / 2016 (2014)



ps. 주인공 로랑은 서점 주인이고 책 속에는 파트리크 모디아노를 (파트리크 모디아노는 아예 소설 속 등장인물로 등장한다) 비롯해 많은 프랑스의 현대 작가들이 언급된다. 이것들도 재미있는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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