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 허스트베트 《남자 없는 여름》

소설과 작가, 소설과 독자 사이의 커튼을 들추거나 그 실루엣 너머로...

by 우주에부는바람

미아 프레드릭센, 나는 정신병원에 갇혔다가 풀려난 이후 뉴욕을 떠나 고향인 미네소타의 본든으로 향한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 제공자는 보리스, 결혼한 지 삼십 년이 된 나의 남편의 ‘일시정지’ 때문이다. ‘일시정지’는 보리스가 함께 일하던 프랑스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이제 둘이 한 공간에 머물 수 없는 상황 그러니까 결혼 생활의 ‘일시정지’를 의미하기도 하며, 이러한 사태의 원인 인자 중 하나인 그 프랑스 여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시간은 우리를 혼란하게 한다. 그렇지 않은가? 물리학자들은 시간을 가지고 놀 줄 안다. 그러나 나머지 우리들은 불확실한 과거가 되는 쏜살같은 현재를 가지고 놀아야만 한다. 그러나 그 과거가 머릿속에서 뒤엉켜버리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하릴없이 마지막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한때 미래였던 것이 지금은 과거가 되었지만, 그 과거가 다시 현재의 기억이 된 것은 ‘여기 그리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다...” (pp.270~271)


어찌 보면 사랑과 전쟁, 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상황이지만, 지적인 여성 작가 시리 허스트베트는 이제 이 상황을 자신의 무르팍에 펼쳐 놓고 마음껏 수를 놓기 시작한다. (소설 속에서 나는 어머니의 양로원 동료인 애비게일의 은밀한 자수 작품들을 보게 되는데, 내게는 이 자수와 이 소설이 기묘하게 매칭된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바느질은 꼼꼼하게 좌충우돌한다. 그녀의 바느질은 섬세하고 지적이며 구석구석에 이야기들을 배치한다.


“우리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다 똑같은 형상으로 출발한다. 우리 모두 최초의 무의식 상태인 양수의 바다에서 헤엄칠 시기에 이미 생식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 중 일부에게 Y염색체가 끼어들어 생식기를 건드려 고환을 만들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여자로 태어날 것이다. 생물학에서 인류 기원의 신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반대다. 아담은 이브로부터 나와 아담이 된 것이다. 그 반대가 아니고...” (p.194)


그리고 나와 이메일을 교환하는 미스터 노바디, 그리고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 보리스를 제외한다면 (옆집 남자 피트도) 소설의 인물들은 모두 여자들이다. 그러니까 남자들이 소설에 없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있다고도 할 수 없다. 그 자리를 다양한 세대의 (대략 3 세대) 여인들이 차지한다. 내가 고향에서 가르치는 일곱 명의 어린 소녀들(앨리스, 애슐리, 페이턴, 엠마, 조앤, 니카, 엠마라는 일곱 마녀), 내 딸과 비슷한 연배인 옆집의 롤라, 그리고 나의 엄마의 양료원 동료들(애비게일, 레지나, 페그라는 백조들)이 그들이다.


나는 본든에서 이들 여인들과 교류하면서 (가끔 오래 된 섹스 시도의 기록을 섹스 다이어리로 남기면서, 뉴욕의 보리스를 살피는 딸 데이지에게서 연락을 받으면서) 보리스의 ‘일시정지’로 인해 혼란에 빠진 자신을 수습하기 위하여 애쓴다. 나는 나와 보리스가 강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보리스와 연결되지 않은 나를 떠올리려고 한다. 어떤 경우 이러한 노력이 패착으로 작용될 수도 있겠지만 소설 속에서의 나는 그렇지 않다.


“...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이야기를 써나갈 작정이다. 글로 옮겨진 말은 그것을 쓴 사람을 얼마든지 보이지 않게 감출 수 있음을 당신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내가 여자를 가장한 남자인지 당신이 어찌 알겠는가. 글의 여기저기에 온통 페미니스트적인 주장을 잔뜩 지껄여놓은 것으로 봐서 그럴 리 없다고 말하겠지만, 정말 확신할 수 있는가?” (p.233)


그것이 어쩌면 이 소설을 페미니즘 소설로 읽히도록 만들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한정 짓기에 소설의 스펙트럼은 넓어 보인다. 중년의 여인이 처한 고통스러운 상황은 그녀의 전생애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간까지를 포함하여)를 복기하는 넓은 드로잉 북이 되고 있다. 어린 시절의 그녀와 일곱 마녀, 젊은 시절의 그녀와 옆집의 롤라, 지금 이후의 그녀와 양로원의 백조들이 사이좋게 닮은 듯 다른 데칼코마니가 된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끌어들인다거나 키르케고르를 (아마도 작가는 이 사상가를 이용하기를 좋아하는 듯 하다. 《불타는 세계》에서도 키르케고르가 자주 등장한다.) 거론하면서, 독자들이 그저 스르륵 소설 속 상황으로 잠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작가는 소설과 독자 사이에 커튼을 치고, 그 커튼을 들추거나 커튼의 실루엣 너머로 소설을 읽도록 강요하는 것 같다. 주인공이 혹은 작가 자신이 지금 글을 쓰고 있고, 당신은 지금 바로 그 글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때때로 환기시키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렇지만 묘하게도 그렇게 독서를 방해하는 작가의 서술의 방식에 빠져든다. 오기가 생긴다고나 할까...



시리 허스트베트 Siri Hustvedt / 심혜경 역 / 남자 없는 여름 (The Summer Without Men) / 뮤진트리 / 282쪽 / 201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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