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트레버 《비 온 뒤》

숨가쁘게 진행되는 묘사가 느슨한 사건들을 밀어부치는...

by 우주에부는바람

윌리엄 트레버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났지만 대학을 졸업한 이후 영국으로 이주하였다. 하지만 그의 단편들 대부분은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줌파 라히리가 찬사를 보냈다는 사실만으로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집을 손에 들었다. 이 책은 1928년생인 작가가 1996년, 67세일 때 쓴 작품집이다. 줌파 라히리의 찬사에 고개를 끄덕일만큼 감흥이 이는 소설들은 아니었다. 줌파 라히리가 찬사를 보냈다는 그 작품집은 그의 평생에 걸친 작업을 정리한 것으로 1992년 발간한, 90편 가까운 단편들이 실려 있는 《단편모음집 (The Collected Stories)》이다.


「조율사의 아내들」

벨은 피아노 조율사를 사랑했지만 피아노 조율사는 바이얼릿과 결혼했다. 40여 년이 지났고 바이얼릿은 죽었고 벨은 그제야 피아노 조율사와 결혼할 수 있었다. 그사이 벨은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았다. “...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은 벨이고, 그녀가 한 남자의 애정을 다 받고 있으며, 다른 여자의 소유를 약탈하고 침실을 점령하고 차를 몬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어야 했다. 그것이 전부여야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벨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여겨졌다. 그는 거의 40년에 가까운 결혼이 허용하고 신성하게 만들어놓은 방식 안에 자리잡고 있었따. 그것은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p.18) 살아남아 지금 조율사와 살고 있는 벨이 느끼는 상실감, 그러니까 조율사와의 결혼이 메우리라 짐작했던 구멍이 다시금 커지는 실제의 상황에 대한 벨의 혼돈이 그려지고 있다.


「우정」

필립과 결혼하여 두 사내아이를 둔 프란체스카와 프렌체스카와 어린시절부터 친구였던 마지... 필립은 마지를 마땅찮아 하지만 프란체스카에게 마지와의 우정은 답답한 결혼 생활에 내리는 단비와도 같다. 그리고 마지를 통해 옛 남자를 만난다. “... 최근의 설명할 수 없는 탈선과 복귀는 마치 자신이라는 사람으로부터 휴가를 냈다가 제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느껴졌지만, 도무지 이해는 할 수 없었다. 한바탕 광기의 분출은 결코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니까.” (p.47) 그리고 이제 프란체스카는 그 남자와 헤어졌고, 필립은 프란체스카에게 마지와의 결별을 요구한다.


「티머시의 생일」

티머시는 생일날마다, 생일날에만 부모에게 들른다. 하지만 이번 생일 티머시는 자기 대신 에디를 보낸다. 그 사이 티머시는 한 명의 연인을 죽음으로 떠나 보내야 했고, 이제는 에디가 티머시 곁에 있는 남자이다. 티머시의 부모는 티머시의 동성애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고 지금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이의 놀이」

제라드와 리베카는 옆집에 사는 아이들이었지만 이제는 남매가 되었다. 제라드의 아버지는 제라드가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을 허용했고, 리베카의 어머니는 리베카의 아버지에게 리베카를 맡기고 떠났다. 제라드의 어머니와 리베카의 아버지는 옆집에 사는 이웃이었다가 이제는 부부가 되었고, 제라드와 리베카는 남매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남매가 된 두 아이는 자신들만의 놀이를 즐긴다. 두 아이는 과거의 자신의 부모들을 생각하며 전과정을 연기하고, 또한 현재를 함께 나눈다. 이것이 두 아이의 놀이이다.


「약간의 볼일」

교황이 도시를 방문하던 날, 사람들은 그 방문을 축하하기 위해 시내로 나가거나 집에서 티비를 시청한다. 하지만 두 젊은이는 이때를 이용하여 도둑질을 한다. 그리고 어느 집에 들어갔다가 티비를 시청하는 한 노인을 발견하고 그를 의자에 묶어 놓은 채 나온다. 그리고 이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묶어 놓고 나온 이 늙은이를 돌아가 완전히 처리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한다. “... 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흥분이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교황이 아일랜드에 있다는 이야기와 햇빛 속에서 거행된 훌륭한 미사 이야기를 했다. 두 젊은이는 그날 아침에 온 길을 다시 걸었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배짱이 후천적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했다.” (p.118)


「비 온 뒤」

그녀는 원래 남자 친구와 햇빛을 쬐며 치유를 하는 휴가를 계획했다. 하지만 남자 친구와는 헤어졌고 그녀는 지금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했던 이탈리아의 한 도시로 여행을 왔다. 그리고 그녀는 이곳에서 파탄난 사랑을 떠올린다. “그녀가 사랑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자,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상항을 바꾸려고 더 밝은 현재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래의 불변성을 강요하자, 그는 다른 남자들처럼 물러섰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피해자였다...” (p.141)


「과부들」

평생을 함께 한 매슈는 어느 날 평화롭게 떠났다. 그리고 캐서린은 과부가 되었다. 또한 캐서린의 집에는 이미 과부가 된 캐서린의 언니 얼리샤가 함께 살고 있었다. 매슈가 죽고 얼마 후 리리 씨가 집을 방문하고, 매슈로부터 받지 못한 공사대금이 등장한다. 얼리샤는 리리 씨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하고, 캐서린은 진실여부와는 상관없이 돈을 지불하려고 한다. 이제 캐서린과 얼리샤는 대립한다. 그리고 이 대립에는 단순한 공사대금의 지불 이상의 것이 깃들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길버트의 어머니」

로절리에게는 길버트의 어머니이다. 길버트는 유별났다. 그녀는 길버트가 두 살 때 이미 그의 유별난 눈길을 알아챘다. 아홉 살 때 정신치료와 관련한 돌봄을 받기도 했다. 이제 길버트는 이십대이고, 로절리는 동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 주목한다.


「감자 장수」

엘리는 임신을 했지만 그 아이의 아비가 누구인지를 말할 수는 없었다. 엘리의 삼촌과 엄마는 동네의 평판을 우려하면서 그녀를 감자 장수인 멀리비와 결혼시키기로 하고 실행에 옮긴다.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자신의 이득을 위해 결혼에 동의하였고 아이가 태어났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어느 날 엘리는 더 이상 자신이 간직한 비밀을 감출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아이에게도 그 사실을 알리고, 마을 사람들도 모두가 이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실추」

십대 소년 말턴은 어느 날 아버지의 과수원에서 여인의 환영을 발견한다. 그는 이것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그 여인이 카톨릭 성인일 것이라고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프로테스탄트교가 주류인 이곳 동네에서 말턴은 자신이 본 카톨릭 성인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일종의 소명에 시달린다. 말턴의 가족은 그를 말리지만 소용이 없었고, 말턴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하루」

레스워스 부인은 휴가지에서 남편의 외도에 대해 알게 된다. 그에게 배달된 편지를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자신들에게 아이가 없다는 사실, 자신은 입양에도 반대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남편의 상대인 여자의 나이를 의식한다. 이제 그녀는 어떤 식으로든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이인 것이다.


「데이미언과 결혼하기」

조애나는 꼬맹이이던 시절 아버지의 친구인 데이미언에게 그와 결혼하겠다고 말했다. 자유로운 데이미언은 동네를 떠나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고 조애나가 그렇게 말하던 시절로부터 22년이 지난 뒤 그들 앞에 나타났다. 이제 예순이 넘은 나와 데이미언은 다시금 옛날처럼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성장해서 도시로 떠났던 조애나도 이제 고향으로 돌아왔다. 나는 조애나와 데이미언, 어린 시절 결혼하겠다고 선언하였던 꼬맹이와 예순을 넘겨 다시 친구의 자리로 돌아온 데이미언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바라본다. 나와 아내는 두려움을 느낀다.



윌리엄 트레버 William Trevor / 정영목 역 / 비 온 뒤 (After Rain) / 한겨레출판 / 308쪽 / 2016 (1996)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제임스 설터 《사냥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