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휘황하여도 감춰지지 않은 어두운 구석의 징표...
*2016년 5월 5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우연인지 얼마 전 JTBC 뉴스에서 우순경 살인 사건에 대한 스케치가 있었다. 1982년 4월 26일,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 궁류지서에 근무하던 우범곤 순경이 카빈 소총 2정과 실탄 180발 그리고 수류탄 7발을 가지고 궁류면의 네 개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주민 56명이 사망케 하고, 33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사건을 ‘내일’ 이라는 코너 속의 사건으로 다룬 것이다. 그리고 말미에, 우순경이 그곳 지서에 근무하기 직전 근무처가 청와대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시의 뉴스에서 이 거대한 사건에 대한 뉴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뭐 그랬다는 이야기리라, 그때 그 시절에는...
소설은 일종의 만화경의 모습을 띠고 있다. 우순경은 소설 속에서 황순경이 되고, 그 당시 마을 사람들의 실명과 설정은 이렇게 저렇게 뒤바뀌지만 대략적인 살인의 방식은 고스란히 복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살인에 사용한 주요 무기가 카빈 소총이어서 그런지 소설은 저 멀리 미국의 교도소, 그곳에 갇힌 한 인물이 카빈 소총을 발명하게 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또한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새끼 순경의 허풍은 디테일이 꽝이었다. 구라의 품격을 결정하는 것은 디테일. 구라에 혼을 불어넣는 것도 깨알 같은 디테일. 하느님은 아담의 뼈가 아니라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빚으셨다지. 갈비뼈! 이러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지...” (p.89)
실제가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고 흔히들 말하는데, 아마도 소설들이 분발하지 않을 수 없는 원인이기도 할 터, 김경욱은 아예 그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실제를 소설 속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작가는 사건의 ‘깨알 같은 디테일’의 창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신문 기사 속에서 그저 이름과 나이, 성별로만 기재되고 또 그대로 사라지는 사건 속의 사람들에게 이처럼 우여곡절 많은 생애가 있었다, 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 오기가 솟았다. 오기는 큰형의 이름이기도 했다. 손반기는 아들만 다섯이던 집에서 여섯째로 태어났다. 둘째 형은 사기, 셋째 형은 삼기, 넷째 형은 이기, 다섯째 형은...... 일기가 아니라 한기였다... 원칙대로라면 여섯째 아들의 이름은 내림등차수열 공식에 따라... 영기가 되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손반기 부친에게 0은 숫자도 뭣도 아니었다... 그리하여 한기 동생은 반기가 되었다.” (pp.165~166)
그러데 실제 영아에서 70세에 이르는 인물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였고, 자고 있는 일가족 다섯 명을 깨워 이들과 함께 폭사하는 것으로 사망한 우순경 총기 난사 사건을 다루는데 있어 전반적으로 너무 재기발랄하다. (실제로 이렇게 휘몰아치듯 구라를 치는 문장을 성석제 이래로 오랜만에 만난 듯하다.) 그 사건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는 자로서 이 날아갈 듯 명랑한 문체를 따라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나 할까...
1982년, 전두환의 신군부가 정권을 잡았고, 광주항쟁이 있었고, 정의사회구현이라는 구호가 거창하던 그때 그 시절,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 그때 그 시절의 ‘빛과 그림자’를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이 사건에 주목하였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해하기 힘든 사건 사고가 수시로 발생하는 사회, 그러한 사회는 아무리 빛으로 휘황하여도 그 어둡고 위태로운 구석을 숨기지 못하여 그렇게 때때로 발작을 하는 것이리라...
김경욱 / 개와 늑대의 시간 / 문학과지성사 / 332쪽 / 2016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