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사키 도모카 《봄의 정원》

그렇게 우리는 양쪽에서 산다, 여기와 거기에서...

by 우주에부는바람

“... 다로는 초등학생 때 철봉에 이마를 들이박아 다친 적이 있는데, 그때 같은 반 학생들이 뼈가 보인다며 잇따라 구경하러 왔건만 결국 자신만 못 봤다는 게 지금도 한으로 남아 있었다. / 맥주가 너무 찼다. 중고 가구점에서 산 냉장고는 최근 이상한 소리가 난다.” (p.16)


왠지 이런 문장의 흐름에 정이 간다. 살짝 고조되었던 감정을 또 그만큼 지그시 눌러 앉힌다. 맥락 없이 툭툭 던지는 것 같은데 그것은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지만 불필요한 몰입을 방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을 ‘꼭 천천히 읽어주세요.’라는 안내문구가 책에 있는데, 바로 이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극에 손을 대보라는 채근이었는지도 모른다. 일본 사소설은 이처럼 사소한 세심함으로 특징지어지기도 한다.


“... 다로는 음식을 먹고 나서 바로 눕는 버릇이 있었다. 어렸을 때 그러다 소가 된다고 부모가 여러 번 주의를 주었던 터라, 별자리도 황소자리에다 머리 좌우로 쑥 나온 부분이 있으니 언젠가 소가 되겠구나 했는데 지금까지도 뿔은 나지 않았다.” (p.30)


소설의 화자인 다로는 윗변이 긴 기역자 모양의 연립주택 뷰 팰리스 사에키 Ⅲ 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 건물은 이제 곧 재개발이 될 터이고, 그래서 모두 여덟 세대로 구성되어 있는 연립에는 지금은 네 집만이 남았다. 이 연립주택은 번호로 매겨지는 호수 대신 십이지신이 각 호를 지칭한다. 삼년 전 이혼한 다로와 이층의 ‘사’ 호에 사는 사 씨, 그리고 ‘진’ 호에 사는 니시, 그리고 또 한 가족이 연립주택에 살고 있다.


“... 《봄의 정원》은 20년 전 어느 집에 사는 부부의 일상생활을 촬영한 사진집이다. 남편은 서른다섯 살 난 광고 감독, 아내는 스물일곱 살 난 소극단 배우였다.” (p.42)

“지금은 어느 서점에서도 찾을 수 없는 《봄의 정원》은 우시지마 다로와 우마무라 가이코의 공저로 되어 있지만, 누가 어느 사진을 찍었는지는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두 사람 다 사진집을 낸 것은 그때 한 번뿐이다. 《봄의 정원》이 출판된 지 2년 뒤, 그들은 이혼했다...” (pp.49~50)


소설의 주인공은 다로, 라기 보다는 다로의 집에서 엿볼 수 있는 물빛 집이다. 다로의 연립주택이 왼쪽 위쪽 모퉁이에 있다면 물빛 집은 오른쪽 아래 모퉁이에 위치하고 있다. 다로는 니시 씨를 통해 그 물빛 집의 내부 사진으로 채워진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니시 씨와 함께 그 물빛 집에 들어가, 사진 속의 여러 공간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 빈집에 대해서 뭐랄까, 눈치가 빨라졌다. 니시의 말처럼 빈집은 둘러싼 공기가 사람이 사는 집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말끔하게 손질되어 있어 언뜻 보면 잠시 집을 비운 것처럼 보이는 집도, 아무도 살지 않는 집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갖은 종류의 빈집, 빈방이 있었다...” (p.65)


소설의 주인공은 집이면서 동시에 그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한 마을의 흥망성쇠, 가 주인공이냐 하면 그건 아니다. 오히려 한 마을의 흥망성쇠와는 무관한 그 무엇, 이 주인공이다. 물빛 집, 사진집으로 기억되는 물빛 집이 그 무엇에 해당하는 것일 수도 있고, 그 물빛 집의 사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자 애쓰는 니시 씨나 그러한 니시 씨를 돕는 다로가 주인공일 수도 있다.


“... 때죽나무 고양이 발 옹이를 만드는 때죽나무 고양이 발 진딧물(납작진딧물)은 때죽나무와 벼과 식물을 오가며 단성생식과 유성생식을 반복한다고 쓰여 있었다. 그 때문에 때죽나무와 벼과 풀, 둘 다 있는 곳에만 서식할 수 있다.” (pp.107~108)


소설을 읽는 동안 빈집이 늘어가고 있는 우리 동네를 생각했다. 작년에 집을 구입할 때 집을 파는 이가 재개발, 집값 상승 등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 그제야 기억났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양쪽이 모두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떠나가고 또 어떤 이들은 들어선다.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금 여기의 우리들일 뿐, 대부분의 것들은 자리를 옮길 지언 정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게 우리는 양쪽에서 산다, 여기와 거기에서...



시바사키 도모카 / 권영주 역 / 봄의 정원 (春の庭) / 은행나무 / 153쪽 / 201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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