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와다 요코 《용의자의 야간열차》

도시와 도시, 사람과 사람 사이로 '나'를 잃고도 '당신'으로 떠나는..

by 우주에부는바람

당신은 무용 예술가이다. 그리고 공연을 위하여 혹은 다른 일로 여행을 하고는 한다. 얼마나 자주 여행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다. 그 여행 중에 열차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야간열차를 이용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얼마나 자주 야간열차를 이용하는지는 알 수 없다. 왜 당신이 소설 내내 여행을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소설의 끄트머리에 가서야 겨우 알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좋은 손톱깎이네. 이거 나한테 팔지 않을래요... 그건 곤란해요. 저도 가끔 손톱을 깎아야 하니까... 그렇지만 계속 인도에 있을 건 아니잖아요? 고국으로 돌아가면 새것을 살 수 있잖아요? 인도에는 인간의 욕구를 채워주는 건 뭐든 다 있지만, 손톱깎이만 없어요. 부탁이에요. 이걸 파세요.... 좋아요. 몇 루피 주실 거죠? ... 실은 누피는 없어요... 네!? ... 그 대신 열차표가 있어요. 그렇지만 이건 보통 차표가 아니에요. 부적 같은 겁니다. 이걸 지니고 있으면 계속 철도를 타도 다닐 수 있죠... 계속이라니, 언제까지요? ... 이 여행이 끝나면, 곧바로 다음 여행이 찾아옵니다. 그게 끝나면 바로 다음 여행이 시작되죠. 그렇게 끊임없이 여행이 계속되는 겁니다.” (pp.132~133)


당신의 잦은 여행의 이유와 함께 당신이 왜 ‘나’로 등장하지 못하고 ‘당신’이 되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도 소설의 끄트머리에 가서야 알 수 있다. (문득 하일지와 장정일이 떠올랐다. 그들이 당시에는 금기시 되었던 이인칭 소설을 썼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누가 먼저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당신이 이인칭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너무 그럴싸해서, 그렇게 된 연원에 손톱깎이 하나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어서 미소를 지었다.


"그날 나는 당신에게 영원한 승차권을 내주고, 그 대신 자신을 자신으로 여기는 뻔뻔한 넉살을 사들여 ‘나’가 되었다. 당신은 더 이상 스스로를 ‘나’라고 부르지 않게 되어, 언제나 ‘당신’이다. 그날 이래로 당신은 줄곧 묘사되는 대상對象이 되어, 2인칭으로 열차를 탈 수밖에 없게 되었다.“ (p.133)


당신이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야간열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중에 만나는 사람들, 당신은 그 사람들을 통하여 이야기에 접근하고는 한다. 그 사람들과 몇 마디 나누는 것만으로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하고, 그 사람들과 아무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도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야간열차는 당신의 이야기의 근원이면서 과거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당신의 이야기의 현재이며, 야간열차가 사라지지 않는 한 당신의 이야기의 미래이기도 할 것이다.


“... 뱃속에 칼을 품고 다니면, 그것이 눈을 꿰뚫고 드러나기 마련이다. 먼저 자기 자신부터 속여야 한다. 당신은 먼 훗날 자신이 기술을 갈고 닦아 사기꾼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때는 스스로도 자기가 날조해낸 얘기를 굳게 믿고 있을 게 틀림없다...” (p.37)


야간열차로 하는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야간열차를 기다리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는 혹은 야간열차가 통과하는 장소들도 당신에게는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만다. 하지만 당신이 정확히 이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볼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당신은 밝혀진 범인이 아니라 그저 ‘용의자’가 될 뿐인지도 모른다. (해설에 따르면 ‘용의자의 야간열차’는 일본어 발음에 따른 일종의 언어유희라고 하지만...)


“좁은 이마에 우울해 보이는 주름을 새기고, 충혈된 탁한 눈으로 원망스러운 듯이 이쪽을 노려보는 남자 같은 도시. 골격은 탄탄하지만, 키에 비해 어깨 폭이 너무 넓어 팔근육이 묵직하게 매달려 있다. 아니, 이건 좀 지나친가. 당신은 린츠를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는다...” (p.102)


당신이 다루고 있는 도시와 도시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현대적인 우화는 절제된 묘사로 그 울림을 더욱 자극한다. 모두 열세 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는 이야기는 도시에 혹은 도시와 도시 사이에 유니크하게 자리잡고 있다. 독일어와 일본어로 번갈아가며 작품을 발표한다는 작가 다와다 요코, 그 작가가 가지는 특이성과 소설 속 당신의 특이성이 묘하게 맞물린다. 당신의 다른 이야기들을 읽고 싶어진다.



다와다 요코 / 이영미 역 / 용의자의 야간열차 (容疑者の夜行列車) / 문학동네 / 169쪽 / 201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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