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사라마구 《카인》

인간의 논리로 신을 재단하지 말라던 오래전 전도사를 떠올리며...

by 우주에부는바람

모태 신앙까지는 아니어도 어린 시절부터 얼마간 교회를 다녔다. 신을 믿었다, 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저 교회를 다녔을 뿐이다. 그래도 교회를 다녔기에 성경의 일부를 읽거나 외웠고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카인이 아담과 하와의 첫 번째 아들이라는 것,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임으로써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의도되었다는 것도 그때 들었던 이야기들 중 하나이다.


“... 다른 모든 존재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좋지만, 저와 내 자유에 관해서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뭐, 죽이는 자유 말이냐. 주에게 내가 아벨을 죽이는 것을 막을 자유가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주께서 얼마든지 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저 다른 모든 신들과 공유하고 있는 무오류성에 대한 자부심을 아주 잠깐 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고, 또 아주 잠깐만 진실로 자비를 베풀어 겸허하게 제 제물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주께서는 그것을 거부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신들, 주와 다른 모든 신들은 스스로 창조했다고 주장하는 것들에 의무가 있으니까요...” (p.39)


고등학교 이학년 즈음부터 교회 다니기를 그만두었다. 그때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이런 거였다.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다른 인간을 용서하도록 가르치고 있는데, 그리고 그렇게 용서할 수 있었던 자들을 높게 추켜세우면서, 왜 자신은 인간을 용서하지 않고 지옥이라는 것을 만들어 그곳에 떨어뜨린다고 겁박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관장하는 분이라는데 도대체 왜... (당시 나의 이런 물음에 대해 다니던 교회의 젊은 전도사는 인간의 자유의지 그리고 신의 초월성으로 답변해주었지만 그리 신통치는 않았다. 신통치 않음을 내색하자 인간의 논리로 신을 재단하지 말라며 압박하였던 것도 같다.)


“... 그들이 실제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의구심, 당황, 논쟁적인 전진과 후퇴는 그럼에도 거기에 존재했다. 우리가 한 것이라고는 당시의 언어나 사고에 들어 있는 이중의, 그리고 우리에게는 해결 불가능한 수수께끼를 현대의 언어로 표현한 것뿐이다. 지금 그 결과가 이치에 닿는다면 당시에도 그랬을 것이다...” (p.54~55)


아담과 하와의 아들 카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카인》은 어쩌면 당시의 내가 가진 의구심이 치기 어린, 어린 교인의 투덜거림에 그치지 않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래서 반갑다. 소설 속 카인은 ‘현대의 언어’로 하나님에게 꽤나 직접적으로 대든다. 내가 가지고 있던 의구심에 더하여 하나님이 행한 많은 행동들에 대해 (예를 들자면 소돔에서 죽었을 아이들이나 아들을 죽일 뻔 했던 아브라함 등을 떠올리며) 대놓고 적의를 드러낸다.


“...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미래는 이미 적혀 있어요. 우리가 그것이 적힌 페이지를 읽는 법을 모를 뿐입니다...” (p.154)


책은 그렇게 구약성서의 많은 이야기들을 다룬다. (주제 사라마구는 이전에 《예수복음》이라는 소설을 먼저 썼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으나 그 소설에서는 신약성서 그러니까 예수 이후를 다룬다.) 카인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아담과 하와, 카인과 아벨, 노아, 욥,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를 만나고 바벨탑의 소동, 소돔과 고모라의 억울한 죽음 등을 떠다닌다. 카인은 자신의 방식으로, 그러니까 주제 사라마구는 자신의 방식으로 성서 속의 여러 페이지를 읽어내는 셈이다.


“... 누군가 당신에게 당신의 진정한 얼굴을 보여줄 날이 와야만 했습니다... 한 인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인류는 없을 것이고,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을 겁니다... 소돔의 아이들을 잊지 마십시오...” (p.206)


나는 여전히 신의 존재에 회의적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배제할 마음은 이제 갖고 있지 않다. 나는 인류 전체의 윤리를 고양시키는 데에 신이나 종교가 필요하다면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여긴다. (나는 무교회주의자인데, 신보다도 교회에 더 회의적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한 개인이나 도드라지는 한 집단에게 귀속되는 것을 원치 않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도발에, 신을 향한 우리들 속세의 의구심에 찬성한다. 이러한 의구심이 종교의 윤리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전달되기를 바란다.



주제 사라마구 José Saramago / 정영목 역 / 카인 (Cain) / 해냄 / 210쪽 / 2015 (2009)



ps. 당연하게도 《카인》은 출간 이후 많은 논란에 휩싸였을 것이다. 책은 2009년 출간되었고, 다음 해에 주제 사라마구는 죽었다. 작가가 1991년에 쓴 《예수복음》은 《카인》보다 훨씬 심한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고 한다.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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