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그의 글쓰기의 에너지원...
『뉴욕』지의 질의에 대한 답변 (1995), 왜 쓰는가? (1995), 언젠가 우리 어머니한테 일어난 일이 생각난다네 (1983), <찰스 번스타인>이라는 말이 들어 있는 25개의 문장 (1990), 낱말 상자 (존 캐슬러의 조각), 살만 루슈디를 위한 기도 (1993), 펜실베이니아 주지사에게 보내는 탄원서 (1995)... 책은 네 개의 산문, 한 개의 소개말, 한 개의 연설, 그리고 한 개의 조각품을 찍은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1983년에서 1995년 사이의 것들이고, <왜 쓰는가?>에는 다섯 개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뉴욕』지의 질의에 대한 답변>은 아마도 작가가 집적 겪은 짧은 일화인 것 같다. 할아버지가 사는 60층 아파트에서 네 살이나 다섯 살의 폴 오스터는 1페니짜리 동전을 도로에 떨어뜨리려고 하는 참이다. 그 순간 할머니가 소리친다. “안 돼! 그 동전이 누군가에게 맞으면 머리 속으로 곧장 뚫고 들어갈 거야!” 제목이 질의에 대한 답변이니 질의가 있을 것인데 그 질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뉴욕통인 폴 오스터에게 뉴욕과 관련한 최초의 기억을 물은 것은 아닐까...
<왜 쓰는가?>에 실려 있는 다섯 개의 이야기는 그 하나하나가 모두 소설의 소스로 훌륭하다. 아마도 우리 주변의 어떤 사건들로부터 소재를 끌어올리는 폴 오스터는 자신의 그 소재들 중 몇 가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리라. 그러니까 바로 이러한 소재들로부터 나의 그 재밌는 소설들이 시작되었소,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이야기들 중 어떤 것은 얼마 전 출간된 폴 오스터의 《내면 보고서》에도 얼핏 출현한다.
<언젠가 우리 어머니한테 일어난 일이 생각난다네>는 아마도 작가를 향한 비평가들의 태도에 대한 폴 오스터의 바램이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폴 오스터가 아직 초짜 글쟁이인 시절 레즈니코프라는 시인에 대한 글을 한 편 쓴 적이 있고, 아마도 그 글에는 일종의 칭찬이 들어 있던 것 같고, 이후 폴 오스터는 그 글을 읽은 레지니코프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 레지니코프는 폴 오스터에 이렇게 말한다.
“자네가 보내 준 글 말인데...... 그 글을 읽으면, 언젠가 우리 어머니한테 일어난 일이 생각난다네. 하루는 길거리에서 웬 낯선 사람이 어머니에게 다가오더니, 사뭇 상냥하고 우아한 어조로 어머니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칭찬했지. 어머니는 당신의 머리카락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적도 없었고, 머리카락이 다른 부위보다 특히 돋보인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네. 하지만 그 낯선 사람의 칭찬 덕분에 어머니는 그 날 온종일 거울 앞에 앉아서 머리를 매만지고 치장하고 감탄하면서 시간을 보냈지. 자네 글도 나한테 꼭 그런 역할을 해주었어. 나는 오후 내내 거울 앞에서 나 자신을 찬탄했다네.” (pp.52~53)
<찰스 번스타인>이라는 말이 들어 있는 25개의 문장, 은 프린스턴 대학에서 열린 낭송회에서 폴 오스터가 찰스 번스타인을 소개한 말이다. <낱말 상자>는 존 캐슬러의 조각이고 일종의 개념 미술 같은 것인데, 그것은 열두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THE WORLD IS IN MY HEAD. MY BODY IS IN THE WORLD.”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뫼비우스의 띠를 연상하게 된다. 이 문장 또한 얼마 전 읽은 《내면 보고서》 (혹은 《디어 존, 디어 폴》)에서 본 적이 있다.
<살만 루슈디를 위한 기도>는 살만 루슈디가 아직 호메이니의 ‘패트와’ (일종의 죽음의 선고)에 의해 은둔 생활을 해야만 했던 때에 그를 지지하며 쓴 글이다. (살만 류시디의 패트와는 1998년 하타미 이란 대통령에 의해 철회되었다.) <펜실베이니아 주지사에게 보내는 탄원서>는 흑인 민권 운동가인 무미아 아부-자말에게 내려진 사형을 철회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국제 펜클럽 미국 본부의 기자회견 중에 발표된 것이다.
시와 산문과 시나리오 그리고 주로 소설을 쓰는 폴 오스터의 산문집에 실린 글의 내용은 자신에게 직접 일어났던 어떤 사건에 대한 기억, 자신에게 직접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들은 바가 있는 어떤 사건에 대한 이야기, 작가 혹은 비평가들과의 교류, 예술품에 대한 자신의 생각, 그리고 이런저런 사회적인 문제까지 뒤죽박죽이다. 그렇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이 폴 오스터가 글을 쓰도록 만드는, 일종의 에너지원이다.
폴 오스터 Paul Auster / 김석희 역 / 왜 쓰는가? (Why Write?) / 열린책들 / 101쪽 / 2005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