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자신을 향한 어린 당신의 너무 늦은 일기, 라고 해도 좋을...
《내면 보고서》는 1947년생인 작가가 (그쪽의 나이 계산법으로) 예순 여섯이 되던 해인 2013년에 발표하였다. 일종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유년기에서 청년기에 걸쳐, 폴 오스터 자신을 들추어내어 다시 되새기는 작업이다. 아마도 거리를 두기 위해서인지 (우리는 때때로 삼인칭으로 쓰는 일기를 꿈꾸고는 한다) 책은 ‘당신’이라는 이인칭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의 일인칭인 내가, 그때의 나를 이인칭으로 두어 풀어내는 자서전이다.
“여섯 살. 어느 토요일 아침 이제 막 옷을 다 입고 신발 끈을 매고(이제는 다 컸다. 제 할 일은 다 할 수 있는 소년이다),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가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다 마치고, 이른 아침 봄날 햇빛 속에서 서 있는데 행복감이 밀려들었다. 평안과 기쁨을 억누를 수 없는, 황홀한 느낌이었다. 잠시 후 당신은 혼잣말을 했다. 여섯 살보다 더 좋은 건 없어. 여섯은 될 수 있는 나이 중에서 단연코 최고의 나이야. 당신은 그 순간을 3초 전만큼이나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날 아침으로부터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당신 안에서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또렷하게, 당신이 지니고 있는 수많은 기억들 중 그 어느 것보다도 밝게 타오르고 있다...” (p.19)
책은 모두 네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챕터는 ‘내면 보고서’라는 제목을 달고 있으며 열두 살 이전까지의 시기, 작가 어린시절의 내면에 대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작가는 이 내면 보고서로만 한 권의 책을 만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해 본다. 그럴 수만 있다면 작가는 분명 그러했을 것이다. 물론 무엇이 그러한 작가를 가로막았을지 짐작이 간다.
“지루함은 사색과 몽상의 원천이므로 얕잡아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당신은 어린 시절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홀로 멍하니 빈둥거리며 보냈다... 밖에 비가 내리거나 너무 추워서 나갈 수가 없을 때도 생기를 잃고 기분 나쁜 무기력에 빠져 있곤 했다. 책을 읽기엔 아직 어린 나이였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 만한 나이도 아니었다. 같이 놀아 줄 친구를 애타게 그리면서 창가에 앉아 유리창 위로 미끄러지는 빗줄기를 바라보곤 했다... 끔찍할 정도의 지루함, 단조롭고 조용하기만 했던 길고도 외로운 시간들, 세상이 당신 주위를 돌기를 멈추어 버린 오전과 오후들. 하지만 알고 보면 그 황량한 바탕은 당신이 안에서 뛰놀던 정원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당신은 바로 거기서 스스로 혼자 있는 법을 배웠다. 사람은 홀로 있을 때 비로소 자유로이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된다.” (pp.51~52)
책은 소설이 아니므로 작가는 상상력을 최소한으로 하고, 이인칭으로 설정한 자기 자신을 돌아보았을 것이다.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최대치, 그때 그 순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그 순간이 도래하기 전과 후를 비롯하여 그 순간을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 그 순간으로부터 떠올릴 수 있는 뉘앙스뿐만 아니라, 어렴풋하게라도 떠오르는 색이든 소리든 촉감이든 후각이든 닥치는 대로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치게 되지 않았을까.
“당신은 조금씩 어린 시절의 끝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열 살부터 열두 살까지의 시간은 여덟 살부터 열 살까지의 시간 못지 않은 엄청난 여행이었다. 그러나 당신은 자신이 빨리 움직이고 있으며 사춘기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기 때문이다. 지금은 눈 깜짝할 새 생일이 다시 돌아온다...” (p.100)
그렇게 두 번째 챕터 ‘머리에 떨어진 두 번의 타격’은 두 편의 영화 이야기로 넘어간다. 1957년 작가가 열 살 때 보았던 영화 <놀랍도록 줄어든 사나이 (The Incredible Shrinking Man) > (1957년 4월 개봉, 상영 시간 81분, 잭 아널드 감독, 리처드 매시선 원작, 그랜트 윌리 주연)와 1961년 열 네 살 때 보았던 영화 <나는 탈옥수 (I Am a Fugitive from a Chain Gang)> (1932년 11월 개봉, 상영 시간 93분, 머빈 리로이 감독, 폴 무니 주연) 가 그것이다. 십대 시절에 작가가 보았고, 그것이 육십이 넘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이 두 편의 영화가 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일지 짐작할 수 있다. (이 두 편의 영화를 찾아보고 싶게 만든다)
세 번째 챕터는 ‘타임캡술’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작가의 첫 번째 아내인, 전처이기도 한 리디아와 교환한 (물론 그중 한 쪽인 폴 오스터 쪽의) 편지가 주로 실려 있는 챕터이다. 편지는 1966년 여름부터 1970년대 말까지 쓴 것들이고, 특히 1967년과 1968년 그의 나이 열아홉 살과 스무 살에 집중되어 있다. 아직 작가가 되기 이전, 시나리오와 시와 소설을 마구잡이로 쓰기 시작하던 시기의 폴 오스터를 근접에서 느낄 수 있다. 마지막 챕터는 ‘앨범’인데 제목처럼 이미지들의 모음이다. 책의 다른 세 챕터에서 거론되었던 모든 것들 중 일부를 이미지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 일기를 쓸 때의 문제는 당신이 이야기를 누구에게 들려주어야 할지,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인지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인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향해서라면 너무 이상하고 당혹스러워 보였다. 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굳이 수고스럽게 자신에게 들려준단 말인가. 왜 벌써 경험한 것을 다시 되새기는가 말이다. 다른 사람을 향한 것이라면, 그 사람은 누구이며,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어떻게 일기 쓰기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은 그 당시엔 너무 어려서 나중에 얼마나 많은 것을 잊어버리게 될지 몰랐다. 현재에만 갇혀 있어서 당신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상대가 실은 미래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당신은 일기장을 내려놓았고, 그 후로 47년 동안 조금씩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p.193)
책을 읽는 동안 개인적으로, 과거의 나를 끄집어내어 기록해보고자 하는, 오래 되었고 지금도 지속되는 욕구가 다시금 떠올랐다. 얼마 전 《존 치버의 일기》를 읽고서도 비슷한 추동을 느꼈다. 지금 적기를 시작하지 않으면 ‘미래의 자신’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움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조금씩 잃어버리기 전에, 그것이 설령 조금쯤 변형된 것이라고 하여도, 완전히 잃어버리기 전에 적고 볼 일인데...
폴 오스터 Paul Auster / 송은주 역 / 내면 보고서 (Report From The Interior) / 열린책들 / 366쪽 / 2016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