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을 감수하는 희생으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행복을 야기하는 자각과 발굴로
거기 당신들의 눈 안에 사랑이 있었다. 그 순간, 백화점 완구 코너의 여점원인 테레즈와 그곳을 방문한 상류층 여인 캐롤의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붙박이로 움직이지 않는 모형 건물들 사이를 돌고 또 돌던 모형 기차가 움직임을 멈추는 순간, 그 사이를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그렇게 얼핏 사라졌다가 다시 테레즈의 눈앞에 캐롤이 나타나는 순간, 두 사람은 두 사람의 그 다음을 짐작했을까. 캐롤이라면 짐작했을 수도 있다, 테레즈는 아마도 짐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어떤 끌림의 순간이 지나가고 그 자리에는 캐롤의 기다란 가죽 장갑이 남고, 이제 어떤 멜로드라마가 시작된다.
영화 <캐롤>의 도입부는 어쩌면 평이하지만, 때로는 이처럼 평이한 시작이야말로 특별한 시작이 되기도 한다. 영화가 소설의 원작에 기대는 경우 종종 그렇다. 영화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클레어 모건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자전적 소설 《소금의 값(The Price of Salt)》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본래 서스펜스 범죄 소설의 대가인데 (영화 <태양은 가득히>는 그의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씨》가 원작이다) 《소금의 값》은 작가의 유일한 로맨스(?) 소설이다.
영화는 (아마도 소설도 그렇겠지) 로맨스이지만 기본적으로 서스펜스이기도 하다. 1950년대라는 시대와 그 시대의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사실 자체가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상류층의 여인인 캐롤은 이미 결혼을 했고 하나뿐인 딸을 무척 사랑하지만 지금 이혼을 준비 중이다. 동성에게 이끌리는 자신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이혼의 이유는 아니다. 테레즈는 백화점 직원으로 있으며 자신에게 결혼을 종용하는 남자 친구가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어느 정도 이상으로 끌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는 사진을 찍는다. 계속해서 찍고 싶다.
짧았던 만남 이후 두 사람은 점차 서로에게 이끌린다. 캐롤에게는 자신의 성 정체성만큼이나 부르주아의 매너리즘으로 가득한 삶이 그녀를 힘들게 만든다.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삶에 진저리를 내고 있었을 것이고, 그녀는 그런 타입의 여성이 아니다. 테레즈는 아마도 그런 내면에 이끌렸을 것이다. 테레즈는 작은 것 하나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자신에게 진저리를 내고 있었고, 그런 테레즈가 캐롤이 내민 손을 잡지 않을 이유가 없다.
캐롤은 자신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고, 테레즈는 자신을 잘 알고 있지 못하다, 테레즈는 자신을 잘 모르고 있는 만큼 캐롤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캐롤은 자신과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테레즈를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사랑은 잘 알고 있는 쪽의 우월함에서 시작되는 것 같지만, 언제고 그것은 역전될 수 있다. 때때로 사랑은 잘 모르는 쪽의 우월함으로 자꾸 끌려가기도 한다.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물어도 될까요?” “제발 그래줘요.”
두 사람은 함께 여행을 떠나고, 그렇게 외딴 도시에서 새해를 맞이한다. 둘은 드디어 서로를 향한 이끌림을 육체적으로도 거부하기를 그만둔다. 하지만 그것이 두 사람 사이의 장애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캐롤은 테레즈에게 편지를 쓰고 떠나고, 테레즈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자신의 딸을 위하여 테레즈를 멀리 하고자 한다. 테레즈는 자신이 찍은 사진의 포트폴리오를 들고 잡지사에 들어가고 남자 친구와도 헤어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두 여인의 계급적 차이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존재 자체로 우아함을 뿜어내는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하는) 부르조아 여인 캐롤과 순진과 순수를 넘나들면서도 활력을 찾아가는 (루니 마라가 연기하는) 노동하는 여인 테레즈는 이외에도 많은 면에서 부조화스럽다. 계급의 차이뿐만 아니라 나이와 성격 심지어 키의 차이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은 꽤 다르다. 하지만 이런 차이는 애초부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감독에게는, 그래서 관객에게도.
두 사람은 결국 서로를 향한 이끌림을 거부하지 않기로 한다. 캐롤은 테레즈에게 카메라를 선물하였지만 테레즈는 어떤 시선을 (자신을 향하는 캐롤의 시선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까지) 선물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테레즈는 자신의 남자 친구의 계속되는 여행 종용에는 계속해서 답을 하지 못했지만 캐롤의 물음에는 언제나 분명히 그리고 곧바로 예스, 라고 답했다. 이러한 테레즈의 대답은 사랑한다는 캐롤의 마지막 물음에 대해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이어진다.
두 여인, 캐롤과 테레즈의 클로즈업된 표정을 향하여 몰입할 수 있어 좋았다. 화면을 가득 채우지 않고 자꾸 여백을 남기는 클로즈업이어서 더 그랬다. 곧바로 서로를 향하는 대신 습기 가득한 자동차 창유리를 통해 서로를 향하는 시선도 좋았다. 영화 내내 두 사람 사이에 이토록 불분명한 장막이 있었기에, 마지막 장면, 출입구에서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양복 입은 사내로 가득한 실내를 천천히 걸어 마주한 캐롤과 테레즈의 시선에 가슴 떨릴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구도 희생하지 않았기에 영화가 행복하였다. 노동 계급의 일터인 백화점에서의 첫 장면에 있던 캐롤과 테레즈가 이제 부르조아들의 일터에서의 마지막 장면에서의 테레즈와 캐롤로 바뀌었지만 두 사람은 더욱 행복해졌다. 두 사람은 두 사람의 주변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지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으며, 그렇게 더 이상 불행해지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사랑은 불행을 감수하는 희생이 아니라 어떤 자각 내지는 발굴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이토록 성공적이다.
캐롤 (Carol) / 토드 헤인즈 감독 / 케이트 블란쳇, 루니 마라 출연 / 118분 / 2016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