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에부는바람 Aug 21. 2024

빌 브라이슨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압도당할 수밖에 없는 크기의 위험천만하면서도 유쾌한...

  “... 그곳의 무언가가 내게 잘 맞았다.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과 영국을 묘하게 매력적으로 섞어놓은 곳이었다. 아마 이런 생각이 든 것은 내가 반평생은 미국에서 나머지 반평생은 영국에서 살았다는 사실이 일조했다고 본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영국적인 배경에 미국 분위기를 뚜렷이 느낄 수 있는 편안함과 활기가 있었다(제약이 없고 이방인을 편하게 여겼다).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낙천적이고 격식을 차리지 않았다. 미국 분위기가 풍기긴 했으나 왼쪽으로 주행하고, 차를 마시고, 크리켓을 하고, 빅토리아 여왕의 동상으로 공공장소를 장식하고, 영국 사람처럼 아이들에게 교복을 입혔다. 나는 이런 모습이 무척 편안했다.” (p.195)


  시드니에서의 체류기를 다룬 장석주와 박연준의 산문집을 읽고 오스트레일리아를 다룬 빌 브라이슨의 책을 집어 들었다. 시드니가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가 궁금해졌고, 여행기라면 역시 빌 브라이슨이 떠오른 것이다. 미국의 동부 14개 주에 걸쳐 있는 애팔래치아 산맥을 두 발로 여행하면서 쓴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이 꽤나 흥미진진했다. 책을 읽고 나면 허벅지가 뻐근해진다고나 할까... (그런가하면 빌 브라이슨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라는 과학 교양서를 쓰기도 하였다. 뭐든 쓰겠다 마음 먹으면 아주 재미있게 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작가이다.)


  “... 오스트레일리아의 공허함은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인구 밀도가 가장 낮은 나라다. 영국의 평균 인구 밀도는 평방마일당 672명이고 미국은 72명이다. 그리고 세계 평균은 117명이다 (재미삼아 설명하자면 마카오는 6만 9000명으로 인구 밀도가 가장 높고, 이와 대조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는 6명이다)...” (p.152)


  여하튼 작가의 손에서 펼쳐진 오스트레일리아는 생각하는 것보다 그 큰 규모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위의 문단만 해도 그렇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평방마일당 인구밀도는 1200명 정도이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인구는 우리의 절반이 안 된다. 이 넓은 땅덩어리를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 책에 하나 나온다. 기차를 탄 주인공이 다음 번 커브를 궁금해하자, 기관사는 360킬로미터가 지나야 나온다고 대답한다. 그러니까 대략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는 400킬로미터가 조금 넘는다)만큼을 직선으로 달려야 다음 커브가 나오는 나라, 그게 바라 오스트레일리아이다.


  “... 오스트레일리아는 경이로울 만큼 풍성한 나라다. 약 2만 5000종의 식물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비교하자면 영국에는 약 6000종이 있다) 그야말로 추정일 뿐이다. 야생 식물 가운데 적어도 3분의 1은 이름을 붙이거나 연구한 적조차 전혀 없다...” (p.372)


  땅은 넓고 사람은 적은데, 그 적은 사람들도 오스트레일리아 동부에 밀집되어 살고 있다. 그러니까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땅도 그리고 그러한 땅 위의 동식물도 무궁무진하다. 다른 대륙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캥거루와 코알라 뿐만 아니라) 많은 동식물이 있고, 그것들 중에서는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도 많은가보다. 그리고 작가는 극도로 위험한 동식물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를 조금은 경이롭게 생각하며, 그것이 종종 위트 가득한 문장으로 나타난다.


  “... 오스트레일리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경험이 무척 많을 것이다(퀸즐랜드엣 악어를 만난 일, 독뱀을 밟을 뻔했던 일, 잠에서 깨자마자 얼굴을 향해 줄을 타고 내려오는 붉은등거미를 발견한 일).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이 분야에 관한 한 상당히 불공평한 듯싶다. 그들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절반은 자기 나라의 위험이 크게 과장되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주장하면서 나머지 절반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이를테면 6개월 전 밥 아저씨가 머지로 자동차를 몰고 가는데, 타이거스네이크 한 마리가 대시보드 아래에서 미끄러져 나오더니 사타구니를 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명 유지 장치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괜찮아졌고 눈을 깜박거려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식의 이야기다.” (p.202~203)


  오스트레일리아라고 하면 영국 죄수들의 귀향지로 시작된 역사 그리고 백인 이외의 인종들에게 폐쇄적이었던 백호주의를 떠올리게 된다. 이것들을 뺀다면 몇몇 희귀한 동물들 정도와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가 오스트레일리아에 대해 갖는 정보의 전부가 아닐까. 그래서 작가 또한 하나의 대륙이기도 한 이 거대한 나라에 대해 (특히 정치 분야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적다는 사실에 오히려 놀라워한다.


  “1950년대는 오스트레일리아에 흥미로운 시대였다. 당시 수백만의 외국인이 오스트레일리아 국민이 되었고, 이상한 일이지만 오스트레일리아 사람 역시 오스트레일리아 국민이 되었다. 나는 불과 얼마 전에야 비로소 1949년까지 오스트레일리아 시민권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태어난 사람은 원칙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가 아니라 영국 국민이었다...” (P.211)


  이렇다보니 우리가 북아메리카나 남아메리카의 원주민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비교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인 애버리저니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는 것도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이제 문명에 접근을 허락한 이후의 애버리저니는 큰 도시에 흘러 들어 낙오자가 되거나 이러한 도시들로부터 분리되어 자신들의 거주지에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서는 다른 대륙의 원주민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은 자연의 모든 반전, 즉 극악한 가뭄과 무차별적인 홍수, 목마름의 공포와 피할 수 없는 굶주림을 견뎌낼 수 있다. 그러나 문명을 견디지 못한다.” (p.361, 데이지 베이츠의 《애버리저니의 소멸》 중 재인용)


  하나의 대륙이 하나의 나라가 되어 있으니 그 크기를 짐작할 수도 있으련만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것을 실감하기 어려웠다. 이제야 도시와 도시가 보통 몇 백 킬로미터쯤 떨어져 있고 몇 백 킬로미터의 도로를 달리는 동안 똑같은 풍광 말고는 다른 차를 발견하기 힘들 수도 있는 나라를 겨우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빌 브라이슨은 역시 재미있었고, 그가 여행한 오스트레일리아는 역시 흥미롭다.



빌 브라이슨 Bill Bryson / 이미숙 역 /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In A Sunburned Country) / 알에이치코리아 / 405쪽 / 2012 (200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