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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댓글부대》

민주주의의 훼손 세력과 합리적이지 못한 온라인 대중을 양손에 쥐고...

by 우주에부는바람

*2015년 12월 21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작가의 첫 번째 소설 《표백》을 읽고 뜨악 놀랐던 기억이 있다. 기자였던 작가는 이후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고, 이후 장편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을,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했다. (박민규가 연상된다) 이와는 별도로 장편소설 《호모도미난스》와 《한국이 싫어서》와 연작소설집 《뤼미에르 피플》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 소설 《댓글부대》는 제주4·3문학상 수상작이다.


《표백》을 읽었을 때는 작품 자체도 꽤 놀라왔지만 그가 현직 동아일보 기자라는 사실에 더 놀랐다. 요즘도 그의 페이스북을 가끔 들여다보곤 하는데 사실 그는 보수주의자에 가깝다. 그리고 그는 진보 진영의 (이런 말 쓰고 싶지 않지만) 문학상이라고 할 수 있는 한겨레문학상과 제주4·3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어쩌면 여전히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 있는 88학번인 나에게는 여전히 이러한 사실에 흔쾌히 납득하지 못하는 신세이다.)


“그게 팀장님 회사의 문제점입니다. 너무 투박해요. 사실은 성의가 없는 거죠. 젊은이들이 뭘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볼 생각을 안 한단 말입니다. 인터넷 심리전이 중요하다, 온라인 홍보를 강화해라, 그러면 고작 한다는 게 야당 후보는 좌빨이네, 면상이 비호감이네, 그런 댓글이나 달고 있어요. 그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그 일에 대해서 고민이 없었는지가 그냥 다 보입니다... 회장님께서는 처음에는 드디어 그 회사가 인터넷의 중요성을 알아차렸구나, 하고 반색하셨다가 나중에 신문으로 심리전단이 단 댓글들을 보시고는 역정을 내셨습니다. 그따위로 일을 하려면 아예 하지 말라고, 당신께서 회사에 계실 때에는 그런 식으로 하지 않았다고요. 그걸 또 들켜서는 청문회까지 받게 된 과정이나, 다른 걸로 덮어보겠다고 검찰총장 스캔들 터뜨린 거나, 희망이 안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p.22)


얼마 전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던 중 나는 장강명이 혹시 대한민국의 발자크가 되는 거 아니냐고 농담을 던졌다. 그는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생각을 숨기지 않은 채 집념 속에서 정말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보수주의자의 눈으로 이 사회를 들여다보다가 결국 그 보수적인 지도층 내부의 모순을 폭로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물론 이 또한 진영 논리의 함정일 수 있다. 보수는 보수를 혹은 그 보수화된 사회의 보스를 욕하지 않을 것이라는 어떤 논리적인 함정...)


“한때는 인터넷이 영원히 익명의 공간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 헛소문이나 추측, 잘못된 정보가 많이 나온다는 건 그때도 알았어. 그래도 좋은 정보가 많이 나오면 사람들이 그걸 보고 자기 생각들을 고칠 줄 알았어. 자정작용이 일어날 줄 알았던 거지. 하지만 이제는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알아. 인터넷에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자정작용이 일어날 수가 없어. 오히려 그 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나지. 끼리끼리 뭉치는 거 말이야... 사람들은 절대로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고치려고 들지 않아.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뭔가를 배우려 드는 대신, 애착이 가는 커뮤니티를 두세 개 정해놓고 거기 새로운 글 올라오는 거 없나 수시로 확인하지... 그런데 그 커뮤니티들은 대개 어떤 식으로든 크게 편향돼 있어. 취향과 성향 중심으로 모인 공간이다보니 학교나 직장처럼 다양한 인간이 모이는 오프라인 공간보다 편향된 정도가 훨씬 더 심한 게 당연해... 그렇게 인터넷을 오래할수록 점점 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돼. 확증 편향이라는 거야. TV보다 훨씬 나쁘지. TV는 적어도 기계적인 균형이라도 갖추려 하지. 시청자도 보고 싶은 뉴스만 골라 볼 순 없고. 하지만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달라. 사람들은 이 새로운 매체에, 어떤 신문이나 방송보다도 더 깊이 빠지게 돼. 그런데 이 미디어는 어떤 신문 방송보다 더 왜곡된 세상을 보여주면서 아무런 심의를 받지도 않고 소송을 당하지도 않아. 커뮤니티 사이트들은 최악의 신문이나 방송보다 더 민주주의를 해치지.” (pp.56~57)


그래서 나는 소설 속의 누군가가 위와 같이 말을 할 때, 그 안에 작가 장강명의 가치관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의심한다. 보다 커다란 틀에서 민주주의를 심하게 훼손시키는 이들과, 이들 보다 작은 틀에서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이들을 양손에 쥐고 양비론을 펴고 있지는 않은지 눈여겨본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는 상황을 다루면서 오히려 합리적이지 못하고 논리적이지 못한 집단으로서의 대중을 은연 중에 평가절하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보탠다.


“... 논리 싸움은 두 사람이 아주 좁은 화제를 가지고 붙을 때, 그것도 그 두 사람이 좀 양식 있는 사람일 때나 가능한 거예요. 인터넷 싸움은 정력과 멘탈로 하는 겁니다. 그런데 저희는 정력 많아요. 그게 직업이니까. 그리고 멘탈도 정말 강해요. 왜냐하면 멘탈이 없거든요. 저희랑 댓글로 논쟁을 벌이는 건 쇳덩이로 된 로봇이랑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쪽이 진 쪽 따귀를 때래는 게임을 하는 거나 비슷한 겁니다. 가위바위보는 질 수 있지만, 큰 틀에서 저희는 절대 지지 않아요.” (p.82)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장강명에게서 발자크를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철수와 회장, 그 아래 팀장과 본부장, 또 그 아래 팀-알렙의 팀원인 찻탓캇, 삼궁, 01査10으로 이어지는, 이 사회를 민주주의로부터 자꾸 멀어지도록 만드는 어떤 연결 고리를 이 작가가 더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건 그렇고 배명훈의 신작 《첫숨》이 나왔던데 얼른 읽어야겠다. 장강명이 빠르고 보다 직관적으로 써내는 것들을 배명훈은 조금 느리지만 은유적으로 써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장강명 / 댓글부대 / 은행나무 / 247쪽 / 201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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