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좋은 봄, 서울 공원 길가 궁궐의 나무를 바라보는 상상을 하며...
“... 가을이 지상과 이별할 무렵, 담쟁이도 잎몸을 떨구기 시작한다. 대개의 나뭇잎이 잎사귀째 지는 것과 달리 담쟁이 이파리는 잎몸 먼저, 잎자루가 그 다음에 진다...” (p.87)
오롯이 도시내기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시골 생활을 풍부하게 하지도 못하였다. 내가 살았던 지역 중 가장 시골인 곳은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송우리였다. 학교 뒷산에서 뱀을 잡기도 하였고, 교실 창문을 깨고 들어온 올빼미에게 주기 위하여 학교 앞 논에서 송사리를 잡아올 수 있는 정도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살았던 곳은 읍내였으므로 완전히 시골스러운 풍경을 제공해주지는 않았다.
“... 개화 시기의 기준이 되는 개나리는 어디 사는 개니라일까. 바로 서울기상관측소 앞마당 개나리다. 제 이름보다 곱절은 긴 ‘계절 관측 표준목’이라는 명찰을 목에 건 개나리가 꽃 피운 날이 곧 서울의 개나리 개화 시기다... 개화 시기는 계절 관측 표준목에 꽃이 세 송이 이상 활짝 피었을 때를 기준으로 한다. 활짝 핀 꽃을 세는 일, 참 셈 없이 즐거우리라.” (p.113)
방학만 되면 찾아가던 할머니댁은 물론 더 시골이었다. 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는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올렸으며, 짚과 나무로 불을 떼야만 했다. 그곳에 살던 사촌 형과 그 친구들은 겨울이면 화살을 만들어 산으로 꿩 사냥을 다녔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곳에 들렀는데, 그 동네에 친구도 생겨 여름 새벽이면 서리를 함께 가기도 했다. 그들은 서리를 하기 위해 커다란 포대와 칼을 준비했고, 수박에 구멍을 내서 먹어본 다음 잘 익은 것으로 따서 포대에 담았다.
“담쟁이는 나무다. 덩굴식물이라 곧추설 힘이 없는 줄기는 담이 나오면 담에, 벽이 있으면 벽을 타고 오른다. 담만큼 벽만큼, 담과 함께 벽과 함께 살아간다. 그러려면 담과 담쟁이 줄기를 잇는 것이 필요한데 흡착근이 그 역할을 한다. 잎과 마주나는 흡착근은 개구리 앞발처럼 생겼다. 가늘게 갈라진 줄기 끝에 동글납작한 작은 흡반이 달려 있다...” (pp.82~83)
시골 생활에 대한 추억이 그래도 있는 편이었지만 나무며 꽃이며 풀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것이 못내 아쉽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꽃이며 나무를 좋아하는 어머니와 함께 다닐라치면 꽃 이름이며 나무 이름이며 말하여 주시고는 하였는데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제 칠십을 넘긴 어머니는 함께 다녀도 이 도시에 있는 꽃이며 나무에 대해 애써 설명하지 않으신다. 아무도 설명을 해주지 않으니 더더욱 나무며 꽃이며 풀에 대해 모른 채로 살아가고 있다.
“... 혼인목은 연리목이 갖춰야 할 조건 두 가지 중 하나는 같고 하나는 반대여야 합니다. 혼인목 역시 인접한 나무에서 일어나지만, 두 나무는 하나가 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종種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혼인목은 가까이 자란 나무이되, 종이 다른 나무 사이에서만 가능합니다. 둘은 절대 한 그루의 나무가 될 수 없지만, 멀리서 보면 마치 한 그루의 나무처럼 보입니다... 혼인목은 연리목과 달리 줄기가 가까이 있더라도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대신 서로에게 길을 양보합니다. 만약 서로의 가지가 부딪히면 제 가지를 먼저 꺾는다고 하더군요. 이어지지 못할 것을 알기에 한 수 접어주는 것일 겝니다. 그것이 공생의 도라는 것을 나무는 진즉 깨달았나 봅니다. 그렇게 혼인목은 하나인 듯 하나 아닌 하나 같은 나무로 살아갑니다.” (pp.327~329)
학창 시절 글을 쓰겠다 마음을 먹으면서 나무와 꽃과 풀에 대해 알고자 하였다. 무얼 알고 싶으면 버릇처럼 먼저 책을 사는데 그래서 산 책들은 다음과 같다. 현암사에서 나온 이유미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나무 백 가지》와 김태정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꽃 백 가지》, 문예산책에서 나온 송홍선의 《한국의 나무문화》, 《한국의 꽃문화》, 《한국의 풀문화》 시리즈... 이외에도 포켓판 책들을 서너 권 더 샀던 것 같다. 물론 나무며 꽃이며 풀은 그렇게 해서 알 수 있는 것들은 아니었다.
“갈등은 대체로 피하고자 하지만, 대체로 피할 수 없다, 누구나 갈등을 겪는다. 하나 또 갈등은 당장 겪기에는 고통스럽지만, 잘만 이겨내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갈등을 겪던 상대와 단단한 유대가 생길 때면 갈등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 또한 단단해진다. 그러고 보면 왼쪽으로 감는 칡과 오른쪽으로 감는 등나무 줄기를 엮으면 그보다 단단한 덩굴이 없지 않을까 싶다. 억지로 풀기보다 얽히면서 생겨난 새 힘을 이용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p.353)
저자는 부산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잡지사 기자 생활을 하다 숲 해설가 공부를 하고 지금은 생태창작자업실을 열고 생태이야기꾼이 되었다. 내가 가지 못하였지만 갔어도 좋아 했을 법한 길이다. 그런 저자가 쓴 서울에 사는 나무들에 대한 글이라 글들이 선뜻 눈이 갔고, 읽는 내내 좋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길가나 공원이나 궁궐이나 대부분이 서울의 북쪽 편에 있는데, 얼마 전 서울의 북쪽으로 거처를 옮긴 다음이라 더 그렇다.
“... 헌재를 대표하는 두 나무는 헌재가 하는 일처럼 색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헌재는 법의 생명을 판결한다. 흑백은 ‘옳고 그름’을 상징한다. 하나 언제나 흑이 불의고 백이 정의는 아니다. 잿빛 세상에서는 정의와 불의의 경계도 흐려진다. 정의가 달라지는데 법이 어찌 절대적일까. 2013년, 1인 시위자를 위한 이동식 햇빛 가리개를 설치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국민의 인권을 존중했다며 미담을 전파한 헌재가 같은 해 청사 건물의 청소용역 도급계약을 체결하면서 헌법에 보장된 최저임금법을 위반해 파문을 일으켰다. 심판자조차 합치와 위배를 오가는 것, 그것이 법이다.” (p.76)
재동 북촌로에 위치한 헌법재판소에 있는 백송과 독일가문비나무를 다루면서 쓴 위의 글처럼 저자는 도감에서 그 대상을 다루는 것과는 달리 글을 쓰고 있다. 나무가 아니라 그 나무가 위치한 공간까지 공들여 바라보고, 나무와 공간을 향한 자신의 사색을 곱게 덧입힌다. 책은 길가 사는 나무, 공원 사는 나무, 궁궐 사는 나무라는 세 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각의 챕터에서 다루고 있는 나무들은 아래와 같다. 이와 함께 책에는 삼청공원에 있는 나무들을 하나하나 표시한 지도가 한 장 들어 있다. 2016년 날 좋은 봄, 그 지도를 들고 삼청공원에 가는 나를 상상해보니 이 겨울나기가 한결 수월해진 듯도 하다.
길가 사는 나무 - 화동 북촌로의 벚나무, 삼첨동 북촌로의 칡나무와 오동나무, 소격동 삼청로의 비술나무, 재동 북촌로의 백송과 독일가문비나무, 원서동 율곡로의 담쟁이, 신문로2가 새문안로의 느티나무, 송월동 송월로의 개나리, 용산동 이태원로의 양버즘나무, 동숭동 동숭길의 벽오동
공원 사는 나무 - 낙산공원의 가죽나무, 삼청공원의 때죽나무, 선유도공원과 서대문독립공원의 양버들, 안산공원의 아까시나무, 여의도공원의 피나무, 마로니에 공원의 가시칠엽수, 삼청공원의 귀룽나무, 호수공원의 구상나무, 남산공원의 소나무
공궐 사는 나무 - 경복궁의 꽃개오동과 화살나무와 말채나무, 창덕궁의 회화나무와 감나무, 창경궁의 느릅나무와 혼인목, 덕수궁의 주엽나무와 등나무, 동묘의 배롱나무와 물박달나무
장세이 / 서울 사는 나무 / 목수책방 / 375쪽 / 2015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