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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0. 2024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이제 사라져가는 인간의 어떤 선량한 부분을 발굴...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며칠 동안, 펄롱이라는 인물의 심정을 따라가며 전개된다. 아내 아일린과 다섯 명의 딸을 두고 있는 펄롱은 석탄과 장작, 조개탄을 비롯한 불쏘시개 류를 파는 업자이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식구들을 먹이고 가르치는 정도는 가능하다.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물건을 제공받는 곳에서 수금만 잘 된다면 따듯한 크리스마스를 지낼 수도 있을 것이다.


  “뜬금없이, 기술학교에서 나와 여름에 벗서 공장에서 일하던 때가 떠올랐다. 출근 첫날,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버섯을 땄음에도 손이 더뎌 다른 사람들 작업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마침내 라인 끝에 다다랐을 때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잠시 멈춰 작업을 시작한 지점을 돌아보았는데, 거기에서 벌써 새끼버섯이 배양토를 뚫고 올라오는 걸 보고 똑같은 일이 날이면 날마다 여름 내내 반복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p.44)


  펄롱의 사실 ‘빈주먹’으로 태어난 것과 다름 없었다. 펄롱의 엄마는 남편을 떠나 보낸 후 혼자 살고 있는 미시즈 윌슨의 집에서 일꾼으로 일할 때 펄롱을 임신하였다. 미시즈 윌슨은 펄롱의 엄마를 내치지 않았고 가족들도 외면한 그녀를 돌봐주었다. 펄롱의 출산과 출산 이후까지 미시즈 윌슨을 그들 모자를 곁에 두었고, 펄롱이 열두 살 때 엄마가 죽고 난 다음에는 펄롱을 돌봐주었다.


  “펄롱은 뒤쪽 화장실로 가서 비누를 꺼내 세면대 앞에서 천천히 손으로 거품을 내 얼굴을 닦고 면도를 하기 시작했다. 칼날을 바싹 갖다 대어 목에 상처가 났다. 거울로 눈, 가르마, 눈썹을 찬찬히 봤다. 지난번에 거울을 보았을 때보다 눈썹 사이가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손톱 아래 검댕을 빼내려고 최대한 박박 문질러 닦았다. 가장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아일린과 딸들과 함께 예배당으로 걸어가는데 어쩐지 거부감이 들었다. 길이 가파르게 느껴지고 군데군데 미끄러운 데가 있었다.” (p.86)


  소설은 이제는 서서히 사라져가는 (어쩌면 거의 사라진) 인간의 어떤 선량한 부분을 다루고 있다. 읽으면서 찰스 디킨슨의 《크리스마스 캐롤》 같은 소설이 떠오르기도 하였고, 톨스토이의 중단편들에서 찾아 볼 수 있던 허름한 삶 속에서도 번뜩이던 인간 본연의 선량함 같은 것도 떠올릴 수 있었다. 작가가 구사하는 문장들 또한 지나친 형용 대신 조심스러운 암시를 구사하고 있어 그랬는지 모른다. 하지만 소설은 2021년에 발표된 것이다. 


  “좋은 사람들이 있지, 펄롱은 차를 몰고 시내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주고받는 것을 적절하게 맞추어 균형 잡을 줄 알아야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사람들하고 잘 지낼 수 있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특권임을 알았고 왜 어떤 집에서 받은 사탕 따위 선물을 다른 더 가난한 집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러듯 크리스마스는 사람들한테서 가장 좋은 면과 가장 나쁜 면 둘 다를 끌어냈다.” (p.103)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수녀원에 납품을 하러 들렀던 펄롱은 그만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되고, 소설은 그 이후 펄롱이 겪는 고뇌의 순간들을 그린다. 펄롱에게는 좋은 거래처인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눈감는다면 식구들은 앞으로도 계속 따듯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펄롱은 자신들을 거두었던 미시즈 윌슨을 떠올리며 수녀원을 탈출하고자 하는 어린 여성을 외면하지 못한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p.120)


  소설은 아일랜드에서 실제로 있었던 막달레나 세탁소라고 불리운 수녀회의 만행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짐자건대 미혼모 보호 시설로 짐작되는 그곳에서 만 명과 3만 명 사이의 여성과 아이가 은페, 감금, 강제 노역으로 죽었다. 1920년대에 시작된 막달레나 세탁소는 1996년까지도 유지되었고, 가톨릭 교회와 아일랜드가 함께 운영하였던 이 수녀회의 만행에 대해서는 2013년에야 총리가 사과하였다.



클레어 키건 Claire Keegan / 홍한별 역 / 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 / 다산책방 / 131쪽 / 20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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