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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뉘엘 카레르 《리모노프》

문제적 인류에게도 드물게 나타날 것 같은, 이 문제적 인간...

by 우주에부는바람

《리모노프》 속의 리모노프, 참 난감하다. 이런 인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의심스러워 아카이브에서 함께 일하는 스태프인 러시아 출신의 제냐에게 리모노프, 라는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다. 내 발음을 못 알아들은 것인지 책을 가져다가 유심히 들여다본다. 아 리모노프? 누군지 안다는 제스처다, 그러더니 곧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프랑스 작가 엠마뉘엘 카레르가 러시아의 실존인물 에두아르드 리모노프에 대해 쓴 일종의 팩션 소설을 한국인인 내가 읽고 있다는 사실에 의아해한다.


“리모노프는 어떤가. 우크라이나 출신의 깡패로 출발해 소비에트 언더그라운드의 아이돌, 맨해튼의 거지, 억만장자의 집사를 거쳐 파리의 인기 작가로, 발칸 반도를 헤매던 사병으로, 그리고 이제는, 공산주의 붕괴 이후 혼란기에 청년 무법자들의 당을 이끄는 카리스마 넘치는 늙은 보스로 변신해 있다. 스스로는 영웅이라고 자부하지만, 남들 눈에는 인종지말로 비칠 수도 있다. 이 점에 대해 나는 판단을 유보하고 싶다... 그의 파란만장하고 위험천만한 인생이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모노프, 그 자신과 러시아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우리 모두의 역사에 대해서 말이다.” (p.38)


재차 그래서 리모노프를 러시아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데? 라고 묻자, 이번에는 손가락을 가져다가 머리에 가져다대고 빙글빙글 돌린다. 그러니까, 음, 똘아이라는 거다... (정확하게 겹치는 것은 아니지만 제냐의 반응은 우리가 허경영을 향해 보이는 반응과 비슷한 것도 같다.) 러시아인인 제냐의 반응이 그러하니, 작가 또한 이 인물을 글로 옮겨 적는 것에 적이 고민스러웠던 것 같다. 작가는 그래서 되도록 그에 대한 평가를 자제하려고 하는 편이다.


“이렇게 질투심이 강하고 안하무인인 주인공이 독자들 눈에 곱게 비칠 리 없다는 것을 나도 안다... 거만하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사람. 관대하지 않아도 사려 깊고, 호기심 많고, 남을 기꺼이 돕기도 하는 사람... 인류의 친구를 자처하면서 입으로는 선의와 연민을 부르짖는 다수의 사람들이 실제로는 평생 악인의 이미지를 만들며 살아온 리모노프보다 더 이기적이고 무심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pp.128~129)


하지만 리모노프라는 실존 인물을 다루는 소설임에도, 작가가 일인칭으로 직접 개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보니 인물평이 종종 등장하고는 한다. 그리고 이 기괴한 인물을 향한 작가의 감정은 언제나 양가적이다. 미워할만한 구석으로 충만한 그이지만 좋아할만한 구석이 없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게 좋아해볼까 할라치면 또 말도 안 되는 행태로 그런 마음을 저 멀리 발길질 해버리는 것이 바로 리모노프이다.


“... 에두아르드라는 파시스트한테 한 가지는 인정해 줘야 한다. 그는 과거나 지금이나 항상 소수의 편에 서 있다. 뚱뚱한 사람들보다는 마른 사람들, 부자들보다는 가난한 사람들, 수두룩하게 있는 착한 사람들보다는 당당한 개차반들의 편이다. 갈팡질팡하는 듯 보이는 인생 역정이지만 그는 언제나, 정말로 언제나, 그들의 편에 서는 일관성을 보여 주었다.” (p.436)


리모노프는 1943년 2월 우크라이나의 NKVD 하급장교의 아들로 태어나 청소년기까지는 건달로 지냈다. 그러다 모스크바로 움직여 브레지네프 치하에서 언더그라운드 시인으로 살았고, 1974년에 미국으로 이민하였다. 그곳에서는 하층민의 삶을 살면서 계속 글을 썼고, 그러다 우연히 프랑스 출판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1980년 첫 번째 책 《러시아 시인은 덩치 큰 깜둥이를 좋아해》를 출간하게 된다. 그 후 파리에서 활동하다 보스니아 내전 때는 세르비아군에 자진 입대하여 인종청소의 주범 아래에서 총을 들었다. 그후 러시아로 귀국하여 민족봀케비키당이라는 극우 민족주의 정당을 창당, 푸틴이 집권한 후에는 테러리즘 및 카자흐스탄 내 쿠데타 기도 혐의로 2년간 복역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금도 민족 볼세비키당을 이어받은 ‘다른 러시아당’을 이끌며 비밀리에 야당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푸틴은 세간에 요령부득한 장광설을 구사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는 말한 대로 하고, 한 대로 말하는 사람이며, 거짓말을 할 때도 누구나 뻔히 거짓말이라고 알 만큼 노골적으로 한다. 그의 인생 이력을 살펴보면 에두아르드의 분신을 보는 것 같아 정신이 아찔할 정도다...” (p.507)


그리고 소설은 리모노프라는 인물에 대한 소설이자 동시에 스탈린 치하의 공산주의 시절에 태어나 브레즈네프 등과 고르바초프, 옐친을 거쳐 지금의 푸틴에 이르는, 한때 사회주의 종주국으로 불렸던 소비에트 연합의 혼란스러운 역사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인물을 살펴봄으로써 우리 모두의 역사를 향하여 던져지는 메시지를 이야기하려 한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하였다.)


“... 에두아르드는, 나는 반체제주의자였던 적이 없다. 그저 문제아였을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p.293)


세계대전 이후에도 여전히 현대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까지 포함된) 두 체제 , 리모노프는 이 두 체제를 생동감 있게 휘젓고 돌아다닌 인물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이 활갯짓 탓에 (그리고 그것을 절묘하게 써내려간 작가 덕분에) 우리가 이 혼돈의 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문학적 소스가 생겼다고 해야 할까. 에두아르드 리모노프, 본인의 말마따나 그는 참으로 문제적 인간이었다, 이 문제적 인류에게도 드물게 나타나는...



엠마뉘엘 카레르 Emmanuel Carrère / 전미연 역 / 리모노프 (Limonov) / 열린책들 / 526쪽 / 201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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