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소설 특유의 사소하고 유니크한 소품들로 채워진...
세상에서 제일 작은 아케이드, 아케이드라고 해도 되나 망설여질 정도의 아케이드의 주인 처녀이자 배달원 그리고 처녀의 강아지 페페, 그리고 그 아케이드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이런 물건도 파는 데가 있네 싶은 상점들 - 레이스 상점, 의안 상점, 한 종류의 도넛만 파는 가게, 종이 상점, 문손잡이 전문점, 훈장 상점, 연고 상점 - 의 주인과 얼마 되지 않는 손님들을 등장시키면서 아기자기하게 꾸리는 연작 소설집이다.
「의상 담당」
“어떤 연극이든 등장인물들은 다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에요. 관객과 다른 시간 속에 있죠. 오로지 무대 위에서만 배우의 몸을 빌려 모습을 드러내고, 막이 내리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요. 그런 인물들이 입는 옷인 거예요. 내가 만들어야 하는 건.” (p.22) 연극 무대 의상을 만드는 일을 하는 손님과 그 손님에게 오래된 레이스를 파는 레이스 상점...
「백과사전 소녀」
“... 그 일을 한없이 반복한다. 과거에 딸이 탐색했던 길을 따라가며 희미한 자취라도 남아 있지 않은지 자세히 살펴보고, 그 애가 그렇게 바랐어도 도달하지 못했던 길을 다시 밟는다.” (p.53) 아케이드의 안마당 서쪽 모퉁이에 있는 독서 휴게실에 매일 들르는 신사 아저씨는 바로 그곳에서 자신의 딸이 매일 들여다보았던 백과사전을 필사한다. 1권의 첫 페이지에서 10권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토끼 부인」
“부인은 무릎 위의 공백을 두 손으로 쓰다듬었다. 손가락이 털 사이로 파고들고, 손바닥은 등에서 옆구리까지를 느슨하게 감쌌다. 보석이 닿지 않도록, 손톱이 찌르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매니큐어는 반 이상 벗겨져 있었다.” (p.73) 의안을 파는 상점에 들러 토끼의 눈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인... 그러나 부인은 토끼의 실체를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
「고리 집」
“... 온몸 어디에도 위태로워 보이는 느낌이 없었다. 손끝에서 발끝까지가 하나로 이어져 흔들림 없는 형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녀의 몸은 완벽한 고리를 그리고 있었다.” (p.103) 한 종류의 도넛만을 파는 가게의 주인은 아직 총각이다. 그는 한 번 결혼을 할 뻔 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혼사기로 잡혀 들어갔다. 하지만 나중에 나는 그녀의 진실, 체조 선수였다는 그녀의 이력에 대한 진실을 딱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종이 상점 시스터」
“어머니의 죽음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꽤 많이 걸렸다. 슬퍼하기 위해 필요한 말을 배워 그것이 가슴속에서 흘러넘친 순간, 나는 후회에 사로잡혔다...” (p.126) 종이 상점에는 오래된 그림 엽서들, 이미 사용한 흔적이 있는 그림 엽서들을 판다. 그리고 나는 그 그림 엽서들을 보면서 오래전 요양 병원에서 만났던 관리인 아저씨, 그가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그림 엽서들을 떠올린다. 그 요양 병원에서 요양을 하였던 어머니와 함께...
「손잡이 씨」
“자, 여기 있는 손잡이들, 뭐든 다 돌려봐도 돼.” (p.147) 여러 종류의 손잡이만을 파는 상점에는 여러 종류의 손잡이들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그 중 한 손잡이 뒤편으로는 아주 좁은 공간이 있어, 어린 시절의 나는 그곳으로 숨어든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 길을 잃은 한 소녀가 그곳으로 찾아든다.
「훈장 상점 미망인」
“미망인은 테이블 한가운데에 라디오를 놓고 스위치를 켠 다음 남편과 비슷한 손놀림으로 안테나를 조절했다. 남편이 세상을 뜬 뒤 처음 찾아오는 올림픽의 계절이었다.” (p.168) 훈장을 사고파는 상점을 운영하던 남편은 경기보다 메달을 수여하는 시상식을 더욱 즐기는 사람이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지금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이 상점은 온전히 아내의 몫이 되었다. 아내는 이제 남편을 대신하여 올림픽 시상식을 들을 준비를 한다.
「유발 레이스」
“살아 있는 사람이랑 그렇지 않은 사람의 머리는 전혀 달라요. 유발이 훨씬 참을성이 있죠. 살아 있는 사람 머리는 의외로 오래 못 가서 한 올이라도 섞이면 레이스를 망쳐요.” (p.182)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으로 만드는 레이스라는 것이 있다. 그것을 유발 레이스라고 부르고, 그녀는 이 유발 레이스의 전문가이다. 나는 이 유발 레이스 전문가에게 나의 어린 시절 머리카락을 맡겨 레이스를 주문한다.
「유괴범의 시계」
“어쩌면 아버지가 살았을 수도 있는 인생은 이렇게나 매력적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아버지의 불운을 이렇게 누가 보충해준다. 아케이드 관리인으로서의 인생이 얼마나 근사한 것이었는지를 이런 식으로 내게 보여준다.” (p.209)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나는 지금의 아케이드를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불현 듯 나는 아버지라도 되는 양 누군가의 뒤를 밟는다. 그리고 그 사람의 삶을 살짝 들여다본다.
「포크댄스 발표회」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포크댄스 발표회에 메달을 배달하러 갔던 나, 그곳에서 메달의 개수가 모자라 배달원으로서의 직분을 다하고자 다시 아케이드로 돌아왔던 나, 그리고 영화관에서 나를 기다리던 아버지와 화재...
오가와 요코 / 권영주 역 / 세상 끝 아케이드 / 현대문학 / 239쪽 / 2015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