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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23. 2024

윌 곰퍼츠 《발칙한 현대미술사》

150년 동안의 Modern Art 의 아주 간략한 이해...

  별 생각 없이 집어든 책인데 무척 재미있다. 1870년경부터 지금까지의 현대 미술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책을 통하여 미술과 관련한 용어들에 대하여 간략한 정리가 가능할 수 있다. 우리의 경우 인상주의 이후의 미술을 통틀어 현대 미술 Modern Art 라고 부르지만 외국의 경우, 인상주의 이후부터 세계대전이 종료된 1945년 이전까지의 미술은 Modern Art 라고 부르지만, 그 이후의 미술은 Contemporary Art 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리고 번역가는 이 책에서 Contemporary Art 를 동시대 미술로 번역하고 있다.)


  오래 전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영화가 궁금하여 루이스 자네티의 《영화의 이해》 와 데이비드 보드웰의 《필름 아트》를 읽는다거나, 철학에 대한 입문을 위하여 윌 듀란트의 《철학이야기》를 읽는 것 혹은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하여 역사에 대한 접근법을 익히고자 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로) 오래전 읽은 적이 있지만 미술에 대한 이해는 언제나 어렵게만 느껴진다.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을 염두에 두는 편이지만 실제로 그런 지는 아직도 섣부르게 확언할 수 없기도 하다. 아는 만큼, 이 아니라 얼마나 아느냐가 더 중요해 보이기도 하다.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정확하게 아느냐가 중요할 수도 있다. 어설프게 알고 있으면 잘못 보게 되기 십상이고, 잘못 알고 있으면 모르고 있느니보다 못한 경우도 허다한 것 또한 사실이다. 별 수 없이 이것저것 자꾸 들춰보고 그 안에서 스스로 길을 찾는 수밖에는 없다, 라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다.


  저자인 작가는 미술 그 중에서도 현대 미술과 동시대 미술을 대상으로 하여 글을 쓰고 있다. 어쩌면 현대 미술은, 미술이 일반 대중과 분리되어 있던 그리고 미술가들이 후원을 받아 기득권층의 요구에 따라 작업을 하던 시절로부터 벗어나면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처럼 예술가들에게 주도권이 넘어선 이후 미술에 대한 이후는 좀더 어려워지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어려움을 갖게 된 이후의 미술을 작가는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 애쓰고 있다. 작가는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혹은 잘 모르는 아티스트들에 대한 표피적인 설명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이 활동하던 시기로 돌아간 듯 근접에서 바라보고 이를 설명하기 보다는 묘사하려고 애쓴다. 이들이 몸담고 있던 그룹 혹은 그들을 묶고 있는 사조의 탄생과 그 시대적 배경까지를 두루 살피고 있다.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원시주의, 점묘주의, 야수파, 청기사파, 표현주의 다리파, 입체주의, 구조주의, 미래주의, 소용돌이파, 오르피즘, 저대주의, 신조형주의, 데스테일, 바우하우스, 모더니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레디메이드,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개념주의, 행위예술, 플럭서스, 신사실주의, 아르테 포베라, 미니멀리즘,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예술까지... 가볍게 읽고 살펴볼 수 있다.


  “뒤샹은 캔버스, 대리석, 목재, 석재 등을 비롯한 온갖 수단에 이의를 표하기 시작했다. 수단은 작품을 만드는 방식을 제한했다. 언제나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할 문제였다. 작가는 수단을 정한 다음에야 회화, 조각, 드로잉을 통해 심상을 표현할 수 있었다. 이런 순서를 바꾸고 싶었던 뒤샹은 수단을 나중으로 미뤘다. 1순위를 심상에 두었다. 일단 심상을 정하고 그것을 발전시킨 다음에야 수단을 정한다. 이때 수단은 작가가 선택한 심상을 가장 성공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소변기라면, 가져다 쓰면 될 일이다...” (p.27)


  “나는 숱하게 이야기하곤 했다. 고흐는 미쳐버리거나, 아니면 다른 화가들을 앞지를 것이라고 말이다. 그가 두 가지를 모두 이루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p.89) - 카미유 피사로


  “하얀 캔버스 위의 검은 사각형? 글쎄,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말레비치의 작품은 숭배를 받고 그 가치가 몇 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반면, 우리의 작품은 하찮고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걸까? ... 예술에는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표절에는 지적인 가치가 전혀 없다. 그러나 정통성에는 가치가 있다. 현대미술의 핵심은 혁신과 상상력이지, 현상 유지나 그보다 더 나쁜 흐리멍덩한 모방이 아니다. 게다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희소성을 경제적 가치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독창성, 정통성, 희소성, 이 세 가지를 모두 따져보면 말레비치가 그린 <검은 사각형>의 가격이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반면, 여러분이나 내가 그린 것은 무가치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말레비치의 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하며 고유한 작품으로, 시각예술 전체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pp.240~241)


  “그림의 색감과 질감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 말레비치가 내린 결론이다... 사실상 말레비치는 예술가를 주술사로 바꿔놓았다. 또한 예술을 예술가가 설정한 규칙에 따르는 심리 게임으로 바꿔놓았다. 이제는 화가의 붓이나 조각가의 끌을 손에 쥔 사람이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작가는 새로이 종속적이고 불리한 입장에 처한 관람객에게 감히 자신을 전적으로 믿어보라며 도발했다. 이런 상황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추상예술은 우리 모두를 쉽게 속아넘어가는 바보처럼 만들고, 실제로 그곳에 없는 무언가를 믿게 하는 위험에 빠뜨린다. 아니면 당연히, 계시와도 같은 예술작품을 분별없이 무시하는 것은 우리에게 그것ㅇ르 믿을 만한 용기가 없어서라고 몰아간다.” (pp.242~243)


  “초창기 다다이스트들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벌어진 참혹한 대학살로 인해 격렬한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들이 그러한 참극의 원인이라고 보았던 것들, 즉 기득권 자체 및 이성, 논리, 규칙, 규제를 과신하는 기득권의 사고방식에 대한 불만과 냉소로 들끓었다. 다다이즘은 그 대신 비이성, 비논리, 무법에 기반을 둔 대안을 제시했다.” (p.310)


  “... 달리가 괴짜인만큼 마그리트는 평범했지만, 보다 이상한 곳에 살고 있었다. 말하자면 부정적인 의미로 정상이 비정상이 되는 세상이었다... 벨기에 화가 마그리트는 그 어떤 것도 보이는 그대로 믿지 않았다. 공기 중에서 늘 불길한 징조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그가 그린 불길한 전원 풍경에 비하면,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는 아주 평범해 보인다. 마그리트가 앓는 편집증과 불안증의 정도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pp.346~347)


  “데 쿠닝의 <여인> 연작과 플록의 거대한 드립페인팅 작품에서는 작가가 쏟은 육체적 노력과 활기를 느낄 수 있다. 둘은 특유의 대담한 몸짓, 공격적인 붓질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거침없는 접근방식 때문에 이들에게는 ‘액션페인터(action painter)'라는 이름표가 붙었다. 이 또한 추상표현주의의 한 특징이었다. 그런가 하면 추상표현주의의 다른 한 쪽에는 이와 정반대의 표현방식을 추구한 화가들이 있었다. 색면회화(Color-Field Painting)를 그린 이들은 폴록과 데 쿠닝의 거칠고 사나운 그림과는 완전히 다른, 부드럽고 평온한 그림을 선보였다. 표면이 비포장도로처럼 울퉁불퉁한 폴록의 드립페인팅과 달리, 색면회화 작가들은 넓은 면적에 단색 물감을 고르게 펴발라 작품 표면이 공단처럼 부드러웠다.” (p.387)


  “개념미술은 개념이 훌륭할 경우에만 훌륭하다.” (p.434) - 솔 르윗


  “개념미술의 아버지는 마르셀 뒤샹이다. 1917년에 내놓은 ‘소변기’를 비롯해 레디메이드 작품들 덕분에 전통과의 단호한 결별이 가능했으며, 동시에 무엇을 예술이라 할 수 있고 또 예술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재고해보게 되었다... 예술가가 고유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고지식한 표현수단이라는 테두리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뒤샹의 논지였다. 그에게는 개념이 최우선이었으며,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추후에 고려해야 할 문제였다. 소변기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개진한 뒤샹은 오로지 회화 또는 조소로만 구분되었던 예술을 작가의 재량에 다라 좌우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놓았다. 이제 아름다움은 작품의 필수 요소가 아니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개념이었다...” (p.434)


  “모더니즘에는 단호한 면이 있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렇지 않았다. 전통을 거부한 모더니즘과 달리,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어떤 것도 거부하지 않았다. 모더니즘이 직선적이고 체계적이었다면, 포스트모더니즘에는 두서가 없었다. 모더니즘은 미래를 꿈꾼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미래에 의문을 제기했다. 모더니즘 작가들은 진지하고 진취적이었으며,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은 장난스러운 실험을 꾀하는 장인들이었다. 하나같이 교묘하게 불손하고 무심한 냉소주의를 풍겼다. 그게 아니라면 <심슨 가족>의 한 에피소드에서 모(Moe)가 말했듯,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이상해지기 위해 이상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p.493)


  “... 뛰어난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은 존경과 경멸을 동시에 담아 작품을 바라보는 영리한 제삼자들로부터 탄생한다. 사실 이는 모든 예술작품에서 통용되는 법칙이기도 하다.” (p.499)



윌 곰퍼츠 (Will Gompertz) / 김세진 역 / 발칙한 현대미술사 : 천재 예술가들의 크리에이티브 경쟁 (What Are You Looking Art? : 150 Years of Modern Art in the Blink of an Eye) / 알에이치케이 RHK / 559쪽 / 201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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