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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23. 2024

줌파 라히리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벵골어와 영어와 이탈리아어, 세 가지의 언어가 이 작가에게 만들어낸...

  “나는 글쓰기를 통해 모든 것을 해석하려 하기 때문에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는 것은 더 심오하고 자극적인 형식으로 언어를 익히고자 하는 내 방법일 뿐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내 말에만 속했다. 난 나라도, 확실한 문화도 없다. 난 글을 쓰지 않으면, 말로 익히지 않으면, 이 땅에 존재한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pp.75~76)


  벵골 출신의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줌파 라히리는 어린 시절에는 벵골어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는 학교에서는 영어를, 그리고 집에서는 벵골어를 사용하였다. 처음에 그녀는 부모에게 칭찬받기 위하여 벵골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기 위하여 애썼고, 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는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하여 노력했다. 영어권의 유명한 작가가 된 그녀는, 벵골어의 구사는 모르겠으나 영어 사용자로서의 능력을 충분히 인정받은 그녀는,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이탈리아어를 연마하기 시작한다.


  “매일 책을 읽으면서 나는 새로운 단어들을 발견한다. 밑줄을 긋고 메모장에 옮겨 적을 뭔가를 말이다. 잡초를 뽑아내는 정원사가 생각난다. 정원사처럼 내 일도 따지고 보면 미친 짓이라는 걸 안다. 절망적인 일, 시시포스의 힘겨운 노력이나 다름없다. 정원사가 자연을 완벽하게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열망이 크더라도 내가 이탈리아 단어를 모두 알기란 불가능하다.” (p.43)


  그녀는 미국에 있는 동안에는 이탈리아어를 가르치는 교사를 구하여 이탈리아어를 공부한다. 그리고 아예 이탈리아로 거처를 옮겨 그곳에서 생활하며 이탈리아어에 매진한다. 어떤 이들은 그런 그녀를 걱정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탈리아어를 향한 그녀의 도취, 그녀의 열망은 멈출 줄을 모른다. 그녀는 때때로 좌절하거나 절망하지만 그렇다고 그 도취나 열망이 사그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어를 향해 있는 그녀는, 그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내 분열된 정체성 때문에, 아마 성격 때문에 난 불완전한, 다시 말해 결점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언어적인 원인 때문일 수 있다. 동일시하는 언어가 부족한 탓이다. 미국에 살던 어린 시절부터 나는 벵골어를 외국인 억양 없이 완벽하게 말하고자 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하고, 뭣보다 내가 완벽히 그분들의 딸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한편 난 미국인으로 온전히 인정받기를 원했지만 내가 완벽하게 영어를 구사했음에도 그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뿌리를 박지 못하고 붕 떠 있었다. 난 두 가지 면이 있었고, 둘 다 불완전했다... 여기 이탈리아에서 난 지금 아주 잘 지내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불완전하다고 느꼈다. 매일 말을 하면서,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면서 불완전과 맞부딪힌다... 성인이고 작가인 내가 왜 불완전과의 이 새로운 관계에 매력을 느끼는 걸까? 무엇이 날 이렇게 만든 걸까? 명확하게 이해가 될 때의 황홀감, 나 자신에 대한 보다 깊은 자각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불완전은 발명, 상상력, 창조성에 실마리를 준다. 자극한다. 내가 불완전하다고 느낄수록 난 더욱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내 불완전을 잊기 위해, 삶의 배경으로 숨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글을 써왔다. 어떤 의미에서 글쓰기는 불완전에 바치는 경의다...” (pp.93~94)


  그 어쩔 수 없음의 기저에는 그녀가 얻고 있는 소설가로서의 명성이 깔려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신의 글쓰기를 ‘불완전에 바치는 경의’라고 정의한다. 그녀는 벵골어로 시작되었고 영어로 완성된 듯한 자신의 글쓰기가 가지는 어떤 완결성이 오히려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그녀는 이탈리아어를 선택한다. 자신이 여러 해 동안 호수의 얕은 둘레를 수영하는 것처럼 곁에서 지켜보았던 이탈리아어를 향하여, 호수의 깊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기로 한다. 그렇게 호수를 건너가기로 하고, 그것을 기록한 것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탈리아어 수업 숙제를 하는 심정으로 이 책의 각 장을 하나씩 질서 정연하게 써나갔다. 여섯 달 동안 대략 일주일마다 한 장씩을 썼다. 나는 그렇게 정연하게 계획대로 집필을 해나간 적이 없다...” (p.147)


  그리고 그 기록은 바로 이탈리아어로 이루어졌다. 맞다, 어린 시절의 벵골어 이후 내내 영어로 생활하였고, 영어로 문학 활동을 하였던 줌파 라히리는 이탈리아어에 대한 열정을 그 열정에서 그치지 않고, 이렇게 한 권의 산문집으로 마무리 지었다. 산문집 안에는 <변화>와 <어스름> 이라는 두 편의 짧은 소설까지 들어 있다. 자신이 지금까지 사용해오던 언어를 잠시 뒤로 미뤄놓고, 그녀는 이처럼 과감한 모험을 감행한다.


  “삼각형을 그린다면 영어 면을 그리기 위해서는 볼펜을, 다른 두 면을 그리기 위해서는 연필을 사용할 것이다. 영어는 보다 안정되고 확고한 밑면이다. 벵골어와 이탈리아어는 둘 다 좀 더 약하고 불분명하다. 벵골어는 물려받은 언어고, 이탈리아어는 내가 선택하고 원한 언어다. 벵골어는 내 과거고, 이탈리아어는 미래로 가는 새로운 길이다. 첫 번째 언어 벵골어는 나의 뿌리이고, 이탈리아어는 도착점이다. 두 언어 모두에서 나는 약간 못생긴 어린아이 같다.” (p.125)


  그러나 이러한 배경을 떼어 놓고 본다면 이 산문집은 그간 줌파 라히리가 영어로 쓴 소설에서 보여주었던 감동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녀가 벵골어와 영어 사이에서 느꼈을 어떤 틈을 영어와 이탈리어 사이의 어떤 틈으로 덮고자 할 수밖에 없는 어떤 연유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들어지만 그 연유를 향한 나의 이해는 조금 기울기가 모자라다. 모르지 않지만 안다고도 할 수 없는 줌파 라히리의 어떤 지점을 향한 나의 모험심이 부족한 탓인지도 모르지만...



줌파 라히리 (Jhumpa Lahiri) / 이승수 역 /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 (In Other Words, In Altre Parole) / 마음산책 / 165쪽 / 201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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