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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22. 2024

알랭 드 보통 《동물원에 가기》

화려하지 않지만 긴박한 우리들 보통의 관심사들을 향하여...

  오랜만에 읽는 알랭 드 보통... 슬픔이 주는 기쁨, 공항에 가기, 진정성, 일과 행복, 동물원에 가기, 독신남, 따분한 장소의 매력, 글쓰기(와 송어), 희극 이라는 일곱 편의 산문으로 채워져 있는 산문집이다. 펭귄 출판사에서 자사의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70명 문인들의 작품 선집을 발간하였고 그 중 한 권으로 기획된 책이다. (그래서 산문집에 실린 작품들은 대부분 이미 발표된 작품들을 나름 보완하여 다시 한 번 완결성을 갖추도록 만든 것들이라고 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에는 런던에 안개가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안개야 많았겠지만, 우리의 시선을 안도해주는 휘슬러의 그림이 없었다면 그 독특한 특질을 보는 것이 약간 더 어려웠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와일드가 휘슬러를 두고 한 이야기는 호퍼에게도 할 수 있다. 에드워드 호퍼가 그림으로 그리기 전에는 우리 눈에 보이는 주유소, 리틀 셰프, 공항, 기차, 모텔, 도로변 식당의 숫자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 (pp.24~25)

  이십 대 초반 알랭 드 보통의 산문 같은 소설을 두어 편 읽고 흠뻑 빠졌더랬다. 어렵지 않은 단어들을 쓰면서도, 먼 곳에서 가져온 것들과 지금 여기의 것들을 은유로 접합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사랑에 빠진 여인과의 첫만남을 떠올리며 그 장소인 리틀 셰프라는 곳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동시에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이 두 가지가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 바로 알랭 드 보통의 능력이다. 

  “... 침묵은 어느 쪽으로도 빠져나갈 도리가 없는 고발장이었다.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침묵하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이라는 뜻이 되고,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침묵하면 구제불능일 정도로 따분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임이 분명해지기 때문이었다.” (p.48)

  의외의 장소(그러니까 공항)나 의외의 대상(그러니까 일)에 대해 이런저런 산문을 쓰기 이전에, 그러니까 내가 급격하게 빠져들었던 시절의 알랭 드 보통은 사랑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그 이야기들은 이십대, 한창 모든 것을 사랑으로 환원시킬 수 있었던 내게 일종의 바이블 같았던가. 특수한 것을 평범한 것으로 그러나 동시에 평범한 것을 특수한 것으로 만드는 것 또한 알랭 드 보통의 능력이었다.

  “... 공공 부문에서 제공하는 주택, 운송, 교육, 의료가 시원찮으면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집단과 섞이는 것을 피하게 되며, 높은 담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그 뒤에 들어가 살려고 하게 된다. 보토이라는 것이 존엄과 안락에 대한 중간적인 요구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삶을 영위한다는 의미일 때는 높은 지위를 향한 욕망이 강렬해질 수밖에 없다.” (p.111)

  그리고 이러한 평범함에 대한 혹은 평범한 것들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그사이 하나의 철학으로 발전한 것 같기도 하다. 이제 그 대상은 사랑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관심의 대상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보통의 것들의 통합으로서의) 보통의 관념으로 발전한 것 같다. 보통이 정말 보통인 것이 될 때 누릴 수 있는 것들, 그러나 보통이 그저 말뿐인 가짜 보통인 것이 될 때 우리가 놓치게 되는 것들로 작가의 관심은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적의 방어선을 돌파하고, 외교를 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화려한 행위들이다. 그러나 꾸짖고, 웃고, 사고, 팔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가족과 함께 - 또 너 자신과 함께 - 상냥하고 정의롭게 함께 사는 것, 늘어지거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은 더 주목할 만한 일이고, 더 드물고, 더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건 그런 한적한 삶에서 이행해 나가는 의무들은 다른 화려한 삶의 의무들만큼이나 어렵고 또 긴박한 것들이다.” (p.117~118) - 몽테뉴 《수상록Essays》 재인용 

  알랭 드 보통의 에세이들은 그러니까 위에서 몽테뉴가 말하고 있는,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만큼이나 ‘어렵고 또 긴박한 것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들의 세상은 이 두 가지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그런 세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작가가 이 둘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반드시 그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한쪽을 잘 쓰는 작가도 우리에게 필요하다.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 / 정영목 역 / 동물원에 가기 (On Seeing and Noticing) / 이레 / 143쪽 / 200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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