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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0. 2024

개브리얼 제빈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비디오 게임 너머로 흘러 넘치는 우정과 사랑...

  초등학교 3학년 때였을 것이다. 학교 앞 문방구에 작은 비디오 게임기가 등장했다. 어쩌며 그 전부터 있던 걸 내가 그때 처음 인지한 것일 수도 있다. 검은 색 화면의 양쪽에 손가락 한 두 마디 크기의 흰색 바가 있고, 그 사이를 오가는 작은 공을 그 흰색 바로 튕겨내는 방식의 게임이었다. 검색을 해보니 고전 아케이드 게임인 ‘퐁’일 수 있겠다. 혹은 그와 유사한 게임일 수도 있고, 가격은 3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게임이란 건 원래 아무거나 하나를 마스터하고 나면 다른 것들도 쉽게 할 수 있어. 난 그렇다고 생각해. 결국 시력과 손놀림의 협업, 그리고 패턴의 관찰이니까.” (p.39)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오락실이라는 영업점이 본격적으로 들락거렸다. 벽돌깨기와 갤러그가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었다. 가격은 50원이었는데, 오락실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돼지 저금통의 입구를 자로 쑤시기 일쑤였다. 넓어진 틈으로 몇 개의 동전을 꺼내면 곧바로 오락실을 향했다. 엄마의 눈을 피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는지 아니면 엄마에게 걸려도 괜찮다는 용기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결국 걸려서 매타작을 당했다.


  “... 샘과 세이디는 둘 다 게임에 곤한 한 자신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좋은 게임과 나쁜 게임을 금방 구별할 수 있었다. 세이디의 입장에선 그 지식이 꼭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다. 도브와 함께 보낸 시간과 게임을 공부했던 세월이 뭘 보든 비관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어떤 게임을 갖다줘도 잘못된 점을 콕 집어 말할 수 있었지만, 어떻게 훌륭한 게임을 만드는지는 꼭 안다고 할 수 없었다. 모든 풋내기 예술가들에겐 취향이 제 능력치를 앞서는 시점이 있다. 이 시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것저것 만들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를 통과하도록 세이디를 밀어붙인 샘(이나 샘 같은 누군가)이 없었다면, 세이디는 지금과 같은 게임 디자이너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아예 게임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p.116)


  방구차며 너구리, 제비우스와 버블버블을 거쳤고 스트리트 파이터가 아마도 내가 이용한 마지막 아케이드 게임이었다. 대학 입학 이후까지 오락실을 들락거리지는 않았고, 이제 막 대중화되기 시작한 PC에서 플레이되는 게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아마도 스타 크래프트의 등장과 함께 아케이드 게임은 빠르게 물러나야만 했다. 이 모든 나의 게임의 역사가 1970년 말에서 1990년 초 사이에 이루어졌다.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의 순서다. 게임 내부의 알고리즘도 있지만, 게이머 또한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플레이 알고리즘을 생성해야 한다. 모든 승리에는 밟아야 할 순서가 있다. 어던 게임이든 플레이하는 최적의 길이 있다...” (p.280)


  소설은 1990년대의 비디오 게임을 배경으로 한다. 어린 시절 환자와 병원 방문객으로 우연히 만나 동키콩이라는 게임을 하며 우정을 쌓았던 샘과 세이디는 대학생이 되어 우연히 조우한다. 두 사람에 더하여 샘과 한 집에 살던 친구 마크스까지 의기투합하여 세 사람은 비디오 게임을 만들고, 그 게임의 성공으로 비디오 게임 회사까지 만들게 된다. 소설은 이 세 명의 사랑과 우정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래전 세 사람이 회사 이름을 고민할 때, 마크스는 ‘내일 게임’으로 하자고 주장했다. 샘과 세이디는 즉각 그 이름이 ‘너무 약하다’며 퇴짜놨다. 마크스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세익스피어의 대사에서 인용한 이름이라며 전혀 약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 이 좁은 보폭으로 느릿느릿 하루하루 / 기록된 시간의 마지막 한 음절까지. / 그리고 우리의 과거는 모두 바보들이 / 죽음으로 가는 길을 비춰줬을 뿐. / 꺼져간다, 꺼져간다, 짧은 촛부이여! / 인생은 단지 걸어다니는 그림자 / 무대 위에 나와서 뽐내며 걷고 안달하며 / 시간을 보내다 사라지는 서툰 배우 / 인생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 소음과 분노로 가득한 백치의 이야기” (p.538~539), (세익스피어의 시 부분은 〈「인생은 걸어다니는 그림자일 뿐」, 『생일 그리고 축복』, 장영희, 비체, 2017, p.357〉에서 재인용)


  개브리얼 제빈은 재미라는 측면에서 실패가 없는 작가이고, 이번에도 그렇다. 비디오 게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고 하여도 소설을 즐기는 데 큰 무리가 없다. 그러고보니 내가 마지막으로 즐긴 비디오 게임이라면 호러 어드밴처 콘솔 게임인 <령 제로>를 들 수 있겠다. 우울감이 극심하던 그때 불 꺼진 방에서 홀로 게임을 진행하곤 하였는데, 정말이지 농담이 아니라 등골이 오싹할만큼 무서웠다.



개브리얼 제빈 Gabrielle Zevin / 엄일녀 역 /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 / 문학동네 / 643쪽 / 2023 (2022)


ps. 주인공인 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가 모두 한국인이다. 요즘 읽는 외국 소설에서는 한국인 혹은 한국계의 등장이 심심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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