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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 《광인》

거대한 사건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그 결여까지를 포함한 개인의 자유의지.

by 우주에부는바람

1989년 텐안먼 사태가 있었다. 작가인 하진은 이를 계기로 1985년 유학을 위해 건너온 미국에 남기로 결심하였다. 톈아먼 사태는 중국 베이징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와 유혈 진압 사건을 통칭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875명의 민간인 사망, 14,550명의 민간인이 부상당했다고 하지만, 국제적십자 협회는 2,00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천안문 광장에 진입한 탱크와 이를 맨 몸으로 막아서는 학생의 사진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텐안먼 사태가 있던 그 해 봄, 소설 속의 양 교수가 쓰러진다. 소설은 이렇게 양 교수의 갑작스러운 뇌졸중 증세와 함께 시작된다.


“나는 어떻게 메이메이가 그러한 상황에서 공부에 몰두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베이징에서는 학생들이 역사적인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에게 그것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문제였다. 그녀는 정말로 강인했고 시계처럼 명확한 사람이었다.” (p.289)


지방 대학에서 명망을 지켜가며 학생을 가르치던 양 교수가 쓰러지면서 가장 곤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한 것이 바로 주인공인 나이다. 대학원 학생인 나는 양 교수가 바로 지도 교수이다. 나는 베이징에 있는 대학의 박사 과정에 진학할 예정으로 시험을 준비 중이며, 이를 추천한 것이 바로 양 교수이다. 그리고 이 시험에 합격하여 베이징에 가게 되면, 그곳에서 의학을 공부 중인 약혼녀 메이메이와 결혼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메이메이는 바로 양 교수의 딸이다.


“나는 내 자신이 내가 받는 고난만 한 가치가 없는 존재는 아닌지 두려울 뿐일세.” (p.146)


하지만 양 교수가 쓰러져서, 그야말로 광인이 된 것처럼 오락가락하는 정신의 상태에 놓이게 되자 모든 것이 엉키기 시작한다. 양 교수는 그간 그 자신이 보여주었던 것과는 상이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그를 하나의 롤 모델로 삼은 나를 망설이도록 만든다. 교수라는 직업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의 환상을 깨뜨리고, 나로 하여금 그 시험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도 이제 온전한 정신 대신 본능과 같은 광기만을 가지게 된 양 교수이다.


“... 나는 쓸모 있는 삶을 살고 싶은 것뿐이야... 다른 사람들이 자를 수 있도록 도마 위의 고깃점이 되는 건 아니지. 아니, 다른 식으로 얘기해 볼게. 나는 내 운명을 내 손에 쥐고 싶어. 그리고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끼며 죽고 싶어. 달리 말해, 내가 살아온 삶을 후회하지 않으며 죽고 싶다는 거야.” (p.374)


자신의 교수직이 대단한 것이 못되고 그저 사무원의 일종일 뿐이었다는 양 교수의 말은 나를 자극한다. 하지만 교수가 되기 위한 진학을 포기하고 인민에게 봉사하는 사무원이 되기로 한 자신의 결정을 유지하는 것도 내게는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사이 나는 양 교수의 광기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고, 메이메이와의 파혼이라는 상황과도 직면하게 된다. 대학 사회의 이런저런 부조리한 속내와 메이메이가 가진 욕망의 속살도 들여다보게 되었다.


“... 나는 개인적인 동기들이 정치 행위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내가 메이메이에게 허세를 부리려고 베이징으로 돌진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개인적인 관심사와 이유에 근거해 혁명에 가담한 것이었다. 하지만 공산주의 혁명에 대한 우리 역사서들은 언제나 개인적인 동기들을 제외시켰다. 나는 나이 든 혁명주의자들이 적군(赤軍)이나 공산당에 가입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정해진 결혼을 피하거나 빚을 피하거나 충분한 음식이나 옷을 얻기 위해서였다고 종종 말했던 걸 떠올렸다. 개인을 움직이고 따라서 역사의 동력을 일으키는 것은 개인적인 관심사들이다.” (p.435)


이와 더불어 나는 톈안먼 사태를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많은 학생들과 시위대가 죽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나의 목숨 또한 금세라도 사라질 것처럼 위태하기까지 하였다. 나는 메이메이와의 파혼이라는 개인적인 위기 때문에 그 사태의 현장에 서게 된 것이었지만, 그 사태 이후의 나는 변하지 않은 것 같지만 많은 것이 변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베이징으로부터 대학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다시 도망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다.


“... 나는 실제로 반혁명주의자처럼 행동했다. 나는 나의 용기를 메이메이에게 보여 주고자 했을 뿐만 아니라, 선택의 자유가 있는 자유인처럼, 내 자신을 혁명 기계로부터 떼어내려고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나의 스승과 같은 규정된 운명에 저항한 것이었다.” (pp.435~436)


이 모든 사태의 발단은 나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었으나 그 사태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은 고스란히 나의 의지라고 할 수 있을까... 양 교수의 광기로 촉발된 소설은 톈안먼 사태로 표현된 중국 사회의 광기로 이어진다. 그렇게 양 교수 개인의 광기는 곧 중국이라는 전체화된 사회의 광기와 연결된다. 거대한 역사적 사건과 개인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 오히려 이 모든 거대 사건들의 이면에서는 개인의 자유의지가 (어쩌면 그 결여까지를 포함하여) 직간접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짚고 있다.



하진 (Ha Jin) / 왕은철 역 / 광인 (The Crazed) 시공사 / 446쪽 / 200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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