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하게 우회하며 조성된 블랙 유머로 가득한 디스토피아 공포...
*2015년 7월 26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소설 《복종》이 프랑스에서 출간된 날은 2015년 1월 7일이다. 그날 프랑스에서는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의 마호메트 희화화에 격분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주간지의 본사를 습격하였다. 이날의 테러로 주간지의 편집진 열두 명이 살해당했다. 같은 날 출간된 소설 《복종》은 근미래인 2022년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비록 소설 속에서이지만 그해 2022년 선거에서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한 이슬람박애당이 정권을 잡게 된다. 소설은 이처럼 그 출간과 동시에 (실은 출간 전에 이미 인터넷에 그 내용이 공개되면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였다) 소설의 안과 바깥 양쪽으로 초미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다.
“... 무슬림의 진짜 적,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대상은 가톨릭이 아니라, 현세주의, 정교분리 원칙, 무신론적 유물론이거든요. 그들에게는 가톨릭교도들은 신앙인들이며, 가톨릭은 성전聖典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원래의 신앙에서 한 걸음만 더 움직이게 하면, 그러니까 이슬람으로 개종하도록 설득하기만 하면 그만인 거죠. 이것이 바로 가톨릭교도에 대한 무슬림의 진짜 비전, 애초의 비전입니다.” (p.188)
소설은 위스망스 (조리스카를 위스망스 1848~1907, 네델란드 출신이며 에밀 졸라의 제자로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미술비평가, 탐미주의와 악마주의를 경유하여 이후 중세 가톨릭교에 심취하였다) 전문가인 나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나는 파리4대학에서 위스망스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 파리3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나는 매년 괜찮은 신상(?) 여학생들 중 한 명을 골라 연애를 하고 때가 되면 헤어지곤 한다.
"아득한 옛날부터 프랑스 정치사를 구성해왔던 중도좌파와 중도우파의 양당 정치 시스템이 갑작스럽게 파열되자, 처음엔 프랑스 언론 전체가 실어증에 가까운 마비상태에 빠졌다...“ (p.243)
그리고 운명의 2022년, 선거가 있는 해... 나는 연애 대상들 중 하나인 미리암을 마지막으로 현재는 누구와도 사귀지 않고 있다. 헤어진 이후 미리암을 다시 만나게 되지만 그 관계는 모호하다. 그것은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역학 관계와도 같은 모호함이다. 그리고 결국 국민전선과 사회당의 결선투표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은 깨어지고, 이슬람을 기반으로 한 정당 이슬람박애당이 2위를 한다.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과 이슬람박애당이 맞붙게 된 결선투표를 앞두고 좌파 사회당과 중도 우파인 대중운동연합이 이슬람박애당을 지지하게 되고, 이제 프랑스는 이슬람박애당의 집권 하에 놓이게 된다.
"... 요컨대 혐오스러운 붕괴의 단계에 다다른 서유럽은 5세기에 고대 로마가 그러했듯 더는 몰락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여자의 복종과 선조에 대한 존경 등 여전히 자연적인 위계질서에 의해 지배되는 전통문화를 고수하는 이민자의 대량 유입은 유럽이 가족적, 도덕적으로 재무장하기 위한 역사적인 기회였으며, 구대륙의 새로운 황금시대에 대한 전망을 활짝 열어주었다. 이 백성들 중엔 간혹 기독교인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무슬림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터였다.“ (p.335)
이슬람 정권 출현 직전, 유대교도 부모를 둔 미리암은 프랑스를 떠나 이스라엘로 향한다. 처음에는 이스라엘로의 탈출에 회의적이었던 미리암은 그러나 이후 점차 나에게로 보내는 이메일이 뜸해지더니 결국 그곳에 안착한다. 나는 이슬람 정권의 출현과 함께 대학 강단을 떠난다. 충분한 보상을 받았기에 에스코트 걸을 만나 마음껏 즐기지만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여 수도원을 찾기도 하지만 결국 다시 파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슬람으로 개종한 총장 르디제로부터 강단 복귀 종용을 받는다. 망설이던 나는 이슬람 전통에 따라 르디제가 새로 얻은 어린 아내를 보면서 강단 복귀를 결심한다.
“복종에 대한 책이죠... 그전까지는 인간의 행복의 정점은 완결무결한 복종에 있다는 이충격적이고 단순한 생각이 그토록 강렬한 힘으로 표현된 적이 없었어요. 실은 같은 신앙인들 앞에서는 여간해서 내비치지 않는 생각입니다만-그들한테는 불경하게 보일 수 있거든요-제가 보기에 『O 이야기』에 묘사된 남자에 대한 여자의 절대적 복종과 이슬람에서 이야기하는 신에 대한 인간의 복종 간에는 유사성이 있습니다...” (p.317)
소설은 그 전체가 일종의 블랙 유머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아무것도 아닌 듯 이슬람 정권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은 매우 정교하게 우회하며 조성된 공포에 가깝다. 현재 유럽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원래의 유럽인들 혹은 프랑스인들이 맞닥뜨릴 수도 있는 새로운 정치 권력에 대한 일종의 경고일 수도 있다. 무덤덤하게 그리고 있지만 소설 속의 프랑스 사회는 일종의 디스토피아이다. 중세의 작가 위스망스를 다루는 내가 결국 이슬람으로 개종한다는 설정은 결국 변형된 형태로의 과거 회귀, 가톨릭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이슬람이 지배하는 정교 일치 사회로의 복귀를 떠올리는 데 충분하다.
미셸 우엘벡 / 장소미 역 / 복종 (Soumission) / 문학동네 / 374쪽 / 2015 (2015)
ps. 소설을 읽으면서 유럽의 반인종주의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갖고 있는 식민지의 종주국이라는 원죄의식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나치 경험으로 생긴 트라우마는 현대 유럽의 지식인들로 하여금 다른 무엇보다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경향을 갖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반인종주의가 다른 모든 사회적 이슈를 덮어버릴 때 생기는 왜곡된 경향을 우려하는 지식인들 또한 점차 늘어만 가는 것 같다. 얼마전 읽었던 영국의 사회상을 다룬 《챠브》에서도 이와 비슷한 것을 느꼈는데, 이번 우엘벡의 소설을 읽으면서도 바로 그러한 지식인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일단 우리와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그들이 미래 출현형 디스토피아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를 모셔야 하는 과거 지향형 디스토피아를 닮아 가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