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한 사랑과 기다림을 끝까지 바라보고야 마는 이 작가의 집요한 시선..
하진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하진은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유학 생활 중에 천안문 사태를 접하고 그대로 미국에 남았다. 모국어는 중국어이지만 미국에서 영어로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여전히 중국 혹은 중국의 중국인, 미국의 중국인 등을 등장시키고 있다. 모국어를 버리고 성인이 된 이후에야 시작한 외국의 언어로 글을 쓰는 일이 어떤 느낌일지에 대해서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두 사람 주위로 각다귀들이 날아다녔다. 두꺼운 백양나무 이파리로 내려앉은 하루의 잔영이 불어오는 바람의 도움으로 이파리들을 반짝거리게 했다. 개집 철망 안에서 개 한 마리가 껑충껑충 뛰면서 짖어댔고, 그 철망 바깥에는 어린아이들이 모여서 밖으로 나가려 하는 그 개의 헛된 시도를 지켜보고 있었다.” (p.163)
그래서 간혹 위와 같은 묘사가 나올 때 여러 감정이 떠오른다. 배경은 중국이고, 그것은 아마도 자신이 중국어를 쓰던 무렵에 본 장면일 것이다. 중국어를 쓰던 무렵의 어떤 장면을 떠올리고, 그것을 소설에 한 장면으로 삽입하면서, 이제는 그것을 미국어로 표현해야 하는 작가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짐작해보고 싶어진다. 게다가 작가는 즐겨서 위와 같은 풍경의 묘사를 작중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기 위해 종종 사용하는 편이다.
“그 세월 동안 너는 몽유병자처럼 무기력하게 기다리기만 한 거야.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끌려가면서 말이야. 외부의 압력에, 너만의 환상에, 스스로 내면화한 규정에 끌려가면서, 좌절과 수동적인 태도 때문에 너는 잘못된 길로 간 거야. 자기한테 허용되지 않은 일들이야말로 마음속 깊이 원하는 일이라고 믿으면서 말이야.” (p.456)
소설은 쿵린이라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현재 무진이라는 도시에서 군의관으로 일하는 쿵린은 젊은 시절 부모님의 소개를 통해 사진만 본 여성과 결혼을 하였다. 시골에서 자라기는 하였으나 고등 교육을 받고 인텔리겐차가 된 쿵린은, 전족까지 한 전근대적인 스타일의 그 여성을 실제로 보는 순간 절대 결혼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부모의 뜻을 거스를 수 없어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내와 딸은 시골에 둔 채 결혼 이후 모든 시간을 무진의 병원에서 보냈다.
“... 사랑이라는 게 이런 것일까? 그는 혼자 생각했다. 결혼이 인생의 무덤이라던 사람들 말도 일리가 있군. 이제 결혼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는데, 만나에 대한 감정은 점점 멀어지다니...” (p.329)
그리고 쿵린은 무진의 병원에서 우만나라는 한 여인을 만난다. 그가 군의관으로 일할 당시 수습 간호사로 들어온 우만나와는 이미 십여 년 이상 연인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쿵린은 휴가 기간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아내인 수위와 이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합의를 하고, 이혼 법정에 가지만 마지막 순간 수위가 이를 거부하면서 번번이 이혼에 실패하고 만다. 이러한 생활을 한 것이 햇수로 17년, 그리고 드디어 18년째가 되는 때에 쿵린은 이혼에 성공한다. 18년째가 되면 두 사람의 합의가 없어도, 당국의 이런저런 조사가 없어도 이혼이 가능하다는 무지의 군의관에게 해당하는 조항 때문이다.
“... 사랑에 대해 생각하다가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인과는 단 하루도 보낸 적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서 혼란스러워졌다. 그의 인생에 그런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었으므로 그런 감정 자체가 낯설었다. 이제 분명한 것은 하나뿐이었다. 만약 사랑과 마음의 평화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그는 후자를 택할 것이다...” (p.468)
그렇게 긴 기다림 끝에 쿵린과 우만나는 결혼을 할 수 있게 된다. 쿵린은 아내와 딸에 대한 미안함으로 그들을 도시로 불러들여 살길을 마련해주었고, 우만나는 결혼 후 쌍둥이를 출산한다. 그래서 쿵린은 행복해졌을까? 우만나는? 소설의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쪽이다. 오히려 행복해 보이는 것은 남편과 아버지의 부재를 참고 견딘 쿵린의 아내 수위 그리고 쿵린의 딸 화 쪽이다.
문화대혁명 기간이라는 시대 설정, 그리고 그 시기의 시골과 도시의 풍광, 그 시기를 살았던 여러 계층 사람들의 내면의 풍경이 꽤 촘촘하게 그려져 있는 소설이다. 그럼에도 크게 이러한 배경과 사람들에게 감정 이입이 되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집요하게 각자 자신들의 사랑, 혹은 자신들이 사랑이라고 믿는 것들을 유지하여 온 쿵린과 우만나, 그리고 쿵린의 아내 수위를 따라가는, 작가의 시선이 꽤나 집요하다고 느낀다.
하진 / 김연수 역 / 기다림 (Waiting) / 시공사 / 480쪽 / 2007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