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류 《55세부터 헬로라이프》

속절 없는 시간, 미루어 짐작하여 보는 55세 그 이후의 라이프는...

by 우주에부는바람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1976년)의 무라카미 류도 이제는 환갑을 훌쩍 넘은 나이가 되었다. 그의 소설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과 함께, 그리하여 투 무라카미) 뒤늦게 (우리는 80년대말 그리고 90년대 초가 되어서야 무라카미들의 소설을 접할 수 있었다) 읽던 나도 사십 세가 훌쩍 넘었다. 그는 분명 제 또래를 다루고 있음에도, 그렇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최소한 50세 이상의 생물학적 그리고 사회학적 나이에 도달하였다, 읽는 내내 어딘가 어색한 인상을 받게 된다. 속절 없는 시간은 그에게도 나에게도 공평하였고...


「결혼 상담소」

예순 살 정년퇴직한 남편의, 텔레비전만 보며 늘어놓는 불평불만을 듣는 것이 일상이던 나카고메 시즈코는 결국 54살에 이혼을 한다. 소설은 그 이혼 후의 이야기이다. “... 스스로 인생의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나카고메 씨가 비유로 든 배우 역시 정말 하고 싶은 배역이 평생 동안 그리 많지는 않을 거예요. 아무리 재능 있고 돈이 있어도 인생의 모든 일이라는 게 뜻대로 풀리지 않는 법이죠. 일이든 생활이든 타인이랄까, 상대가 있게 마련이니까요. 아무튼 타인은 로봇이 아니니 자기 마음대로 부릴 수는 없을 테고요. 다만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지를 생각하는 사람과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크게 다르지 않을까요?” (p.47~48) 결혼 상담소의 상담원에게 이러한 충고를 들으며 몇 차례 소개 받은 사람과 데이트를 하지만 물론 만족스럽지는 않다. 그리고 그녀는 어느 날 결혼 상담소에서 마련한 단체 미팅(?) 비슷한 것이 있는 호텔에 갔다가 우연히 우는 남자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 남자와의 하룻밤... 그녀는 변했고, 계속해서 한 번 만날 것을 재촉하던 남편과 만난다. 물론 남편과의 재결합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그녀는 자신의 변화를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녀는 확실히 변했다.


「하늘을 나는 꿈을 다시 한 번」

쉰네 살에 정리 해고를 당한 인도 시게오는 자신이 노숙자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는 한다. 그렇게 은행 잔고가 줄어드는 것을 바라보며, 아내의 일감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학업을 계속하고 있는 자식을 바라보며 불안감을 느끼고는 한다. 이런 불안감 속에서 교통정리 아르바이트를 하던 인도는 중학교 시절의 동창 후쿠다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후쿠다는 그야말로 정말 노숙자와 같은 신세가 되어 있다. 몸은 병들었고 마음은 황폐해져 있다, 노숙자들이 많은 지역의 허름한 숙소에서 겨우 목숨만 부지하던 그의 마지막 길, 인도는 후쿠다를 데리고 그의 노모를 찾아간다. “... 인도 시게오는 돈도 없고 허리도 안 좋은데 자신이 왜 후쿠다를 어머니에게 데려가려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그것은 분노였다. 지나쳐가는 사람들에게 혐오에 가득 찬 시선을 받고, 택시 운전사들에게 무시당하자 노동지원센터의 층계참에서 자각한 분노가 점점 분명하게 윤곽을 드러내며 다시금 타올랐다... 그것은 무력감에 압도되어 뭔가 소중한 것을 방기하지 않으려는 마지막 수단으로서의 분노였다...” (p.146)


「캠핑카」

토미히로는 조기 퇴직에 응하면서 자신만의 꿈을 이루겠다 결심한다. 그것은 캠핑카를 구입하여 아내와 함께 원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여행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끓여 마시는 여유를 누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자신의 계획을 처음 말한 날 아내의 반응은 예상외의 것이었다. 딸로부터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아내에게는 또한 아내의 시간 그러니까 ‘자신만의 시간’ 이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시간과 토미히로의 계획 사이의 간극에 당황하고 있는 것이다. 토미히로는 이제 재취업에 도전해보기로 하지만 그것 또한 예상하지 못했던 난관이다. 토미히로는 무시를 당하거나 외면을 당한다. 그리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던 커피를 넘기지 못하는 증상까지 나타난다. “누구나 제각각 고유의 시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설령 부모나 자식이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그것을 맘대로 침범할 수 없는 겁니다. 오로지 회사에만 매달려온 중, 장년 남성 중에는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일본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속과 비호’라는 관계 속에서는 타인을 대등한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이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죠. 누구나 자기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깨달음입니다만,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본질적이며 일종의 사건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일시적이나마 정신적인 불안정을 겪기도 합니다...” (p.224) 그리고 이제 토미히로는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무언가를 조금씩 뒤돌아보게 된다. 그동안 자신이 살아오면서 바라보지 못했거나 않았던 것들을...


「펫로스(pet loss)」

전형적인 ‘외향형 인간’인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다카마키 요시코는 남편과 함께 이시구로 씨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 싫다. 남편은 그 방문 후 집에 돌아오면 이시구로 씨의 아름다운 아내에 대해 칭찬을 하고는 한다. 그녀가 마음을 붙일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쉰세 살일 때, 어렵게 남편의 허락을 구하여 함께 살기 시작한 개 보비 뿐이다. 그리고 그런 보비를 산책시키면서 만나는 요시다 씨와의 작은 수다까지.. 요시다 씨는 “당신은 외로움을 많이 타니까 내가 죽거든 다정한 누군가를 다시 만나세요.”라는 아내의 말 때문에 오히려 아내가 죽은 지금 누구도 만나고 있지 않다. 이러한 말 때문에 ‘도리어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흘러가던 일상에 보비의 병과 죽음이 끼어든다. 남편과 아내의 사이... 보비의 죽음을 통해 더욱 벌어질 것 같았던 두 사람 사이는 그런데 그로 인해 오히려 그 간격을 좁힌다. 보비가 죽으면서 두 사람에게 남기고 간 무엇, 그러니까 요시다 씨에게 죽은 아내가 남기고 간 무엇과도 같은 그 무엇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행 도우미」

시모후사 겐이치는 어린 시절 해녀였던 외할머니의 집에 머물면서 일본 차를 좋아하게 되었고, 말이 없던 아이는 어느 순간 수다스런 아이가 되었다. 자라서는 트럭 운전사가 되었는데 아마도 화물차 운전사였던 아비지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순 살이 되었을 때 회사에서 해고되었다. 그는 젊은 시절 많은 여자를 알았지만 결혼하지 않았다. 이제는 헌책방에서 장르 소설을 사다가 읽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는데, 그곳에서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쉰 살쯤 되어 보이는 몇 차례인가 데이트를 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작스런 이별 통보를 받게 되고 실의에 빠진다. 결국 주소를 알아내어 그녀의 집까지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가지고 있던 비밀, 불치병에 걸려 운신을 하기조차 힘든 남편이라는 존재를 알게 된다. 그녀는 시모후사 겐이치 와의 짧은 데이트에 대한 추억을 말하고 다시는 자신을 찾지 말 것을 통보하는 메일을 보낸다. 그리고 나는 어린 시절 해녀였던 외할머니와의 추억이 있는 곳, 해녀 오두막집을 다시 찾아간다. 해녀 오두막집은 이미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우연히 간병 여행사 직원을 만나게 되고, 그들의 여행을 돕는 ‘여행 도우미’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무언가를 실어 나르는 트럭 운전사라는 직업, 간병이 필요한 사람들을 실어나르며 여행을 돕는 여행 도우미라는 직업, 이 두 가지가 해녀였던 외할머니의 공간에서 마주치게 된다. 소설은 여기에서 끝이 나지만 그 뒤를 우리는 어림짐작 해볼 수 있다.



무라카미 류 / 55세부터 헬로라이프 / 북로드 / 375쪽 / 201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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