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을 풀고 그와 그녀의 사적인 도시에 상념의 끝을 맞대어...
*2015년 5월 29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출판사 난다에서 <걸어본다>라는 이름의 시리즈가 나오고 있는데 그 세 번째 권으로, 저자는 미술 공부를 한 번역가 (줌파 라히리의 소설 《이름 뒤에 숨은 사랑》과 《그저 좋은 사람》을 번역했다) 박상미가 썼다. 이 시리즈의 이미 발행된 두 권은 평론가인 이광호가 용산을 배경으로 쓴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그리고 소설가‘강석경이 경주를 배경으로 하여 쓴 《이 고도를 사랑한다》이고, 이번에 박상미의 책은 뉴욕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번역가 박상미가 뉴욕을 배경으로 하여 쓴 책이다. (뉴욕에서 거주하면서 블로그에 계속해서 글을 올린 블로거이기도 한 저자의 글을 누군가가 모두 출력을 하는 정성을 보였고, 그 정성에 감화되어 저자는 이렇게 하나의 책으로 만들 생각을 했다고 한다.)
“사는 방법엔 넓게 사는 방법과 좁게 사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피카소는 넓게 살았지만 모란디는 좁게 살았다. 어떤 사람은 주변에 많은 친구들을 두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평생 한두 명의 친구로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하고 살고, 어떤 사람들은 한가지만 하고 산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많이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큰 집에 사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좁은 집에 산다... 좁은 집에 살려면 집에 두는 것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불필요하고 탐탁치 않은 것은 과감히 내다버리는 것이 좋고, 그보다 좋은 건 애초부터 안목을 가지는 일이다. 그래서 유용하고 아름다운 것들만 곁에 두고 ‘크게’ 보며 살아야 한다. 그 방법만 잘 터득하면 좁은 집에 사는 게 그리 답답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p.22)
책은 2005년 말에서 2010년까지 블로그에 실린 것들이었다. 미술 공부를 한 저자이다보니 다양한 미술가들이 (패션 디자이너 등도) 등장한다. 그러니 ‘그림은 논문 같은 것’이라고 말하며 ‘물리학 역사를 바꾼 논문들을 두고 어렵다고 화를 내지는 않는’ 것처럼 그림을 해석하는 일을 너무 멀리 하지 말라고, 그저 마음 가는대로 보는 감상법에만 매몰되지 말라고 에둘러 말할 수 있다.
“먼로는 어디서나 찬사와 존경의 말밖에 듣지 않는 보기 드문 작가이지만 내가 그녀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매우 사적인 이유에서였다. 그녀는 어디에선가 자신의 독서 습관에 대해 말했다. 대개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는다고, 아무데서나 출발해서 앞으로 가거나 뒤로 가기도 한다고. 그 이야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하지 않고, 다만 그 안에서 왔다갔다하며 자신의 시각을 변화시키는지,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발견하려 한다고. 이 글을 읽는 순간 나는 내가 한 말을 읽은 줄 알았다(살다보면 누구나 이런 착각의 순간을 경험할 것이다. 그 순간부터 그 사람과 나는 어떤 보이지 않는, 그러나 유의미한 끈으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나의 독서 습관은 먼로의 묘사와 매우 흡사하다(하지만 나는 그녀가 정말로 그럴까 의심하곤 한다). 종종 내가 ‘자폐적’이라 묘사하는 나의 독서 습관은 극단적인 경우 단 한 줄에서 끝나는 경우도 있다. 어떤 한 줄을 읽고 심하게 실망하면, 또는 심하게 만족하면 책을 덮는다. 실망해서 덮은 책은 다시 읽지 않고, 만족해서 덮은 책은 다시 야금야금 손을 댄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란 어디를 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책들이다. 나의 이런 습관이 굳이 창피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랑스럽지도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인정하게 되었다. 어쩌겠어, 일종의 난독증이야. 내러티브 결핍 증후군. 아니, 넌 그냥 그런 둔재야. 그런데 먼로의 글을 읽고, 그녀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 건 아니지만, 무척 반갑고 고마웠다. 하긴 먼로도 그런 습관 때문에 단편소설에만 몰두했는지 모를 일이다.” (pp.274~275)
또한 번역가인 탓에 소설가 등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특히 앨리스 먼로 (사실 지금, 앨리스 먼로의 소설을 읽고 있다)와 제임스 설터(제임스 설터의 표지 그림들이 에드워드 호퍼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가 반갑다. 블로그에 실린 글들을 모은 것이라는 특징상 글들이 파편화되어 있기는 한데, 저자의 글 솜씨가 좋다. 그러니 아래와 같은 그녀의 독서법을 그녀의 이 책에 적용시켜도 무리가 없다.
“집이 좁아지니 책장이 가까워졌다. 나는 원래 무작위로 책 한 권을 뽑아 한 두 줄 읽고 치워두는 버릇이 이는데, 책장이 가까워졌기에 더 자주 ‘랜덤 책뽑기’를 일삼는다. 랜덤으로 하는 일이 갖는 속성이겠지만 때로는 ‘맛있는’ 문장을 만나기도 하나 많은 경우 별 소득 없이 책을 덮는다...” (p.28)
사실 나의 독서법은 저자나 앨리스 먼로와는 아주 다르다. 어지간히 날 괴롭히는 책이 아니면 그리고 책을 읽을 때의 심경이 너무 번잡스럽지만 않다면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는다. 대신 한 번에 몇 권의 책을 읽기는 한다. 주로 소설과 산문과 시, 이렇게 장르가 다른 책을 읽는데 여하튼 끝까지 읽는 편이다. 어떤 책이든 작은 장점쯤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작년만 하더라도 좋은 책만 골라 읽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나의 독서는 잡식이라는 식성을 버리지 못하나보다.)
“누군가는 『안나 카레니나 Anna Karenina』를 좋아하느냐의 여부로 사람을 판단한다는데, 난 불꽃놀이를 업신여기는 사람을 비밀리에 의심하곤 한다. 불꽃놀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변별력이 별로 없지만, 이를 특별히 하찮게 여기는 사람은 분명 어딘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을 거라 생각된다. 까만 밤하늘을 배경으로 수만 개의 불빛들이 색색으로 터지는데 이를 보고 흥분하지 않는 사람은 간지럼조차 타지 않는다, 무감각한 사람임이 거의 확실하다.” (p.189)
작가의 문장은 군더더기가 적다. 아주 간혹 모호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하면 작가의 생각에 손가락 끝을 가져다 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작가의 문장이 마음에 들어서 그녀가 번역한 책이 아니라 직접 쓴 책 또 다른 책을 구매하기로 작정하였다. 《뉴오커》와 《취향》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보다 빠르게 (어쨌든 그녀는 뉴욕에 있었으니까) 그리고 매이저와 마이너를 가리지 않고 취득한 것들을, 가감을 최소화한 채 전달할 것이라 짐작되기 때문이다.
“... 옷을 입고 살아야 하는 우리의 몸은 어차피 극장과도 같다. 기능과 장식, 보호와 파격, 보임과 드러냄이 끊임없이 갈등과 긴장을 빚어내는...” (p.193)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자본과 재능과 창조성이 극적으로 만나고 부딪치는 곳’이자 ‘웅장하고 화려하고 정신없고 조금은 난해하기도 한’ 뉴욕, 을 읽다가 그곳에 살고 있는 지인 두 명을 문득 떠올렸다. 한 명은 고등학교 때의 친구인 남자이고, 한 명은 성인이 된 이후의 친구인 여자이다. 남자와는 올해 초 통화를 했고, 여자와는 작년 페이스북 메신저로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아주 오래전 일이다. 아마도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얼굴이 책 속에서 저자가 마주쳤던 ‘뭔가 계속 잃어온 얼굴’을 닮아 있지 않을까, 걱정스레 떠올려본다.
박상미 / 나의 사적인 도시 / 난다 / 302쪽 / 2015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