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이 될 것인지, 서정적 현학이 될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는...
책을 읽다 어느 순간, 그러니까 마음에 드는 문장이 나타났다거나 책을 이해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 여겨지는 부분을 발견하였을 때 포스트잇으로 표시를 한다. 그리고 이후 리뷰를 작성할 때 그 부분을 일단 발췌하여 적어 놓고는 한다. 그렇게 하는 중에, 그러니까 아래의 문장을 적다가 그만 응시한다, 를 응사한다, 로 잘못 타이핑 하였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시 속에서’ 라고 적어야 할 것을 ‘시 속세에’ 라고 적기도 하였다.
“인내, 인간은 스스로 돌아볼 기회를 박탈당한 후에라야 거울을 정면으로 본다. 응시한다. 인내의 결과는 고통이고, 새로운 고통을 사기 위해 새로운 공포를 판다는 것을 안다. 고통의 결과는 공포이고, 인내를 없애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시 속에서 너무도 많은 ‘자아’들이 너무도 많은 것들을 인내해야만 했다...” (p.35)
반쯤 얼이 빠진 상태로 책을 읽었던 같다. 그러한 상태가 리뷰를 쓰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책의 내용들에 심하게 뒤통수를 얻어맞았기 때문이야, 라고 말하면 참 좋을 테지만 그 때문은 아니었다. 시인으로는 어울리지 않게 심히 현학적인 문장들을 짓무르는 눈 짚어가며 읽어야 했기 때문이었고, 허락되지 않은 봄밤을 구부정하게 어슬렁거리는 상념들에 치이느라 그랬기 때문이었다.
“총명함이 허락하는 나이는 마흔 이전이다. 마흔 이후에 ‘총명하다’는 말을 듣는다면, 그 앞에는 ‘아직’이라는 부사가 생략된 무서운 충고인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을 망치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자신을 잊어버리는 방법은 없어서 무한하다. 이즈음에는 읽은 만큼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그이가 내 선생인 것을 안다. 저렇게 읽고 새기다니!” (pp.76~77)
그러고 보니 며칠 전, 양평에 기거하는 선배 네를 향하는 차 안에서 후배가 마루야마 겐지에 대해 물었던 것이 떠오른다. 아마도 현학적이기 그지없는 마루야마 겐지의 문체가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너무 장식적인 것 아니냐, 는 류의 물음이었다. 나는 충분히 그렇게 느낄만 하지만 마루야마 겐지의 경우 그의 책 한 권이 아니라 그의 책 전체를 아울러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답하였다. 네가 느낀 그 조금은 거슬리는 문장은 그저 소설 속 그 순간을 치장하기 위한 하나의 문장이 아니라 그의 짧지 않은 소설 내내 유지되는, 그리고 그의 소설 전체를 내내 관통하는 것이고, 또한 그의 유장한 문장은 그가 소설 속에서 다루는 고고한 세계관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도 아주 적절하다. 곧 그의 문장은 마루야마 겐지의 아우라, 라고 칭할만한 스타일의 한 켠이라 할만하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 시가 되기 전에, 시인이 되기 전에, 말이 되기 전에 우선 한 인간의 삶이 저를 까발리며 시와 시인을 말하리라는 것. 결국은 한 인간으로 살아간 그이의 민낯이 시가 된다. 그 저열한 실패와 악전고투와 숭엄한 광기와 지리멸렬한 일상과 타협과 협작 속에서의 자기 확신까지도 말이다...” (p.271)
그런 면에서 그러니까 마루야마 겐지와 비교해보자면 이 시인의 현학은 아직 하나의 스타일이 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오히려 그것은 하나의 수양으로 보이기도 한다. 일기의 형식으로 적어 내려가는 문장들은, 많은 부분 자신이 택한 문학 장르인 시에 대한 그리고 시인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아직 이 작가의 시를 읽어보지 못하였는데, 그 시들은 많은 부분 인간의 외부 보다는 인간의 심층을 향해 있지 않을까 짐작하게 된다.
“질서와 자기 수양, 나날의 임무들, 전술과 전략들, 제 자신을 옥죄는 고래 뼈로 만든 코르셋. 우리의 삶이 체념으로 극복해야 할 하나의 고문이라면, 나는 오히려 그 고문의 유희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볼까 내내 궁리 중.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말. 그런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당신이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p.278)
다만 그의 현학이 허세로 이어지지 않을까 (물론 그가 서정적 현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발굴하게 될 런지도 모른다)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현학이 자칫 스스로에게 독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마루야마 겐지와 같은 경우는 오히려 드물다) 물론 모든 문학이 독자를 고려하거나 배려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독자를 배제하려는 제스처에 물들어 있는 문학의 손을 들어줄 생각 또한 없다. 예전의 나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신동옥 / 서정적 게으름 : 시인 신동옥의 문학 일기 / 서랍의날씨 / 299쪽 / 2015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