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크 하고자 애쓰는 대신 소박하고 정겨운 시선으로...
《일인용 책》은 시인 신해욱의 산문집이다. 2012년 11월부터 2014년 9월 초까지 한국일보에 실었던 칼럼의 모음집이다. 700자 안팎이라는 한계가 있는 신문 칼럼의 형식을 따라 썼던 글들이다 (작가는 책으로 엮으며 이러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수정을 해볼까 하였으나 그만두었다고 한다). 소소하거나 사소한 일상을 바라보는 시인은 굳이 유니크 하고자 애쓰는 대신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시선을 유지한다.
“... 시골에서 갓 올라온 청년에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안 하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하더란다. 내가 뭘 먹었는지, 쟤가 어딜 갔는지, 그런 거 가지고 사사건건 입방아 찧는 게 싫어서 도시에 왔는데 왜 새삼 그런 ‘시골스러운’ 걸 해야 햐냐고...” (p.115~116)
예를 들어, 다른 사람보다 조금 느리게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시작하고 그것에 적응하며 전전긍긍 하던 시절 만나게 된 위와 같은 이야기 한 토막을 실어 놓는 식이다. 거창하고 거시적인 식견을 보여주는 것은 뒤로 잠시 미루고 미시적인 이웃의 일견 하나를 통하여 우리를 들여다보도록 만들어준다. 그러고 보니 정말 지독히 파편화된 현대적인 라이프의 도구로 SNS를 사용하는 우리들의 삶은 오히려 시골스러운 특징을 갖는 것이 아닌가.
“... 어떤 작품에도 어떤 사람에게도 흠은 있게 마련이다. 문제는 흠이 아니라, 흠을 낱낱이 들추는 동안 나 자신이 흠에 사로잡힌 ‘머저리’가 된다는 거. 어디에나 흠이 있듯 어떤 흠도 희미한 빛을 품고 있다. 엉성함과 촌스러움과 상스러움과 난삽함의 이면에서 그 빛을 발견하는 순간, 빛은 대상에 귀속되는 데 머물지 않고 찾은 사람에게도 와닿는다...” (p.137)
또한 작가의 많은 글들은 되도록 작고 약한 것들, 그리고 밝고 긍정적인 것으로 향하려 애쓰는 것도 같다. 크고 강한 것들과 어둡고 부정적인 것들 대신 우리들 삶의 구석구석에서 도사리고 있는 빛나는 것들에 더욱 신경 쓰려 한다. 그러한 시선의 구축이 우리들 삶을 좀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혹은 그러한 이야기들을 함으로써 자기 자신 그리고 우리들의 방향을 조금 틀어보고자 하는 것 같다.
“...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홀로 설 수 없는 아이들을 돌볼 의지가 없는 매정한 사회. 아이들의 마음은 경쟁의 전쟁터 속에 몰아넣고 아이들의 몸은 폭력과 학대 속에 방치하는 냉혹한 사회... 어쩌다 나는 이런 몹쓸 사회의 구성원이 된 것일까... 누가 누구를 부러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 그래야 한다면, 아이를 키우는 이들이 아이가 없는 나를 부러워하느니, 아이가 없는 내가 아이를 키우는 이들을 부러워하는 게 낫다. 최소한 그런 세계에 살아야 한다. 2014.4.29.” (pp.293~294)
하지만 작가가 칼럼을 쓰고 있던 그 시기에 세월호가 가라앉았다. 칼럼을 쓰면서 지나보낸 일곱 번의 계절 그 사이, 세월호가 우리 모두를 붙잡고 가라앉던 그 시기에 작가 또한 많은 생각들을 하고 쓰고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실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회라면) 응당 가져야 할 최소한의 도리조차 갖추지 못한 사회였다는 (그리고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없다) 사실 앞에서 작가는 멈칫한다. 작고 약한 것들의 스러짐 앞에서 도저히 밝고 긍정적일 수 없었던 그 때를 작가를 통해 잠시 복기한다.
“이사 준비를 하고 있다. 창고를 정리하는 일이 하염없다. 가져갈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하는 것만도 큰일인데 지나간 시간이 자꾸 뒷덜미를 잡는다... 싸갈까 말까 망설이는 것만으로 금세 하루가 지난다. 이사를 여러 번 다니며 버릴 건 꽤 버렸는데도 이 모양이다. 나름 소중한 것만을 남겼기 때문일 텐데, 소중한 것도 쌓이고 쌓이면 무덤덤해지다 거추장스러운 짐으로 변하는지라 웬만한 정은 떼버리고 ‘특히’ 소중한 것만을 고르려니 마음이 오락가락할 수밖에.” (p.239)
자신이 바라본 것을 굳이 형용하려 하지 않는 작가의 시선이 나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은 싱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좀더 믿음이 가기도 한다. 작가가 일상 속에서 찾아내는 사리들, 그리고 그렇게 다시 분별되어진 일상들은 우리로부터 그리 먼 곳에 위치하고 있지 않다. 당장이라도 펜을 들고 나의 일상을 적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 이 또한 나쁘지 않다.
신해욱 / 일인용 책 / 봄날의책 / 365쪽 / 2015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