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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Aug 24. 2024

수전 손택 《수전 손택의 말》

자신의 삶 안에서 분명하고 세계 속에서 강직한...

  “이타주의가 없이 참된 문화의 가능성은 없다.” (p.12)


  《수전 손택의 말》은 제목처럼 수전 손택의 인터뷰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파리와 뉴욕, 마흔 중반의 인터뷰’라는 부제처럼 이 책의 인터뷰는 1978년 6월 중순 파리에서 그리고 1978년 11월 뉴욕에서 열두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인터뷰어는 <롤링스톤>지의 에디터인 조너선 콧이고, 당시의 인터뷰는 1979년 <롤링스톤>지에 3분의 1이 실렸다. 그리고 이 책은 당시 실렸던 3분의 1에 나머지 3분의 2를 포함한 전문을 실어 2003년 출간되었다.


  “자, 내가 원하는 건 내 삶 속에 온전히 현존하는 것이에요. 지금 있는 곳에, 자기 삶 ‘속’에 자기 자신과 동시에 존재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세계에 온전한 주의를 집중하는 것 말입니다. 사람은 세계가 아니고 세계는 사람과 동일하지 않지만, 사람은 그 안에 존재하고 그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지요. 그게 바로 작가의 일입니다. 작가는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지요. 그게 바로 작가의 일입니다...” (p.29)


  에세이스트이자 소설가였고 영화제작자 겸 정치적 행동가였던 수전 손택의 말 (보통은 글)은 내게는 꽤나 맛있게 느껴진다. (아쉽게도 그녀는 2004년 생을 마감하였다) 그녀의 말은(글도) 핵심을 뱅뱅 돌면서 독자를 괴롭히지 않는다. 행간을 읽으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혹여 나중에 그 말을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는 당장의 생각을 전하는 데 있어 더듬거리지 않는다. (물론 그녀가 이런 적이 있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 말투가 단호하기 그지 없으니...)


  “그래요. 독서는 제게 여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에요. 세상이 못 견디겠으면 책을 들고 쪼그려 눕죠. 그건 내가 모든 걸 잊고 떠날 수 있게 해주는 작은 우주선이에요. 그러나 제 독서는 전혀 체계적이지 못해요. 굉장히 빨리 읽는다는 점에서는 아주 운이 좋은 편이죠. 대다수 사람들에 비해 저는 속독가라고 생각되는데, 많이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대단히 유리하지만 어디 한 군데 진드근히 머무리지 않기 때문에 단점도 많아요. 저는 그냥 전부 흡수한 후에 어디선가 숙성되기를 기다리거든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식하답니다...” (p.66)


  최근 읽은 몇몇 산문집들에서 허망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그녀의 이 인터뷰집이 더욱 마음에 들은 것일 수도 있다. 허세도 없고 부러 장식하는 경우도 없다. (그의 글도 마찬가지이리라...) 짐작하건대 그녀는 어떤 진영에 속하지도 속할 생각도 없으니 자유롭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느 쪽으로든 날선 비판을 할 수 있다. 이처럼 자유로운 지성은 세계 속의 그녀로 수렴되고 또 이 세계를 향하여 발산된다.


  “파시즘의 레토릭에는 신좌익이 하는 말과 유사한 지점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신좌파가 파시스트라는 말은 아니에요. 그런 말은 온갖 보수주의자들과 반동주의자들이나 대놓고 할 얘기죠. 그러나 이 모든 일이 단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사실에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만 해요. 지독하게 복잡하다는 건 우리가 처한 상황의 인간적 본질이니까요. 모든 것에는 상충되는 충동들이 있고, 우리는 계속 모순적인 것에 주의를 기울이며 이런 것들을 정리하고 파악하고 정화하고자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죠.” (p.74)  


  그녀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대해서 그런 것은 그렇다고, 아닌 것은 아니다, 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잘못한 것이 없으니 부끄럽거나 뒤로 빼지도 않는다. 인터뷰는 (아무래도) 이미 출간된 그녀의 책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그 중 나는 《은유로서의 질병》을 읽고 싶어진다. (그녀가 썼다는 단편 소설집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은 궁금하지만 읽고 싶지는 않다. 자칫 그녀의 글에서 느꼈던 즐거움이 반감될는지도 모른다고 기우한다.)


  “... 착시와 허위와 선동을 파괴하려고 애쓰는, 그래서 만사를 더 복잡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해요. 만사를 더 단순하게 만들려는 불가피한 기류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내게는, 그 무엇보다 끔찍한 일이라면 아마 내가 이미 다 쓰고 얘기한 내용에 동조하게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게 아마 날 그 무엇보다 불편하게 만들 거예요. 왜냐하면 그건 내가 생각하기를 멈추었다는 뜻일 테니까요.” (pp.196~197)


  (수전 손택의 글을 많이 읽지는 못하였으나 지금까지는) 그녀의 글은 그녀의 이런저런 행적만큼이나 인상 깊다. 글과 행적의 괴리가 있었다면 그녀에 대한 평가 또한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하지만 하나의 답을 내어주는 것은 아닌, 겸손한 듯 하지만 물러섬은 없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로움을 가지고 있지만 읽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지는 않는, 작가의 특질이 잘 반영되어 있는, 여러 ‘문단’들이 마음에 든다.


  “직선적인 논증을 활용하는 에세이 형식이 전 굉장히 답답해요. 만사를 실제보다 훨씬 더 연속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제 마음이 이리저리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데다, 논증이란 건 제게 사슬의 고리보다는 바퀴의 살에 더 가까워 보여요...” (P.95) 



수전 손택, 조너선 콧 / 수전 손택의 말 : 파리와 뉴욕, 마흔 중반의 인터뷰 (The Complete Rolling Stone Interview) / 마음산책 / 216쪽 / 2015 (197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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