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 블런델 《그 여름의 거짓말》

소녀의 거짓말로도 완벽히 가려지지 않는 그때 그 시절의 속사정...

by 우주에부는바람

‘그때는 1947년이었고, 전쟁이 끝난 후였다.’ 열다섯 살의 소녀 에벌린은 서른 두 살의 엄마 비벌리와 함께 전쟁에서 돌아온 조를 반겼다. 혹시 조가 돌아오지 못할까봐 비벌리와 에벌린은 노심초사하였다. 모두가 감내하는 것을 두 사람도 감내하면서 전쟁의 시간을 보냈다. 조는 에벌린의 의부였지만 두 사람은 조를 좋아하였고 조 또한 두 사람을 좋아하였다. 전쟁은 끝났고 조는 돌아왔고 조가 시작한 사업들도 나쁘지 않았다.


열일곱 살에 에벌린을 낳았고 친부가 떠난 후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던 비벌리는 에벌린이 자신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랬다. 에벌린은 엄마와 비교되는 자신의 미성숙한 현재를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기를 에벌린의 엄마 비벌리 또한 바랬다. 세 사람이 팜비치로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그곳에서 조의 군대 시절 전우였던 젊은 피터를 만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계속 지금처럼 나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일단 첫발을 떼면 거기서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원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이제는 안다. 원하는 대로 따라가다보면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세상에 단 한 번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p.57)


하지만 성수기가 아닌 이 휴양지의 호텔에서 이들이 만나고, 에벌린의 어린 마음에 피터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허리케인의 전조는 에벌린과 피터가 만난 호텔 수영장에 도사리고 있었다. 어쩌면 허리케인은 이들이 나눈 말과 눈빛과 몸짓들이 뿜어내는 수증기를 머금으며 힘을 키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순간 허리케인이 이 바닷가 휴양지를 덮쳤고, 피터는 죽었다.


“그는 나를, 마치 한 번만 제대로 쳐다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속속들이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 점에서 피터는 아버지를 닮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가 나를 들여다보자 나는 흔들렸고 두려운 기분이 들었다. 뭔가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p.340)


피터는 죽었지만 함께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갔던 비벌리와 조는 돌아왔다. 허리케인이 지나간 후 두 사람은 돌아왔고 피터는 시체가 되어 발견되었다. 두 사람은 법정에 출두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소녀 에벌린은 자신의 지난 시간을 복기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제 소녀는 안다. 피터와 자신이 보내는 시간을 엄마가 방해한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자기 자신이야말로 두 사람 사이의 훼방꾼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에벌린은 진실을 진실인 채로 드려내지 않는다. 아니 사실 소녀가 생각한 진실은 진실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 피터는 죽었고 남은 것은 이 세 명의 불안정한 가족이다. 이 가족의 연명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은 에벌린이었고 에벌린은 이 가족을 좀더 연명시키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것이 옳은 판단이었는지 그른 판단이었는지를 지금은 아무도 말해줄 수도 없다.


“나는 피터에게 무엇을 빚졌을까? 이제 나는 그 대답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진실보다 더 큰 것이다. 약간의 정의. 그를 위한 정의가 아니라, 그 자신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한 정의.”(p.359)


소설은 전쟁이 끝난 시기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시기는 열다섯 살 소녀 에벌린처럼 불안정하다. 전쟁 후의 호황은 첫사랑에 빠진 에벌린처럼 핑크빛이지만 (전쟁 중 불법으로 취득한 유대인의 금붙이, 흑인용과 백인용으로 나뉜 개수대, 유대인을 차별하는 호텔 등과 같은) 그 속사정은 실은 겉모습과는 조금 다른 내막들을 가지고 있다. 허리케인이 낱낱이 속살을 드러내도록 만들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리고 이제 소녀 에벌린만이 그 속사정을 알고 있고 그것이 이 소녀에게는 너무 무거운 빚이다. 그리고 그 빚의 속성은 바로 ‘약간의 정의’가 아닐까.


소설은 열다섯 살 소녀를 주인공으로 삼은 성장 소설의 외양을 띠면서 동시에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일종의 사회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작가는 주드 왓슨 등의 여러 필명으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발표하였다고 하는데 (그리고 이 작품은 작가가 본명을 걸고 쓴 첫 번째 소설이다) 어쩌면 그것이 이처럼 한 편의 소설에 여러 장르적 속성이 포함될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주디 블런델 / 김안나 역 / 그 여름의 거짓말 (What I Saw and How I lied) / 문학동네 / 369쪽 / 201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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