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랑스러운 고도를 다시 방문해야 하는 몇 가지 이유...
용장사지, 계림로, 괘릉, 동궁과 월지, 황룡사지, 대릉원, 월성, 산림환경연구소, 남산동, 무열왕릉, 교동, 국립중앙박물관, 인왕동, 황오동 골목, 노서동 고분공원, 진평왕릉, 배반들, 오릉, 북천, 식혜골,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경주에서 소설가 강석경이 보낸 십여년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산문집이다. 그러니까 난다에서 걸어본다, 라는 이름으로 내고 있는 시리즈물의 두 번째 작품으로 이번에는 신라의 수도였던 고도 경주를 그 대상으로 삼고 있다.
“여름의 문턱으로 들어서며 비가 자주 온다. 식물들을 살찌울 비다. 어제 담장 너머로 복숭아나무에 영근 초록 열매들을 보았다. 이제 복숭아도 태양 아래 무르익어 단물을 올리겠지. 나무의 꿈 같은 풍성한 잎들과 열매.” (p.47)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2학년 때였나...) 경주로 수학여행을 간 적이 있다. 고속버스를 탔고 가는 내내 구창모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 남궁옥분의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를 떼창하였던 기억도 난다. 중정(?)이 있는 단층의 여인숙이 숙소였고 우리는 숙소에서 촌스러운 추리닝을 입고 지냈으며 밤에는 젊은 여선생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이불말이를 하고는 좋아했다. 일찍 어른이 된 몇몇은 밤에 철제 대문을 타고 넘었는데, 신라의 달밤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후 여태 경주를 다시 방문하지 못하였다.
“이제야 알겠다. 경주의 깊이란 다름 아닌 황룡사지의 봉 자국에 묻은 신라인의 정성과 깊은 염원이라는 것을. 분황사 탑에 서린 한기리 여자 희명의 간절한 기도라는 것을. 비록 후손들이 이익에 눈이 어두워 고층 아파트를 마구 세우고 유산을 손상했지만 돌 틈에도 살아 있는 그 숨결 때문이라는 것을.” (p.56)
아내와 나는 매해 마지막 날이면 다음 해에 우리가 할 일을 적어서 나눠 갖고는 하였다. (이제는 이마저도 옛 일이 되었다. 요즘은 그저 덕담을 주고받는다, 주로 서로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로...) 그리고 어느 땐가 나는 우리가 죽기 전에 함께 할 것들의 리스트 100개를 만들었다. 거기에는 두 사람이 함께 경주로 여행을 가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던가. 그 리스트는 티비 장식장 두 번째 칸에 있는데, 한동안 그것을 꺼내 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을 꺼내서 이미 함께 한 것들의 리스트에 체크를 해야 한다. 물론 아직 경주에 가지 못했으므로 그 항목은 지울 수가 없을 것이다.
“작가에게 책은 생존과도 같아서 여느 작가들처럼 내 방은 책으로 에워싸여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책으로부터도 벗어나 선비 책상 하나만 놓인 빈방에서 살고 싶다... 책도 장식도 없는 바이란 심플한 삶을 말하는데 스님의 선방 같은 방, 무욕의 방, 무집착의 방, 빈 그릇 같은 방을 말한다.” (pp.100~101)
아내는 몇 해 전 회사 연수차 경주 보문단지에 다녀온 적이 있다. 서울로 돌아온 아내를 용산역에서 픽업해서 돌아오는 길 내내 아내는 경주의 풍광을 나에게 설명했다. 그 좋은 풍광을 혼자만 보고 온 것이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다. 내가 동의하기만 한다면 그 길로 방향을 틀어 다시 경주로 향할 기세였다. 대략 그로부터 십여 년의 세월이 다시 흘렀다. 그때 방향을 틀지 못했고, 지금도 아내와 나는 방향을 틀지 못한 채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
“능 앞에 서 있는 감나무에 감이 익으니 까치들이 날아와 쪼아먹는다. 아이들은 골판지를 엉덩이에 붙이고 능 위에서 미끄럼을 탄다. 이 무위의 풍경. 고도에도 어김없이 시멘트 문화가 침투하여 아파트가 계속 세워지지만 경주는 짓고 채울 것이 아니라 수도승처럼 비워야 할 도시가 아닐까...” (p.180)
얼핏 떠오르는 경주를 방문해야 하는 이유만 해도 벌써 세 가지나 된다. 그리고 이번에 방문을 하게 된다면 이 책과 동행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의 겉표지를 뒤집으면 경주와 그 근방의 지도가 나오는데 그 지도를 이용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저자의 발걸음을 조금 멀찍이서 뒤따라가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면 왠지 나 또한 이 오래된 도시를 좀더 각별히 여기게 될 것 같다.
강석경 / 이 고도古都를 사랑한다 2004~2014 / 난다 / 183쪽 / 2014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