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騷亂스러움이 키워낼 무언가를 위하여 巢卵을 슬쩍 밀어 넣어두기 위한
*2015년 4월 5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일주일 전쯤 이사를 했다. 나는 나의 삶이 나름 현실적이라고 여겼으나 실은 그렇지 않았음을 오랜만에 실감하였다. 이사는 봄처럼 리얼하였고, 나의 삶은 잠시 피었다 지는 꽃처럼 비현실적이었다. 집을 구하고 이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일을 해내는 동안 심한 피로감을 느꼈다. 결혼한 이후 고작 두 번째 이사였을 뿐이었는데도 그랬다. 충분히 騷亂스러웠고 그 소란스러움이 나를 피로하게 만들었고 그 피곤함은 매우 구체적이어서 현실적이었다.
"그는 밤의 바닥을 손으로 쓸면서 달렸다. 손가락이 펄럭이다 나뭇잎과 섞이는 줄도 모르고. 지문이 냇물에 풀어져 지도가 생기는 줄도 모르고...“ (p.44)
이사를 하고 첫날,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을 읽으며 잠자리에 들었다. 제목은 소란이었고, 騷亂이었으며, 巢卵이었다. 시끄럽고 어수선하다는 의미의 騷亂과 암탉이 알 낳을 자리를 찾도록 돕기 위하여 둥지에 넣어두는 달걀을 의미하는 巢卵,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품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는 제목이었다. 나는 이사를 하기 위해 치러야 했던 騷亂, 이사 당일의 騷亂, 그리고 이사가 정리되기까지 감내해야 할 騷亂을 생각하느라, 극심한 몸의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쉬이 잠들지 못하였다.
“... 좋은 시들은 몸이 일하게 만든다. 몸이 배제된 상태의 머리란 대체로 무능력하지만 머리가 배제된 상태의 몸은 가끔씩 황홀하게 매력적인 일을 벌이기도 한다...” (p.61)
시인의 말을 따르자면 이사와 관련하여 최근 내가 겪은 모든 騷亂은 바로 나의 巢卵이 될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겪은 현실적인 피로감들이 결국 나의 현실감 부족한 생이 낳을 무언가를 위한 밀알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나는 새벽까지 책을 읽었고, 정리되지 않은 건너편 책이 있는 방의 어둠을 향해 눈길을 주기도 하였고, 틈틈이 꿈을 꿨다.
“어둠 속에서 혹은 꿈의 번짐 속에서. 잠과 잠의 경계에서 속눈썹은 물속에서 움직이는 팔처럼 너울거린다.” (p.151)
나는 꿈에서 누군가에게 어떤 호소를 하고 있었다. 꽤 간절하였으나 그것은 그저 간절하기만 하였으므로 실체가 없는 간절함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 호소를 멈출 수가 없었고 어느 순간 상대방인 그 누군가가 나의 호소에 조금씩 감화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상대가 바로 이 책의 주인인 시인이라고 직감하였고 불현 듯 꿈에서 깨어났다. 내가 책을 모두 읽은 다음이었다.
“나무가 땅에 박힌 빗자루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 꼼짝없이 땅에 붙박여 허공이나 흔들흔들 쓸어보는 조용한 빗자루라는 생각.” (p.237)
이사를 끝내고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사 중, 이라고 적힌 무거운 팻말을 걸고 있는 것만 같다. 몸은 뻐근하고 정신은 난분분하며, 이 모든 것들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騷亂스러움이 현실을 키워냈고 이제 그 현실이 키워낼 무언가를 위하여 巢卵을 넣어 둘 공간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시인이 쓰는, 시 같기도 하고 시가 아닌 것 같기도 한 산문집을, 읽고 생각하기에 적당하였다.
박연준 / 소란 / 북노마드 / 302쪽 / 2014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