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애매하고 모호함으로 무장한 '무의미'가 조장하는 어떤 '축제'를 향한 제

by 우주에부는바람

*2015년 2월 15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학교 선배가 운영하는 까페 여름에서는 가끔 작은 토론이 벌어지고는 한다. 딱히 주제도 없는 그런 것들이어서 한참 토론을 하다보면 저절로 맥이 빠져서, 아 역시 세상은 그저 무의미한 것일 뿐이야, 하며 정리가 되는 경우도 있다. 아마 그 날도 그런 작은 토론이 있었고, 그러다 문득 밀란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라는 제목의 소설이 떠올랐고, 뭐야 우리가 얼렁뚱땅 세상은 무의미해, 라고 외치며 정리하였던 그 토론들이 아예 의미가 없던 것은 아닌 건가, 그러니까 그 무의미한 난장 같았던 토론이 혹시 하나의 ‘축제’라고 호명되어도 괜찮은 것이었나, 하는 얼토당토않은 결론에 도달했다고나 할까...


“6월의 어느 날, 아침 해가 구름에서 나오고 있었고, 알랭은 파리의 거리를 천천히 지나는 중이었다. 아가씨들을 자세히 보니 아주 짧은 티셔츠 차림에 바지는 모두 아슬아슬하게 골반에 걸쳐져서 배꼽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그는 거기에 완전히 홀려 버렸다. 홀려 버린 데다 혼란스럽기까지 해서, 아가씨들이 남자를 유혹하는 힘이 이제는 허벅지도 엉덩이도 가슴도 아닌, 몸 한가운데의 둥글고 작은 구멍에 총집중돼 있단 말인가 싶었다.” (p.9)


그런 연유로 무척이나 오랜만에 집어든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위와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것은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들 중의 한 명인 알랭이 파리의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끄집어낸 생각인데 얼마 후 알랭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니까 지금 알랭은 어머니와 떨어져 살고 있으며 그 어머니와는 아주 어릴 때 마지막으로 본 것인데, 바로 그 어머니에 대한 찰나의 기억이 배꼽과 관련된 것이었다.


“... 서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다 잊었지만 어떤 순간 하나, 구체적이며 정확하게 각인된 한 순간만은 그의 기억에 단단히 자리 잡았다. 의자에 앉은 그녀가 아들의 배꼽을 뚫어지게 바라본 그 순간. 그는 그 시선이 아직도 배에 느껴진다. 이해하기 힘든 시선. 그 시선에는 어딘가 설명할 수 없게 연민과 경멸이 한데 섞여 있는 것 같았다...” (p.48)


소설에는 이러한 알랭의 배꼽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스탈린이 자신의 협력자들에게 들려주었다는 스물네 마리의 자고새 이야기도 (이야기 자체보다는 스탈린이라는 인물이 이런 시덥잖은 이야기를 즐겼다는 사실과 그러한 이야기 뒤에 그의 협력자들이 뒤에서는 그 이야기를 거짓말이라고 하며 비아냥 거렸다는 사실이)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한다. 사실 이처럼 성과 정치 혹은 거짓과 농담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에서도 보여지던 밀란 쿤데라의 특징이 아니겠는가...


“예전에 사랑은 개인적인 것, 모방할 수 없는 것의 축제였고, 유일한 것, 그 어떤 반복도 허용하지 않는 것의 영예였어. 그런데 배꼽은 단지 반복을 거부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반복을 불러. 이제 우리는, 우리의 천년 안에서, 배꼽의 징후 아래 살아갈 거야. 이 징후 아래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라 배 가운데, 단 하나의 의미, 단 하나의 목표, 모든 에로틱한 욕망의 유일한 미래만을 나타내는 배 가운데 조그맣게 난 똑같은 구멍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섹스의 전사들인 거라고.” (pp.138~139)


그렇게 소설은 사소한 것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함 혹은 그러한 사소한 것들 뒤에 웅크리고 있는 어떤 거대한 속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속성이 바로 지금 더욱 강렬하게 작용한다고 할 수 있음을, 이제 우리들은 쿤데라식으로 말하자면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을 ‘존재의 본질’로 삼고 있음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어떤 시절에 당도하였음을 인정하고 그에 걸맞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토로한다.


“... 이제 나한테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더 강력하고 더 의미심장하게 보여요.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p.147)


우리가 까페 여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품게 되는 어떤 애매함과 모호함의 정체가 이 소설을 통해 속시원하게 밝혀졌다, 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실상은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무의미’와 ‘축제’에 대한 개념 조차 어떤 애매함과 모호함으로 가득차 있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까페 여름의 우리들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확실시되는데, 밀란 쿤데라가 무려 14년 만에 다시 이처럼 애매하고 모호한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 또한 비슷한 이유에서가 아닐까...



밀란 쿤데라 / 방미경 역 / 무의미의 축제 (La fête de l'insignifinance) / 민음사 / 149쪽 / 201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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