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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0. 2024

옥타비아 버틀러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

지금 여기가 처한 디스토피아를 벗어나기 위한...

  “나는 언론인들이 ‘말세’로, 또는 더 흔하고 더 비통한 표현인 ‘역병기’로 일컫기 시작한 격변의 시기가 2015년부터 2030년까지 이어졌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다. 십오 년에 걸친 혼돈의 시기였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역병기는 훨씬 더 긴 환난이었다. 2015년보다 한참 전, 어쩌면 2000년대가 되기도 전에 이미 시작됐는지 모른다. 그리고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역병기는 3차 세계대전을 할부로 구매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냈다. 사실, 역병기 동안에는 세계 곳곳에서 소규모의 잔혹한 전쟁이 벌어졌다. 어리석은 짓이었다. 인명과 재산을 낭비하는 것이었으니까. 명목상으로는 악독한 외적에 맞서 싸우는 전쟁이었지만, 실제로는 무능한 지도자들이 달리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서 싸우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그런 지도자들은 전쟁을 뒷받침할 애국심을 이끌어내려면 공포와 의심, 증오, 곤궁, 탐욕에 의지하면 된다는 것을 잘 알았다.” (pp.15~16)


  소설의 출간된 것이 1998년이고 소설 속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로런 오야 올라미나의 일기는 2032년 9월에서 2035년 12월까지 다뤄지고 있다. (마지막 일기는 2090년 7월 20일의 것이지만...) 그리고 이 일기에 앞서는 시대적 배경으로 저자는 ‘역병기’라는 일정한 시기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소설을 읽고 있는 2023년은 바로 그 ‘역병기’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다. 


  “성서의 그 우화를 다시 떠올려보면, 나의 ‘달란트’는 지구종이다. 비록 땅을 파고 묻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 달란트를 이곳, 바닷가의 산속에 묻었다. 우리가 심은 삼나무와 비슷한 속도로 자라나도록. 하지만 그것 말고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만약 내가 재럿만큼 훌륭한 선동가였다면 지구종은 지금쯤 거대한 운동이 됐을 테고, 진짜 표적이 됐을 것이다. 차라리 그게 더 나았을까?” (p.38)


  사실은 소설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에 앞서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가 있었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는 2024년에서 2027년 사이를 다루고 있으며, 전작의 소녀 로런은 이제 ‘지구종’이라는 새로운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 에이콘에서 리더 역할을 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로런은 나이든 의사 반 콜레와 함께 살고 있으며, 두 사람 사이에는 곧 딸 아이 하나가 있을 예정이다.


  “... 우리는 지구 생명의 정수, 그러니까 인간과 동식물을 태양계 바깥의 별들로 퍼뜨릴 거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해. ‘지구종의 숙명은 별들 사이에 뿌리내리는 것’이니까.” (pp.81~82)


  하지만 크리스천 아메리카라는 종교 단체를 기반으로 질럿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들 단체의 암묵적인 지원을 받는 십자군에 의해 로런의 공동체는 완전히 파괴된다. 반콜레는 죽고 로런의 2개월된 딸은 납치되어 다른 이의 손으로 넘어간다. ‘지구종’의 신도들은 목줄을 찬 채로 노예와 같은 생활을 하고, 로런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드물게 작성할 수 있는 일기로 현재를 기록하는 것 뿐이다. 

 

  “모든 기도는 자신을 향하며 / 또한, 어떤 식으로든, / 모든 기도는 응답을 받는다. / 기도하되, / 조심하라 / 그대의 욕망은, / 그대가 이루든 이루지 못하든 / 그대가 어떤 사람이 될지 결정할 것이다.” ― 《지구종: 산 자들의 책》에서 (p.517)


  그 사이사이 소설에는 죽은 줄 알았던 로런의 남동생 마크(마크 또한일종의 설교자로서 소설 안에 몇몇 글이 발췌되어 있다) 그리고 크리스천 아메리카의 신도 부부에게 양육되는 로런의 딸 라킨(엄마의 일기를 찾아서 읽으며 엄마를 이해하려 하지만 결국 성공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중요하게 등장한다. 그런가하면 대통령이 된 질럿은 전쟁을 일으키고, 사회는 더욱더 안 좋은 방향으로 치닫는다.


  “... 지구종의 핵심은 숙명을 완수할 준비를 하는 거예요. 작은 공동체에서 서로 힘을 모아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이와 동시에 우리가 처한 환경과 지속 가능한 동반자 관계를 맺는 거죠. 이대 교육과 적응 능력은 그 자체로서 절대적인 필수 요소로 다뤄져요,, 지구종은... 지구종의 내용은 이보다 훨씬 더 방대해요. 하지만 핵심은 그거예요.” (p.630)


  하지만 결국 로런은 살아 남고, 우여곡절 끝에 또다른 동지를 만나 ‘지구종’을 뿌리 내리도록 만드는 일에 성공한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에서 발아된 ‘지구종’은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에서는 다른 별로 나아가 뿌리를 내린다는 ‘지구종’의 숙명으로 이어진다. 어찌 보면 두 권의 우화 시리즈는 저 멀리 우주로 나아가는 SF 소설의 프리퀼에 해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여기가 처한 디스토피아를 벗어날 유일한 방법으로써 말이다.


옥타비아 버틀러 Octavia E. Butler / 장성주 역 / 은총을 받은 사람의 우화 (Parable of The Talents) / 비체 / 719쪽 / 2023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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