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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0. 2024

무라카미 하루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회유와 의지라는 이율배반의 결합으로 무력해지는 벽...

  하루키의 이번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은 송파구 잠실동 10번지에 위치한 서울종합운동장의 올림픽주경기장 북문과 서울종합운동장 잠실보조경기장 사이의 어중간한 어둠에서였다. 올림픽주경기장의 관중석 이동 경로를 천정으로 삼고 있는 그 통로는 원형의 스타디움을 적절한 어두움으로 감싸는 공간이다. 나는 잠실보조경기장의 우레탄 트랙을 달리기 위하여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새벽이면 그곳을 찾은 지 일 년이 넘었다.


  “진짜 너는 높은 벽에 둘러싸인 도시 안에 있다. 그곳에는 냇버들이 늘어진 아름다운 모래톱이 있고, 몇 군데 야트막한 언덕이 있고, 외뿔 달린 과묵한 짐승들이 곳곳에 있다. 사람들은 오래된 공동주택에 살면서 간소하지만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한다. 짐승들은 도시에 자라는 나무 잎사귀와 열매를 즐겨 먹지만, 눈이 쌓이는 긴 겨울 동안 많은 개체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는다.” (pp.14~15)


  내가 일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달리는 대신, 하루키의 소설을 읽은 것은 내가 그때 마침 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삼 주 전쯤 삼 곱하기 오, 단으로 이루어진 책장의 한쪽을 잡고 계단을 뒤로 걸어 오르다 왼쪽 발목이 뒤틀렸다. 아니 그러니까 발목이 통째로 뒤틀린 것은 아니고, 발목 주변으로 포진하고 있는 힘줄에 알 수 없는 힘이 작용하여 붓고 염증이 생겨버렸다.


  “... 당신은 바깥세계에 있던 것이 그녀의 그림자고, 이 도시에 있는 것이 본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글쎄올시다. 실은 반대일지도 모르거든요. 어쩌면 바깥세계에 있던 것이 진짜 그녀이고, 이곳에 있는 건 그림자인지도 몰라요. 만약 그렇다면 모순과 가짜 이야기로 가득한 이 세계에 머무른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당신은 확신합니까, 이 도시에 있는 그녀가 진짜라고?” (p.152)


  나는 절룩거리며 겨우 걸을 수 있었고, 지금까지는 함께 달리던 아내와, 그날도 함께 잠실보조경기장까지 차로 이동하였지만, 함께 달릴 수는 없었다. 나는 잠실보조경기장에서 주경기장 쪽으로 뚫려 있는 통로를 통하여 들어오는 빛에 의지하여 하루키의 신간을 읽기 시작했다. 잠실보조경기장 건너편 자동자 전용도로인 올림픽대로를 달리는 차들이 내는 소리가 트랙을 달리는 수십 명 사람들의 소리를 붙잡고 내가 앉은 벤치까지 들려 왔다.


  “... 「시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사람은 한낱 숨결에 지나지 않는 것, 한평생이래야 지나가는 그림자입니다... 네, 이해하시겠습니까? 인간이란 숨결처럼 덧없는 존재고, 살면서 영위하는 나날도 지나가는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네, 저는 옛날부터 이 말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만, 그 의미를 진심으로 이해한 건 죽어서 이런 몸이 되고 나서였습니다. 그래요, 우리 인간은 그저 숨결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죽어버린 제게는 이미 그림자조차 달려 있지 않습니다.” (pp.358~359)


  책을 읽다가 잠시 고개를 들었는데, 그곳의 빛과 소리가 적당하다 여겨졌다. 빛은 경계를 이뤄서 어둠과 극명하였고, 전혀 다른 속도의 소리가 터널 안에서 하나의 웅얼거림이 되었다. 소설에는 진짜, 본체와 같은 단어가 등장하고 그 건너편에 그림자를 덩그러니 떼어 놓는다. 하지만 소설의 어느 순간이 되면 그림자가 진짜이거나 본체인 나를 회유하고, 나는 나의 의지에 따라 그 회유에 넘어간다. 


  “카운터 위에 놓인 내 손에 그녀가 손을 포갰다. 매끄러운 다섯 손가락이 내 손가락과 조용히 얽혔다. 종류가 다른 시간이 그곳에서 하나로 포개져 뒤섞였다. 가슴 밑바닥에서 슬픔 비슷한, 그러나 슬픔과는 성분이 다른 감정이 무성한 식물처럼 촉수를 뻗어왔다. 나는 그 감촉을 그립게 생각했다. 내 마음에는 내가 충분히 알지 못하는 영역이 아직 조금은 남아 있을 것이다. 시간도 손대지 못하는 영역이.” (p.637)


  그녀가 만든 도시에는 아주 높은 벽이 있지만 소설 속의 나는 그렇게 회유와 의지라는 어울리지 않는 덕목의 혼합을 통해 그 벽을 넘나든다. 그 벽이 제목에서처럼 불확실한 것은 그 존재가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희미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기능이 수시로 무력화되기 때문인 것 같다. 그건 그렇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가 아는 한 달리기에 가장 진심인 소설가이다. 뭐, 만약 지금 달리지 않는다면 소설가였다, 라고 해야겠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 홍은주 역 /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街とその不確かな壁) / 문학동네 / 767쪽 / 20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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