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론" vs "무신론"에 관하여
살며 생각하며
by 송면규 칼럼니스트 Dec 25. 2021
일요일이 되면 많은 사람이 교회, 사찰 등을 찾아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오래전에 여러 신부님과 '신앙의 본질'에 관해 대화하면서 고개를 갸우뚱 한 기억이 있다. 언제 다시 성당문을 열게 될지 모르겠지만 십 수년간 주일이면 괘종시계추 처럼 성당을 오갔다.
성탄절 아침에 종교 관련 글을 쓴다는 게 다소 무겁지만,
삶의 일부분이라 생각하면서 자위하기로 한다. 아울러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에는 '동지'가 큰 명절 중 하나로 예수님 탄생일이 확실하지 않아 교황께서 동지를 예수탄생일로 선정했다는 역사 기록을 참고한다.
유신론은 "신을 숭배하여 삶의 목적을 찾는 일" 등으로 두산백과에서 표기하고 있다. 또 초등사회 개념사전에는 "신이나 절대적인 힘을 통하여 인간의 고민을 해결하고 삶의 근본 목적을 찾는 문화 체계"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게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종교 관련해서, 많은 사람이 대화하고 때로는 격론을 벌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한 하늘 아래 살지만, 유신론자와 무신론자는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게 된다.
언급했듯이, 유신론자의 세계에서는 "이미 신이 실제 한다"라고 믿는다. 따라서 신은 언제, 어디서나 나를 지켜보고 보호하며 또 말을 건넨다고 생각한다.
즉 유신론자의 세계에서 신은 망상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며, 인간의 삶에 구체적이고 분명한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반면 무신론자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무신론자의 세계에서 신은 없다. 나의 세계에도 신이라는 용어가 있고 관련된 문학이 있고 교회나 사찰이 있겠지만, 어떤 초월적 존재로서의 신이 실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를 지켜보고 보호하며 말을 건네는 무엇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는 물질과 인과 법칙의 작용으로 움직일 뿐이라고 해석한다.
영국 명문 공립대학인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에서 "종교가 없는 무신론자가 특정 신을 믿는 유신론 자보다 더 똑똑하다고 6만 3천 명을 대상으로 한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왜 그럴까?그 사유를 "유신론자들은 직감에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유신론자의 세계와 무신론자의 세계 중 실제 세계를 더 정확히 서술하는 세계관은 과연 무엇일까?
만일 당신이 확고한 유신론자거나 무신론자라면 당연히 '이것'이라고 분명히 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세계는 언제나 '자아의 세계'이다. 객관적이고 독립된 세계는 나에게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내가 해석한 세계에 갇혀 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아의 주관적 세계, 이 세계를 우리는 '지평'이라고 부른다. 즉 지평은 나의 범위인 동시에 세계의 범위인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각자의 지평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나라 종교의 형편은 어떨까?
오래 전에 조계종 총무원장은 은처가 있느니?숨겨놓은 자식이 있느니?어떠니 한 적이 있었다. 또 어느 사찰 한편에서는 술판에 도박하고 있는 스님들 모습이 보도되기도 했다.
또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은 태평양 바다를 건너오면서 많이 힘들었는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지금 우리는 안타깝게도 "세상이 종교를 걱정해야 한다"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푸념을 자주 듣는다.
얼마 전에 어떤 방송 프로그램에서 네 분(신부, 승려, 목사, 원목)이 출연해서 입담을 과시한 적이 있었다. 거기서 개신교를 개인사업자, 천주교는 직영점, 불교는 프랜차이즈 그리고 원불교는 벤처 사업자라고 비교하는 우스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적절한 비유였는지 자신들도 고개를 끄덕이는 걸 봤다.
이제는 유신론자이건 무신론자이건 또는 종교가 서로 다르 건 그것이 뭐가 중할까 싶다.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살아가는 세상이 바로 '천국'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올 해들어 가장 춥다는 오늘이 바로 성탄절이다. 독자 여러분께 성탄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