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1968년, 프랑스는 타올랐다. 학생과 노동자가 손을 잡고 들끊는 파리의 거리를 행진하며, 체제와 권위, 일상의 모든 관행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들의 물음은 단순하지 않았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지금의 질서는 정당한가?" 그것은 하나의 정치 투쟁을 넘어 삶의 혁명이었다.
이 "프랑스 68 혁명"은 유럽 전체를 흔들었고, 전 세계 젊은이들의 상상력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비록 물리적 시간은 다르지만, 그 정신은 대한민국 현대사 속에서도 여러 번 되살아났다.
한국의 1980년 광주, 1987년 6월 항쟁, 그리고 2016년 촛불 시민혁명은 시대마다 형태는 달랐지만 본질적으로 유사한 질문을 던졌다.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저항, 불의에 대한 분노,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가?"라는 근본적인 물음, 프랑스의 68이 거리에서의 급진적 상상력이었다면, 한국의 민주화 투쟁은 삶을 건 간절한 실천이었다
68 혁명은 제도적 전복에는 실패했지만 문화적 혁신에는 성공했다. 대학의 자율성, 성 해방, 권위에 대한 비판이 프랑스 사회를 서서히 바꿨다.
한국 역시 87년 민주화 이후 제도는 바뀌었고, 시민사회는 성장했으며, 촛불로 이어지는 민주주의 진화는 세계적 모범이 되었다.
하지만 68 혁명이 "그 이후의 상상력"에서 시험받듯, 한국 민주주의도 "그다음의 실천"에서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 과실을 누리며, 동시에 그것의 피로를 체감하고 있다. 정치는 신뢰를 잃고, 시민은 점점 냉소적으로 변하며, 공공의 언어는 사적 이해에 밀려난다.
'선거'는 남았지만, '참여'는 줄고 있다. 프랑스의 한 지식인이 말했듯, "혁명은 성취보다 그 이후가 중요하다." 지금의 우리는 그 이후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68 혁명은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민주주의는 제도로서 충분한가? 참여와 책임 없이 제도만으로 사회는 움직이는가?
다시 말해, 우리는 지금도 계속 질문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는가?
68년의 프랑스처럼, 87년의 한국처럼, 사회는 언제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물음을 멈추지 않을 때 전진할 수 있다.
혁명이 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변화의 상상력은, 늘 그 질문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